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흔련
세상에서 안정되게 살던 직업을 그만두고 외국에서 선교사의 길을 가고 있으며 이제는 더 가난한 사람과 같이 되기 위하여 이사를 가면서 집세를 줄이고 살겠다는 한 선교사님가정을 응원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만난 주님, 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주님이 과연 우리의 현실 속에서 뒷짐을 지고 계신 분이 아니고 매순간 우리 앞장서서 최선의 것을 준비하고 계신 주님이라는 것을 자세히 씀으로 인하여 주님께 순종하는 그 마음에 응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도하며 과거를 되돌아보았습니다. 선교사님 가정이 집세가 비싼 그 나라에서 이제 며칠 안 있으면 살던 집을 비워 주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돌이켜 보니 우리는 74 년동에 결혼을 하고 살았던 모두 9 군데에 하나님이 진두 지휘하셨던 것을 지금도 비디오로 보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다섯군데 외국에서는 월세아파트 인데 홍콩에서 세군데 아파트와 말레이시아에서 한군데서 살았는데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한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으십니다.
신32:11-12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 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이 말씀을 현대어 쉬운 번역에는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신32:11-12 독수리는 새끼들을 둥지에서 떨어뜨려 스스로 나는 것을 가르칠 때에 항상 새끼들 위에서 감시하고 지쳐서 떨어지는 새끼가 있으면 그 밑으로 날갯죽지를 펴 받아서 안전하게 다시 둥지에 내려 놓는다. 이와 똑같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가르치고 보호해 주셨다. 주께서 홀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다. 어느 다른 신도 그들을 도와준 일이 없었다.
독수리는 태풍이 와도 끄떡 없이 높이 나는 새가 되기 위하여 어릴 때부터 훈련을 시키는데 실지로 둥지를 벼랑 끝에 짓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밑에는 가시를 놓고 그 위에 어미 새의 털깃을 뽑아 놓고 애기 새는 어미 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먹고 지내기만 하면 되는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어미 새가 새끼를 둥지에서 나오게 떠다 밉니다. 애기 새는 나오지 않으려고 퍼덕거리는데 위에 털을 어미 새가 치워버리면 가시가 찔려서 할수 없이 나오는데 그때 밀어버리면서 훈련을 시킵니다. 어미 새는 옆에서 날갯죽지를 펴서 떨어지기 직전에 날개 위로 받아서 올렸다가 다시 떨어트리고 반복을 하면 독수리는 날개에 힘이 생기기 시작해서 비가오고 태풍이 불어도 더 높이 오르는 훈련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도 동일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1985 년 홍콩에 주재원의 가족으로 가서 그 다음해에 성령세례를 받고 주님의 증인이 되는 선교사의 길을 걸어가기로 하면서부터 하나님께서는 현실 속에서 독수리가 되는 훈련을 시키시기 시작했습니다. 87 년에 귀국하여 다시 선교를 할수 있게 홍콩으로 갈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자 당장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외국계은행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현재보다 훨씬 적은 숫자의 외국은행이 있었기에 미국은행, 씨티은행, 체이스맨하탄, 호주은행등등 그런데서 구조조정으로 400 명이 갑자기 직장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저희는 미국은행을 15 년 다녔기에 그 시절을 마치 독수리가 둥지에서 편안하게 먹이를 받아먹기만 하면 되던 시간이라고 볼수 있겠습니다.
구조조정이 일어났을 때 아들은 중학교 이학년을 마치고 딸은 초등학교 오학년을 마친 시간이니 갈 길이 아직도 까마득한 시간이었습니다. 91 년초에 그런 일을 당하면서 그때 은행에 사무실에 저가 간적이 있는데 같은 둥료 직원이었던 남자들은 일을 손에서 놓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단란하고 좋은 급료에 편안하게 살던 그들이었습니다. 갑자기 그런 일을 당하자 교회에 같이 다니던 사람들이 하는 말이 하나님이 원망 스럽다는것입니다. 자신들은 검소하게 살았고 잘 지냈는데 왜 그런 일을 당하느냐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은 거절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드문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원망을 하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모든 것을 거저 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저희 남편은 하나님께서 90 년 가을에 미리 홍콩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저가 선교를 할수 있게 보내달라는 응답이었는데 저희 남편도 91 년 2 월 말에 함께 일단 미국은행 서울지점에서는 그만 둔셈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한국에서 잠시 떨어지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 지를 긴장하며 지켜 보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400 명 중에서 저희 남편만 홍콩에 현지 채용이라는 형식으로 서울 지점을 그만두고 직업을 주셨는데 그 결정이 나고 아이들을 데리고 홍콩으로 가야 하는 시간에 한국에서 살던 아파트가 전세가 나가야 하는데 아무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는것입니다. 더 이상 홍콩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지면 아이들의 학교 들어가는데 문제가 생기는 시점까지 왔습니다. 보통 세입자가 들어오고 나가는데 집을 매매하면 40 일 정도 간격을 두고 세를 들어오고 나가는데도 한달은 잡어야 하는데 우리가 홍콩가는 비행기표를 먼저 끊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미룰수가 없는 시간이었고 십여일 밖에 남지 않은 시간으로 그때 집이 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느날 아침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먼저 확신을 주였습니다.
