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가 전달될때는
보통 결혼식에 가서 주례사가 가슴에 와서 닿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사람들은 아예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두 건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한 결혼식은 아예 주례자체가 서지를 않은 결혼식도 보았습니다. 신랑 신부 특별히 입장하는것도 없었고 “나는 이런 아내가 되겠습니다” 신랑은 “나는 이런 남편이 되겠습니다”라고 하고는 신부아버지가 혼인 선포를 하고 마치는 특이한 결혼식도 보았습니다.
다른 날 결혼식을 한 그 결혼식에는 신부를 결혼하기 전에 두번 밖에 본적이 없는데 계속 신앙의 문자를 주고 받다 보니 친밀한 관계가 되었고 결혼식에 초청을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가기 전에부터 이 결혼식에는 특별한 감동이 전해왔습니다. “권사님, 집안에 여자의 힘이 크다는 것을 저희 엄마를 보고 느꼈어요. 저희 아버지는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병을 앓았는데 저희 엄마는 포기 하지 않고 우리 가정을 지켜 주셨고 우리를 키워 주셔서 오늘이 있게 되었답니다” 라고 고백을 하는것이었습니다. 요즈음처럼 가정이 유리컵 하나 깨지듯이 쉽게 깨지는 것을 보는 사회에서 결혼식 가기 전에도 엄마 아빠의 모습이 궁금했습니다. 결혼식에서 신부부모님을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엄마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신랑을 잘 알고 계시는 윤재병목사님은 신랑을 칭찬하기를 “신랑은 신앙도 아주 좋지만 그 인격이 좋은 점은 정말 대단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신앙과 인격이라면 결혼의 어떤 과정에서도 잘 이겨 나가는 복된 가정을 이룰 것이 기대되었습니다.
주례사가 그렇게 마음에 와서 닿는 주례사를 들으니 이 또한 감동이었습니다. 처음 신랑 신부 입장에서 보통 신부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고 신랑은 혼자 입장하면서 “시집을 간다”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는데 그 날은 주례 목사님이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신랑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함께 입장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덧 붙여서 하시는 말씀이 “남자도 장가를 간다”라는 표현은 남자도 부모를 독립해서 가는 것이기에 남자 쪽 부모의 입장에서도 아들을 보내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례사 중에 “행복하기 위하여 결혼한다”라고 생각하면 반드시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대신 “거룩하기 위해서”라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다 보면 행복은 부부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서로가 전혀 다른 것을 인정하고 돕는 배필을 주신 것을 인정하다 보면 행복해 지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씀이었습니다.
홍콩에서 8 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세분의 진수의 말씀은 늘 전하는분의 표정까지 기억에 생생하며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번은 고신대교수 목사님이신 연세가 지긋한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홍콩은 비행기 갈아타는 일이 많은 장소라 참으로 수 많은 분들이 거쳐갔는데 그분의 모습은 이십 년도 훨씬 지났는데 생생합니다. 그분은 목소리를 조용하게 말씀하셨는데 그날 참석한 다수는 거이다가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회개를 했습니다. 홍콩에 주재원으로 나와서 모두 저 잘났다는 사람들이 모였던 회중이었는데 그날 목사님은 하나님이 왜 이곳에 보내셨는데 “여러분들은 뭐 하는 사람입니까?” 라고 하는데 책망조로 한 것도 아니고 조용하게 하나님말씀을 전했는데 사람들은 모두 찔려서 회개하는 모습이 참으로 잊지 못할 모습이었습니다.
일주일의 집회로 한 평범한 가정주부를 선교사의 길을 27 년째 걷게 만들었던 목사님의 메시지도 늘 능력의 메시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한 86 세의 고령에 홍콩에 오셔서 말씀을 아침 저녁으로 일주일 전하셨던 안이숙여사님의 모습도 얼마나 가슴에 뿌리 깊히 박혀진 마음판에 새기게 해준 말씀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예수를 본 받았으니 너희는 나를 본 받으라”는 용감한 메시지를 전한 것같이 그분들의 롤 모델을 닮고 싶은 강렬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어두움 속에서 해 매는 영혼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살아날 수 있을까 라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전에 마더 테레사가 있던 곳에 가서 보았고 들었던 이야기 중에 길에서 노숙자를 데려다가 깨끗한 침구를 마련해서 침대에 뉘여 주면 다음날 아침에 보면 바닥에 드러누워 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 불편한 것을 해결해 주고 싶은데 정작 당사자는 깨끗한 것이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직업을 얻어나가기 위해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밥퍼 공동체를 시작한 목사님도 처음에는 그들에게 단순히 밥을 주기 위해 시작했지만 정신을 고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을 한 글을 읽었습니다.
복음의 진수를 사람을 변화시키고 활기차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 주는데 어떻게 전해야 새로운 인생을 출발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잠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