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한민족교회 수련회 방문기4)
수련회를 마치고 우리는 하루를 성령의 부흥의 진원지인 웨일즈로 향했습니다. 전날 수련회를 마치고 차를 운행해서 런던으로 와서 다음난 웨일즈를 가보기 위해 아침 7 시에 출발해서 밤 10 시에 도착하는 강행군의 시간이지만 너무나 넘치는 많은 은혜의 장소에서 일행 모두 피곤이나 어려움은 전혀 못 느끼고 오직 감사만 넘쳤을 뿐입니다.
처음 도착한 곳은 우리나라 개신교 역사의 첫 조선을 방문하고 순교한 토머스 아버지가 목회하던 하노바 교회 (Hanover Church)였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스티브 프라이스 라는 하나님의 자녀의 밝은 모습을 한 분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분의 미소와 신앙고백은 잊지 못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영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해주던 후손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안타까운 현실인데 스티브는 그분을 보자마자 하나님의 자녀는 저렇게 밝은 모습이구나 라고 느낄 정도로 빛이 났습니다. 친절하게 우리에게 차와 쿠키를 준비해서 손수 따라주면서 전에는 의사였던 할아버지가 그렇게 겸손하고 온유한 모습으로 설명을 해 주는지 모습만 봐도 은혜가 넘쳤습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의 한 페이지에 토머스에 관하여 쓴 내용을 여기에 나눕니다.
“순교의 피로 선교한 토머스 – 한국 개신교 역사의 첫 페이지에는 항상 로버트 토머스가 거론된다. 그는 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펴고 있을 때에 두 차례나 한국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이 땅에서 처형당한 최초의 순교자이다. 토머스는 영국 웨일즈 하노바교회 목사 아들로 태어나서 런던 대학교 뉴칼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하지만 그는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원하는 선교사 지망생이었다. 결국 그는 중국에 선교하러 간다는 이유를 내세워 억지로 수료증을 받고 런던선교회에 중국 선교사로 지원하였다. 동시에 그는 고향의 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토머스의 선교준비는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교편을 잡고 있던 캐롤라인 고드프리와 결혼한후 1863년 7 월 21 일 부인과 함께 중국을 향해서 떠났다. 그 해 12 월 초, 상해에 도착한 그의 부인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여보, 나는 동양 세계가 낯설고 적응이 어려워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요.” “그래요 이해합니다. 다른 정착지를 알아보겠소.” 그래서 토머스는 임신중인 아내를 위하여 온화한 기후의 한구에 새로운 정착지를 마련하기로 하고 잠시 집을 비웠다. 토머스가 집을 비운 사이 아내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미국 선교사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내 고드프리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이 충격으로 유산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 두번의 큰 충격으로 인해 결국 숨지고 말았다.
토머스는 1864 년 4 월 5일 선교부에 이렇게 썼다. “제가 영국을 떠나 처음 쓰는 편지가 슬픈 소식이 될줄은 몰랐습니다.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저는 완전히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글을 써내려 갈수 없습니다. 하나 하나 쓰다 보니 복받쳐 오르는 슬픔을 참을 길이 없습니다.”
그후 토머스의 중국선교는 순탄치 않았다. 그는 중국 선교담당자였던 무어해드와 갈등 관계에 있었다. 그런 연고로 런던선교회에서 탈퇴하였다.
토머스는 언어에 천재적인 자질을 갖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 조선 선교의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중국에는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소속의 윌리암슨이 지푸에 주재하고 있었는데 그는 토머스의 열정과 재능을 높이 사고 있었다. 또한 이곳에서 토머스는 조선에서 온 천주교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런 것들이 연유가 되아서 토머스는 윌리암슨의 도움으로 조선에 1 차 선교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토머스, 조선이라는 나라는 미지의 나라라네. 선교의 열정을 불태워보게.”
이렇게 해서 토머스는 1865년 9 월 13일 서해안에 도착하였다. 그는 두 달 반에 걸쳐서 황해도 창린도에 머물렀고 황해도와 평안도의 서해안에서 한국을 배우면서 한문 성경을 배포하였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 토머스는 런선선교회로부터 북경에서 일하라는 새로운 제의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조선 선교에 대한 열정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1866 년 8 월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한국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통역관 자격으로 그배에 동승하게 되었다. 셔먼호는 황해를 거쳐 대동강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이 소식은 평양감사 박규수에게 들어가게 되었다. 셔면호의 선장은 통상을 원한다고 기별을 했고 평양감사는 청국의 허락이 없이는 외국과의 외교와 통상이 불가능하다고 통고하였다. 그럼에도 셔먼호는 계속 평양을 향하여 올라오고 있었다. 마침 우기여서 대동강 물이 불어서 셔먼호가 내륙으로 운행할 수 있었다. 토머스는 기회가 되는 대로 조선인들에게 한문 성경을 전하였다. 이것을 본 평양감사가 조사차 군인을 보냈는데 셔먼호는 이들을 가두어 버렸다. 결국 평양감사는 셔먼호가 양각도에서 좌초된 것을 보고 나뭇단에 불을 질러 떠내려 보내서 결국 셔먼호를 불태웠다. 그러자 배에 있던 사람들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나온 인물이 바로 토머스였다. 그는 성경을 가지고 뭍으로 나와서 자기를 죽이려는 군인 박춘권에게 무릎을 꿇고 성경을 건네주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박춘권은 그것을 받지 않고 칼로 그를 처형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토머스는 대동강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지 2 년 6 개월 만에 토머스는 이 땅에 최초 순교자의 영예를 얻고 하늘나라로 갔다.”
우리에게 토머스 선교사의 이야기를 전해준 스티브는 처음 한국에 한명의 그리스도인도 없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있는가? 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차를 마시면서 잠시 영상을 보았는데 처음 찬양이 영국인들이 한국어로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를 찬양대가 부르고 토머스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이렇게 마무리횄습니다. “How One Makes Differences?”
해답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밝고 빛나는 스티브 할아버지와 해어지면서 인사를 나눌 때 “우리는 언젠가 영원히 한곳에서 살게 될꺼예요” 라고 하니 “아멘”이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교회에 붙어있는 한국지도와 태극기는 토머스의 영광의 면류관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