허전함은 사랑으로 채우고
아들이 18 살이 되었을 때 우리는 홍콩에서 말레이시아로 이사온 해였습니다. 그곳에는 아는 사람도 전혀 없고 낯선 곳이었습니다. 홍콩은 8 년을 살았기에 많은 사람들도 함께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면서 지내서 전혀 외국이라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제 이의 고향 같았고 아이들은 그곳에서 초 중고등국제학교를 다녔고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낸 장소였습니다. 아들이 대학입학을 해서 미국으로 떠나야 했고 처음 한 학기 동안 아들이 떠난 빈 자리는 가슴에서 무엇인가가 떠난 텅 빈 자리로 내 가슴속으로 몰려왔습니다. 밥상을 차리다가도 네명의 수저를 놓다가 한 자리가 비어있고 집안에 아들이 없는 자리는 마음에 휭하니 빈자리로 들어올 것 같았습니다.
그런 마음은 말레이시아에 와 있는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들은 아들과 같은 또래의 청년들이었고 불법체류를 하면서 말레이시아에 건축 붐을 타고 일하러 온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아침을 굶고 점심을 해 먹으며 일년 내내 35 도를 웃도는 여름만 있는 그곳에서 노동을 하고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와 있었습니다. 아들이 보고 싶고 허전한 내 가슴속에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채우기 시작하고 사십여명의 점심 도시락을 싸서 그들이 일하는 현장으로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가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저녁에도 밥을 해서 우리는 예배드릴 장소를 얻어서 함께 밥을 먹으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더운 나라이기에 그들의 점심 도시락을 싸려면 새벽 시장에 가서 장을 봐야 했습니다. 말레이들은 게을러서 그 시간에 장사를 하지 않았고 중국인들은 새벽부터 장을 열고 장사를 하여서 중국인들이 하는 시장에 가서 장보는 일부터 해서 집에 와서 부지런히 밥을 하고 도시락을 싸면 11 시쯤 끝났습니다. 그 도시락을 실고 가면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점심시간에 도착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마마”라는 이름이 처음 붙여 졌습니다. 아들을 보고 싶을 때 그들을 찾았고 먼 곳에 있기에 아들에게 해주지 못하는 것을 다른 나라 이방인들을 섬기고 사랑하므로 나의 허전함은 밀려나고 아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지낼 수가 있었습니다.
11 년 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였을 때 이제는 딸마저 대학을 보내고 돌아오니 아들 한 명 보냈을 때보다 더 하늘이 구멍 난 것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아들을 미국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보다 딸마저 데려다 주고 왔을 때 허전함은 더 큰 구멍이 뚫린 것 같았습니다. 딸을 결혼을 시키고 홍콩으로 보낸 후 오랫동안 딸이 없다는 현실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딸은 직장에서 늦게 퇴근을 하고 내 옆에 와서 잠을 자곤 하였는데 자다가 잠을 깨서 딸이 없는 것을 보고 “애가 왜 이렇게 퇴근을 안하지? 자기 방에서 자나?” 하고 딸의 방에 가보고는 빈방이 결혼을 해서 갔다는 사실이 잘 느껴지지 않곤 했습니다.
대학믈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을 하다가 군대를 가기 위하여 아들이 한국에 와서 남편과 함께 논산훈련소를 같이 갔다 오는 날은 또 다른 기분이었습니다. 무어라고 형용할 단어가 없었습니다. 아들도 딸도 떠난 공간에 다시 한국에 와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듬어 안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2000 년 도가 시작하면서 군대에 갔고 홀리네이션스 선교회도 그 해에 시작되었습니다. 내 빈 공간은 수 많은 외국인들을 통하여 빈 공간이 없어졌습니다. 외국인중에 어떤 외국인은 “마마는 아들이 많이 있지 않아요?” 라고 말을 하는 외국인들도 있었습니다.
딸은 결혼하자마자 해외 근무를 하는 남편을 따라 해외에서 4 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고 아들은 십년을 한국에서 결혼하고 가까이서 보며 지내다가 다시 2013 년 9 월 23 일부터 싱가폴에서 근무를 하기 위해 떠나게 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떠나게 되면서 자녀가 행복하면 그것으로 행복하다고 하면서도 막상 헤어짐은 허전함과 눈물이 났습니다. 그 동안 예쁜 손자들을 수시로 보면서 함께 지냈는데 이제는 그런 생활을 당분간 못할뿐더러 자주 보지 못하겠구나 하는 허전함이 밀려오는데 그 허전함은 영혼을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채울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전도한 것보다 더 많은 죽어있는 영혼들에게 우리 주님이 주신 행복의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를 전하며 그물이 찢어지는 것을 보기를 기도하며 다시 핸들을 잡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는 공장를 누비며 또한 우울증에 걸려있는 한국인들에게 “이 행복전하고 싶소” 찬송하며 나아갈것입니다. “오직 예수”를 전하다가 주어진 이 시간의 달리기를 잘 마치기를 기도하며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