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럴수가
주위에서 직접 찾아와서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고 이럴수가 있을까 라는 수 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보았지만 혀를 내두룰 상처의 사람이 그것을 이기고 전도자가 된 이야기를 읽고 여기에 나눕니다. 닉 부이치치 두번째 책 플라잉에서 나오는 인물은 여지껏 들은 상처중에 “세상에 이럴수가” 라고 생각하며 읽은 내용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놀라워서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습니다.
“빅터 막스는 전도자의 길을 함께 걷는 열정적인 동료 가운데 하나로 흥미진진한 무용담을 수 없이 간직한 인물이다. 미국 해병대 출신이며 가라데와 유도, 주지츠, 쿵후, 길거리싸움의 기술을 조합한 공수도 호신술 공인 7 단이다. 네이비실, 육군특전대, 델파포스의 교관일 뿐만 아니라 무술 대회의 세계 챔피언을 30 명 넘게 길러 낸 사람이다.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겠지만, 빅터는 대단한 몸을 가졌다. 그러나 이처럼 멋진 사나이도 한때는 자신을 결함투성이로 여기며 살았다는 것을 알면 다들 충격을 받는다. 빅터는 자신과 나 사이에 공통점이 많다는 애길 자주 했다. 내가 가진 장애는 겉으로 드러나는 반면, 자신의 상처는 마음과 영혼 깊숙한 곳에 단단히 박혀서 좀처럼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말고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깨어진 가정에서 성장했다. 태어나기도 전에 부모님은 이혼한 상태였으며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약을 거래하고 매춘을 알선하면서 험하게 살던 남자였다. 그런 사실을 새카맣게 몰랐던 빅터는 첫 번째 양아버지를 친부로 알고 자랐다. 어머니는 결혼했다 이혼하기를 여섯 번이나 되풀이했다. 그런 환경 탓에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열네 번의 전학과 열일곱 번의 이사를 경험해야 했다.
그는 죽도록 얻어맞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의붓아버지들 가운데는 실제로 머리를 물속에 처박거나 관자놀이에 총구를 들여대는 가혹행위를 서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세 살부터 일곱 살 사이 사리 분별조차 안되는 어린 나이에도 성적 신체적 학대를 견뎌야 했다. 언젠가는 성폭행을 당하고 나서 업소용 대행 냉장고 속에 갇힌 적도 있었다. 다른 식구들이 간신히 찾아내어 몸을 녹여주지 않았다면 그 안에서 죽고 말았을 것이다. 빅터는 말로다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학대의 희생자들이 다 그렇듯 친구의 심중에도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상처와 아울러 극심한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의지의 힘으로 간신히 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놀랍게도 군대생활이라든지 무술 수련과 시합 같은 긍정적인 방식으로 분노와 폭력 충동을 쏟아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혼이 워낙 깊었던 까닭에 아픔을 완전히 씻어 낼 수는 없었다. 그와 상담한 전문가는 소아성폭력 피해자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와 관련이 있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정신과 의사는 무시무시한 일들을 견디느라 두뇌가 뒤죽박죽이 된 상태이므로 정상적인 방식으로 사고하는 과정을 수행할 능력이 없으며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빅터는 뜨겁고 강한 믿음에 기대어 끊임없이 재생되는 뼈아픈 기억들과 거기서 비롯된 트라우마를 처리하는 법을 익혀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이들 앞에서도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과 신앙의 길을 걷게 된 내역을 자연스럽게 고백하게 되었다. 특히 비행청소년이라든지 폭력조직원, 소년원생, 위탁보호를 받고 있는 아들들, 약물중독치료센터에 머물고 있는 환자들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젊은이들이 그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은 틀이 잘 잡혀서 먼저 무술 시범과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소개하는 인사말로 청중의 관심을 사로잡은 뒤에 본론으로 들어간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나이든 강사가 어른이랍시고 한 수 가르치려 드는 걸 못 견뎌 하기 일쑤다. 하지만 빅터의 강연은 예외다. 입을 연지 얼마 안되어 다들 공감하며 깊이 빠져든다. 말썽을 일 삼는 젊은 이들 대부분이 코흘리개 시절부터 신체적 성적 폭행에 휘둘렸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 나 자신을 심하게 부정하며 살았습니다. 내게 이야깃거리가 있는 줄도 몰랐고 남들한테 들려 줄 수 있으리라고는 더더구나 생각지 못했습니다.” 빅터는 말했다. “어느 날은 75 명의 소년원생 가운데 53 명이 그리스도께 삶을 드리는 기적이 일어난적도 있습니다.”
