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를 통해서 배우는 교훈
지난 주일밤에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전혀 예상하지도 못하고 계획하지도 않았는데 R.A.Torrey 사대손이 우리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벤 토레이 (한국명은 대영복)예수원원장님으로 이 나라에 성령운동을 가장 순수하게 성경적으로 일으키고 기도의 제물로 바쳐진 아쳐 토래이 (한국명 대천덕신부님)의 아드님입니다.
그날 몇시간 동안 같이 담화를 즐거워하면서 사대에게 배운 교훈을 여기에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무디 신학교 교장을 지냈고 함께 성령운동을 일으킨 일대의 토래이 목사님의 책에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라는 제목의 책과 삼대손인 대천덕신부님의 강의 내용에서 할아버지가 전수해준 많은 이야기들을 기억합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주라고 시인할 수도 없을뿐더러 어떤 사역을 잘 감당 할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는데 한 예를 들어서 한분이 상담자와 몇시간 상담을 하였지만 회개를 전혀 할 생각을 하지 않던 사람이 토래이 목사님과 기도를 십분 하자 바로 회개하며 기도를 했다는 가르침이 생각납니다. 무디와 함께 성령운동을 일으키면서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오지 선교사로 가도록 하였고 자신의 아들도 중국선교사로 갔습니다. 이대째 주님을 섬기는 토래이 목사님의 아들은 중국에서 팔이 잘려나갔을 때 그런 가운데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신 잠시 맛보는 시간이었다고 고백을 해서 저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어찌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고백을 할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인간적으로 보면 그런 좁은길을 아드님 되시는 대천덕 신부님은 다시 걸어가는 것이 또 놀라운 감동이었습니다.
삼대째 충성을 다하는 대천덕신부님의 강의도 들어보았고 함께 중보기도시간에도 참석하면서 그분의 책을 또 여러권을 정독을 하면서 배웠습니다.
진정한 성령님이 어떤 분인지를 가르쳐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지금도 그 책을 읽으면서 배워가고 있습니다. 한국에 진정한 성령운동을 일으켜서 예수원을 설립하게 하는 일을 하신분도 강원도 태백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다른 기도원은 대형버스로 사람들을 나르는데 기차타고 그곳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그리고 걸어 올라갔던 그곳이 눈에 선합니다. 그런가운데 대천덕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준비된 자는 온다” 라는것이었습니다. 교통편에 불편한 가운데서도 그 말씀이 생각나서 많은 은혜가 되었습니다.
기도를 세 번 함께 중보기도를 하면서 식사를 하는것도 인상적이었지만 밤에 침묵의 시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되면 모두 침묵하며 조용히 묵상을 하던지 기도를 하던지 소리를 내면 안되는 시간입니다. 또 한 가지 인상이 깊었던 것은 여러사람이 함께 기도를 하기에 어던 사람이 치유를 받아도 그것이 누구의 은사인지를 나타내기 보다는 오직 주님의 영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천덕신부님을 처음 뵜을 때 그 인상이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해처럼 빛나는 얼굴을 할 수가 있을까 라는 놀라움이었습니다. 두 번째 놀란 것은 그분이 너무나 작은 토담집이었습니다. 예수원건물 뒤에 아주 작은 토담집, 전혀 꾸미지 않은 그집은 요즈음 시골에도 한국인의 집도 더 나은 곳에서 살고 있는데 정말 예수님이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시고 그렇게 사셨던 것을 아들 벤 토래이 원장님이 다시 살면서 대한민국의 영혼들을 사랑하는 것인지 놀라운 일일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런데 사역자로서 높아질수록 세상의 것을 더 소유하고 대접을 받는 것으로 반대로 알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그날 한국이름이 대영복이라는 뜻이 “영의 복을 받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대천덕이라는 이름은 “하늘의 덕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냐고 그 뜻을 풀이해 보며 웃었습니다.
우리는 왜 그런데 좋은 차와 좋은 것을 소유한 사람이 더 높은 사역자라고 생각을 하는것일까요?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는데 우리의 관심은 땅의것에 더 큰 비중을 두지 않는 것이 아닐까 라고 질문해보았습니다.
그런 가문의 아름다움이 예수의 형상을 닮은 가문이 아닐까요? 그런 분이 우리집에 오셔서 함께 잠시라도 시간을 함께 한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도 부족하지만 그런 믿음의 모델을 따라 가야겠지요. 정말 하늘의 소망을 아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뜻만 이루기를 소망하며 걸어가겠지요. “주님 다시 오실 때 까지 나는 이길을 가리라 좁은문 좁은길 나아ㅢ 십자가지고 나의 가는 이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오늘은 삼일절이고 전에 삼일운동을 일으키고 독립만세를 부르고 하던 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도 이 나라에 주역이었는데 지금은 그리스도인이 손가락질을 받으니 더욱 그렇게 바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면 귀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