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시간은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많은 시간을 병든 자와 함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명절에도 다른 사람들이 즐기는 시간 가운데서도 병자를 찾아가셨고 특별히 외롭고 힘들고 아무도 찾지 않는 환자들을 찾아가셔서 고쳐주시고 새 희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모든 사람들은 걷지 못하던 자들은 뛰놀며 기뻐하고 앞을 보지 못하던 고통에 있는 자들은 눈을 뜰 수가 있었고 불치의 병자들도 예수님만 만나면 새롭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치료비를 받은 적도 없으셨고 병자가 오랜 병이라서 악취가 나도 그런 것을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지금은 그 애수님의 명령을 받들어서 우리가 가서 예수님의 심부름의 역할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아픈 사람이 있는 가족들은 환자도 고통 중에 있지만 가족들 모두 함께 고통을 나누게 되고 더군다나 비싼 병원비라는 현실 앞에 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제가 아는 주위에 돌이 지난 지 몇 달 안된 남자아기가 두 명이나 뇌 수술을 받았습니다. 어제 수서 에 있는 삼성병원 중환자실에 갔었는데 잘 놀던 애기가 갑자기 경기를 일으켜서 병원에 오니 중환자실로 보냈고 오늘 뇌 종양 수술을 받았는데 암이 의심이 간다고 조직검사를 받아야 하고 결과가 일주일 후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소아 중환자실에는 왜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그런 중병이 걸려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밖에서 아이들이 개구쟁이처럼 놀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중환자실 중에서 어린 아이들이 있는 곳은 더 마음이 아픕니다. 중환자실에는 옆에서 잘 수 있는 보조 침대가 없기에 가족들은 그냥 의자에 앉아서 잠을 자면서 마음을 조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다른 병원에 뇌종양 수술 후에 있는 애기를 위로하러 갔습니다. 그 격리실에도 작은 아이들이 모두 머리를 밀고 실로 꽤 맨 자국을 가지고 병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힘든 시간들을 병실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가 둘인 경우 누구한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을 때 엄마가 돌보면서 병원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두 아이와 엄마가 자는 것을 보니 그 또한 보기가 가슴 아픈 정경이었습니다.
사십 대 후반을 지난 저가 잘 아는 지인이 위암 수술을 받기 위해 오늘 같은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가장이 경제적으로 병원비를 전혀 낼 수가 없을 정도인데 오늘 병원에 입원 수속을 하러 가보니 다인실이 없어서 일인 실이나 이인실에 먼저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병원 사정을 잘 아는 의사선생님께 가득 이나 경제적으로 힘이든 데 일인 실이라니요? 라고 질문을 하니 병원의 운영상 모든 병원이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간신히 사정을 해서 이인실에 들어가 보니 병원이 높은 언덕에 있어서 앞에 녹색을 보여주는 산이 보였습니다. 걱정이 태산 같은 아내를 보고 저가 웃으면서 그동안 고생하느라고 이런 휴가를 가져본 적이 없는데 잠시 이인 실에서 휴가를 즐기라고 병원 측의 배려라고 하니 어이가 없는 웃음을 함께 웃었습니다.
병실 안에 있지 않고 밖에서 활동을 할 수만 있는 것 만으로도 참으로 감사를 끝이 없이 할 수가 있는데 우리는 그런 중환자실에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에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병실 밖에 거리에 차량이 오가는 것만 보아도 전혀 다른 세계 같아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잠잠히 참고 기다리라
믿음으로 행진하던
다윗 왕의 인생에
얼마나 많은 날들을
주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을
체험했으면 끝없는 고백은
주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을 보라
내가 종일 선포하리로다
어렵고 죽음의 계곡에도 이르며
두려운 도망자의 신세였던 인생
그러기에 오직 주만 의뢰하였고
언제나 볼 수 있었던 주의 임재
다윗 왕은 노래했네
여호와는 나의 반석 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며
내가 피할 바위입니다
신앙인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권면하네
네 짐을 맡기라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가 이루신단다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여호와를 기뻐하면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