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탓이야 아니야 내탓이야
네 탓이라고 언제나 타령하면
점점 더 어두움으로 들어가서
칠흙 같은 어두움에 갇혀 버려요
내가 힘든 것도 네 탓이야
내가 불행한 것도 네 탓이야
이 모든 것이 네탓이야
밝은 빛이 내 마음에 비칠 때
네탓이 아니고 내탓이야
깨닫기 시작할 때 불행은
도망쳐 버려요
어두움은 사라지고
밝은 빛은 문제의 원인을
제거해 버려요
내 탓이야 고백하며
행복 맛을 마음껏 맛좀 보세요
참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모양을 갖춘 가정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남편이 너무나 인격적이고 순하고 성실하며 가족을 사랑해 주는데 전혀 감사를 모르기에 불행하며 감사를 모르니까 날마다 질병에서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감사와 건강은 아주 밀접한 관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는 기쁨과 평안을 주는데 감사하지 않은 사람은 기쁨과 평안이 없기에 육체는 시들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미인이던 아니던 상관없이 눈동자는 힘이 없어 풀어져 있습니다. 받는 것에는 익숙하고 주는 것을 전혀 모릅니다.
반대로 아내는 모든 면에 너무나 훌륭하고 희생적이고 가정을 위해 노력을 하는데 전혀 남편은 그것을 감사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역시 감사를 모릅니다. 또한 가족의 구성원은 여러명인데 강한자와 약한자 유능한자와 무능한자 여러 형태로 구성원이 되어 있기에 인간의 본성대로 살아가면 상처는 필수로 따라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호주로 모시고 살면 해답은 너무나 명쾌하게 보여줍니다.
수 많은 가정들이 깨어지고 자녀들은 고통을 받는 이 한국의 현실 속에서 왜 가족이 상처를 가장 많이 주는 것인가를 서로 의견을 나누워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족은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기 때문에 죄성을 가진 죄인들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서로의 단점을 가장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족이 존경하는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저는 읽었던 글 중에서 잊지 못하는 글이 있는데 어떤 며느리가 목사님인 시아버님을 간증하는 글입니다. “나는 시아버님을 바라보고 있으면 예수님을 보는 것 같다” 정말 놀라운 찬사가 아니겠어요? 정말 그리스도인 목사님으로 생각됩니다. 반대로 유명한 목사님의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이야기하면서 “나는 아버지에게 사랑을 느껴본적이 없다”라고 하는 글입니다. 후자의 경우는 많이 듣고 보게 됩니다. 어떤 분은 자신의 아버지목사님을 기억하면서 늘 무릎을 꿇고 야단 친 기억밖에 없다고 하며 밖에서는 많이 존경을 받는 아버지가 밥이나 먹여주고 야단을 쳤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라는 직분외에 우리같은 평신도들도 우리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영광을 얼마나 가리는지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입니다.
전도하기가 가장 힘든 대상이 자신의 가족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가족이 너무나 잘 알고 적나라하게 삶이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정확하게 표현을 하자면 우리 모두가 죄인이고 죄성을 가졌기에 남을 사랑하고 먼저 배려하고 하는 부분을 할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기심이 가득한 죄인들의 특징은 언제나 자신의 잘못은 볼줄 모르고 상대방의 잘못만 보이기 때문에 해결책이 없는 것입니다.
한데 성령의 조명이 비추어지기 시작한 그 시간부터 “네탓이야” 에서 “내탓이야”로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을 알게 되는 시점이고 자신을 고치면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되는 축복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내 본성의 눈으로는 상대방의 단점만 보이게 되고 거듭난 신의 성품을 가진 사람은 허다한 허물을 덮을수 있는 이유가 “사랑은 바라고 믿고 참아내느니라”는 말씀대로 그 사람의 현재의 모습을 보지않고 우리를 변화시키는 성령의 권능아래 새로운 피조물로 변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적치유는 단순히 누구의 상처를 준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고 “내 탓”을 고백하고 “내 안에 쓰레기 치우기”를 하고 났을 때 놀라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은주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고 가족의 잘못으로 뇌성마비 1 급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은주에게도 강력한 성령이 임하여서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되기 전까지 한번씩 속에서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요동할 때는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은주는 옛날의 은주가 아닙니다. 그런 장애인 시설에서 이십년을 넘게 살았고 가족들의 모습은 거의 보지 못하지만 은주에게는 진찌 영원한 떠나지 않은 예수님을 알게 된것입니다. 은주는 가족을 원망하거나 발가락 하나만 쓸수 있는 자신의 장애를 더 이상 투덜거리지 않습니다.
지난달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일을 한다고 해서 저가 궁금했습니다. 은주는 손도 쓰지 못하고 발가락 하나로 어떻게 일을 하나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의 컴퓨터앞에서 일을 하는 사진을 보내왔는데 우리가 손으로 작동하는 컴퓨터 대신 발가락 으로 컴퓨터를 작동하기 위하여 왼발이 책상위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요즈음 은주의 목소리는 항상 밝습니다. 전화로 들으면 거의 발음을 못알아듣던 언어가 정확해져 가고 있고 중학교 검겅고시합격이후 사월초에 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을 위해 요즈음 밤을 새워 가며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은주의 스마트폰에는 자신의 프로필에 이런 글이 올라있습니다. “나의 가장 큰 행윤은 바로 당신입니다. 항상 제 곁에 있어 주세요.” 그 주인공은 바로 예수님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는한 교회의 마당뜰만 밟아서는 가정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뿐더러 개인의 삶도 정확하게 “죽을맛”입니다. 현재 “죽을맛”을 보고 있다가 천국가는 사람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