시94:19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그러자 생전 아파트를 보러 오던 사람이 한번도 없더니 그날 한분이 보러 오셔서 보고 있는데 다른 한분이 또 보러 왔습니다. 먼저 온분은 다른 분이 온 것을 보고 빨리 계약을 하지 않으면 놓칠꺼라 생각하고 보고 나가자 마자 부동산에서 전화가 와서 급히 계약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날 그 짧은 시간에 해결이 된 것입니다. 그분은 원래 주일날 이사를 하자고 했는데 저가 주일에는 저는 교회에 가야하니까 전날 하자고 하자 그렇게 하겠다고 하며 즉시 집이 나가도록 되었습니다. 당시에 아파트에 집을 내놓고 모두 안나가서 걱정을 하던 이웃주민이 부러워 하며 어느 부동산이냐고 하면서 그곳으로 가서 자기 아파트도 내놓았습니다.
이렇게 하고 한국을 떠났는데 홍콩에 가니 이미 계약을 남편이 주재원이었을 때 한 아파트는 이제 홍콩 현재에서 채용한 계약직으로 바뀌어서 그 아파트에 만약 다른 미국은행 주재원이 마음에 들어서 이사하고 싶으면 우리는 내 주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파트에 미국인들이 보러 들락거리니까 가지고 간짐을 풀수가 없었습니다. 짐을 다 풀어놓고 살다가 금방 이사 가야 하면 다시 꾸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 원하는 대로 아파트가 나가지 않고 그냥 살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기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떤 상황에도 저가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하자 미국인들은 보러 만 왔지 아무도 그 아파트에 이사 오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는 계약 만기까지 편안히 살수가 있었습니다.
한데 독수리는 계속 더 상공에 높이 날러야 하는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계약 기간이 끝나자 홍콩의 아파트 집세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곳으로 일년에 배로 뛰곤 했습니다. 우리가 95 년에 말레이시아로 이사갈 때 우리가 살던 아파트가 US$10,000 이였습니다.
계약 기간 만기까지 편안히 살고 보니 집세는 두 배로 올라가 있으니 막막했습니다. 아이들이 국제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스쿨버스가 다니는 지역은 집세가 싼 먼곳에는 다니지 않았고 저희는 차를 사지 않았기에 차로 아이들을 데려다 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 스콜버스가 다니는 지역을 얻어야 하니 더 길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 상황이었을 때 미국 본부에 홍콩 지점에 남편의 상관이 되는 분이 일주일 출장을 왔습니다. 그분이 갑자기 남편을 인터뷰하자고 해서 남편은 무슨일로 자기를 부르나? 좀 걱정을 했습니다. 만나서 인터뷰를 하는 시간에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그 미국인은 남편에게 “내가 듣기에 일을 열심히 한다고 들었는데 내가 도와 줄일이 없어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홍콩에 아파트로 이사가는일이 상황을 설명하자 오른만큼 집세를 올려주어서 우리는 이사를 갈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사를 하고 계약 기간이 또 지나자 홍콩의 집세는 또 다시 엄청 올라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몇 년 사이에 좀 컸고 해서 이사를 스쿨버스가 안 다녀도 아이들을 설득을 시켜 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먼저 남편이 보고 오더니 저에게 보려 주기가 미안에서 보여 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집세가 좀 저렴한 지역으로 가니 그때까지 살던 아파트하고 전혀 다르게 저가 싫어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가 같이 가보자고 하며 너무 좋다고 하니 저를 쳐다보고 웃으며 항상 좋다고 하니 자신의 마음이 편하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이제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사를 가게 될 것이라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은행으로 돌아가서 남편의 바로 위의 상관인 미국인에게 이제 어느지역으로 이사가기로 했다고 이야기 했는데 그 미국인은 그 시간에 뉴욕이 밤인데 자신의 상관이 자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런 상황이라고 하니 그 상관이 즉시 이사가지 않고 그 아파트에서 살수 있도록 집세를 올려주라고 허락을 했습니다.
이사 하는 이야기들은 저가 열심히 선교를 하고 있는 동안 있었던 일부의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선교를 하는 동안에 가장 걱정 했던 부분이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채 국제 학교를 다니다가 대학 들어가는 문제에서 전인교육상 고등학교 졸업할 때 가지 함께 있기를 소원했는데 홍콩에서 떠난 날은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1965 년 6 월 12 일이었고 말레이시아를 떠난 날은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98 년 6 월 12 일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제가 배운 교훈은 제가 가진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고 아버지는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볼수 있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 불평하고 자신의 원하는대로 기도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은 최선을 아신다는것입니다.
나는 차선 밖에 모르지요
내가 아는 것이 최선인줄 알고
아버지께 달라고 때를 썼어요
아버지는 내가 달라는 것을 주지 않고
최선을 주셨습니다
나는 실망하고 또 때를 썼지요
어리고 성숙하지 못해서 알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차선보다 최선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성숙해져 가며
나는 차선밖에 모르고
아버지는 최선을 아는 것을 깨닫고는
아버지께 모두 맡겼습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최선을 즐기며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고백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