구원을 받게 된 사연을 들려 달라는 요청이 교회에서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친구에게는 말할 수 없이 놀라운 일이었다. 비참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잘 극복하고 온갖 문제와 어려움을 끌어안고 사는 젊은이들을 열성적으로 섬기면서 빅터는 믿음을 행동에 옮기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지를 온몸으로 중언하고 있다. 스스로 정서적, 신체적, 성적 학대를 당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벼랑 끝에 몰린 청소년들과 폭력적인 문제아들을 보살필 수 있는 이들은 지극히 드물다. 빅터 같은 이들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드러내면 수 많은 사람에게 치유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여태 살아온 길을 공개적으로 고백한 뒤부터 사방에서 강연 요청이 몰려들었다. 요청하지도 않은 후원금이 우편으로 쉴새 없이 날아들었다.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2003 년 빅터와 아내는 비영리 선교단체를 세웠다. 불가사의한 일들이 꼬리를 몰고 일어났다. 그로부터 두 해 뒤에는 이들이 하는 일을 듣고 감동을 받은 어느 부부가 3 억원이 넘는 거액을 내 놓았다.
“과연 이런 종류의 사역을 제힘으로 잘 꾸려 갈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주께 헌신하자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걸 두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어요.” 빅터는 말했다. “철장에 갇힌 채 상처를 끌어안고 신음하는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겠더군요. 미국 전체를 통틀어 이 친구들에게 손을 내미는 이들은 많지 않아요. 하나님이 이제 됐다고 하실 때까지, 우린 이 사역을 계속할 겁니다.”
빅터 막스를 주님께 인도한 주인공은 그의 친아버지 칼이었다. 엄마 뱃속에 있던 아들을 무정하게 팽개쳤던 마약밀매 꾼이자 매춘업자가 회심하고 돌아와서 자식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기까지 했던 것이다. 빅터가 친아버지의 편지를 받은 건 해병으로 복무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칼은 빅터를 아들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어머니를 버렸으며 마땅히 져야 할 책임마저도 거부했다. 빅터가 여섯 살 때 처음 찾아오기는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연락을 한 것이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열었다. “사랑하는 아들아”로 시작하는 첫 줄부터 역겨웠다. 언제부터 아버지고 아들이었단 말인가? 꾹 참고 계속 읽었다.
칼은 엉망으로 살면서 자식을 돌보지 않았던 과거를 뉘우친다고 했다. 감옥에도 갔고 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 구절은 충격이었다. “정신이 어떻게 됐나 보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께 미쳤단다.”
빅터의 아버지는 “소망이 없는 곳에 희망의 빛을 비추시는 우리하나님”을 찾았다고 했다. “여태껏 어떤 삶을 살았던지 가리지 않으시고 똑같이 사랑하신다. 오래 참으시며 두려움에 때는 심령에 평안을 주시지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은 한없이 크고 강해서 온 세상의 죄와 부끄러움을 덮고도 남는단다.”
칼은 다음 휴기때 꼭 찾아오라는 말로 글을 맺었다. 빅터는 아버지를 만나서 함께 교회에 갔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는 다른 이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일에 열정을 바치고 싶은 마음이 뜨거워졌고 그때마다 줄곧 그 일에 매달려 살았다.”
할렐루야!!! 놀라우신 우리 하나님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