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접견실
주님이 함께 계시면 그 장소가 교도소이던 기차안이던 어느 장소든 그곳에는 주님의 임재가 가득차서 모든 사람들을 주님으로 취하게 만 드십니다. 그 장면을 바로보는일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교도소의 접견실에는 교도관이 반드시 옆에 있으며 우리의 대화 내용을 모두 기록하는데 평균 한 명이 세 번 정도 같은 분이 참관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처음 교도소에 갔을 때 인상은 문은 철문이고 담장은 높으며 입은 옷의 색갈도 딱 두가지 까만 제복을 입은 직원들과 푸른색을 입은 수감자들이 있으므로 분위기 자체가 밝고 기쁜 활기찬 분위기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 장소에 주님이 좌정하여 않으시니 그 작은 공간에 우리를 취하게 하는 특별한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접견실에 들어서면 언제나처럼 우리는 디모데를 한 번씩 끌어안고 인사를 먼저 나눕니다. 서로 사랑을 전하는 인사를 하고나서는 손을 잡고 기도부터 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손을 꼭 쥐고 기도를 하고 나면 이번 만남에서는 디모데가 에베소서 4장 1~32 절까지 두 손을 잡고 눈을 감고 암송을 시작하였습니다. 전체 한 장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암송을 하자 그 작은 접견실은 다른 말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 말씀이 이미 우리에게 깨우침을 주고 있었습니다. 말씀이 우리 전체를 압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처음 디모데를 본 영균이도 그 암송을 듣고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옆에서 기록을 하고 있는 교도관은 하나님의 말씀에 취한 모습이었습니다.
특별히 에베소서 4 장은 옛사람과 새 사람의 하나님을 본받는 생활을 가르쳐 주고 있어서 그 말씀이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었습니다.
말씀 한절 한절이 우리가 어떤 상태에서 구원을 받았고 구원을 받은 새 사람은 구체적으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을 암송을 듣고 있으니 따로 설명이 필요없었습니다.
엡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행하지 말라
엡4: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엡4:19 그들이 감각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엡4: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엡4: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 진대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한 장 전체를 스스로 읽어보시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디모데의 모습을 처음 보고 나온 영균이는 “오기 전에는 무섭게 생겼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네요” 라고 하고 항상 함께 동행하는 저를 포함한 네명은 디모데의 밝고 착한 모습에 먼길의 피곤도 없어지고 기쁨을 얻고 돌아오게 됩니다.
디모데가 성경을 다 암송한 후에 저는 성경말씀을 디모데와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 방안에 소지품을 가지고 못 들어가게 하기 때문에 성경이 없이 성경말씀을 나누어야 하기에 가슴 판에 새겨진 말씀으로 전합니다.
늘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은 교도관들 중에 예수를 믿는 분도 있겠고 믿지 않는 분도 있을 터인데 한 결같이 말씀에 취해져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참관한 대부분의 교도관들이 삼십분을 후딱 지나는 것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듣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언제나처럼 그렇게 능력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기에 그 작은 방은 교도소도 아니고 억압된 분위기도 아니고 주님의 임재로 가득한 은혜가 넘치는 장소인 것을 바라봅니다.
지난달에 송학 파주에서 말씀을 전하고 난후에 그날 참석한 분중에 한분의 목사님과 장로님이 함께 배석을 하고 난후 티타임을 함께 나누며 잠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날 그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자신이 아는 한분의 목사님은 성경을 한 달에 늘 일독을 하는데 설교를 들어보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지 세상이야기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는 은혜의 말씀만 전한다는 이야기를 하시는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이 있다는 성경말씀을 알고 있지만 그 능력을 보는 사람은 드믈 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오직 조금도 세상 이야기가 썩이지 않은 하나님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전할 때 그 말씀은 모든 사람의 심령골수를 쪼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놀랍고 경이로운 감탄을 하게 됩니다.
접견실에서 우리의 만남은 30 분이 지났고 그 예배에는 찬양도 헌금시간도 축도도 없는 시간이었지만 우리 다섯 명과 교도관까지 합치면 6 명은 모두 보이지 않게 계신 주님의 임재를 마음으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의 감격”입니다.
그렇게 살아있는 예배를 드렸던 장소를 찾아가 보았을 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상태에서도 그 감격이 역시 느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터키에 갑바도기아 지역에서 지하동굴에서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던 감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밖에는 로마시대에 문화를 자랑하고 있는데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지하 동굴에서 숨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은 들어가는 입구의 동굴에는 한 사람이 겨우 구부리고 들어갈 정도의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죽음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핍박을 피해서 숨어야 하기에 그런 장소를 택한 것입니다. 그 동굴을 한참 들어가 보면 거기에 예배드리는 장소를 땅속에서 파서 넓은 장소가 나왔습니다. 물론 그곳에 지금 예배드리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다 천국에 가 있고 관광객만 있었습니다. 방문했던 장소마다 기도를 드리고 나왔는데 그날 순서는 제 차례였습니다.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말을 표현할 수가 없고 눈물이 복받쳐서 울다가 기도를 끝마쳤습니다.
그곳에는 주님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화려한 어떤 기구도 그 안에는 없었습니다. 물론 편하게 앉아 예배드리는 의자도 없고 조명등도 없고 강대상도 없는 그 장소였지만 그곳에는 주님의 임재가 강하게 있었고 지금도 우리를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다시 진정한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예배드리며 말씀이 선포된다면 십자가를 앞에 붙혀놓고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이 없어질것으로 생각됩니다. 어제 유명인이 스스로 세상을 하직했을 때 따라하는 사람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유가족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를 뉴스에서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이야기가 아닌 진정 하나님 말씀만 바르게 선포된다면 그 말씀은 우리 심령을 바른길로 인도해 주며 어떤 고통과 힘든 일도 이길 힘을 제공해 줍니다. 그러기에 이런 찬송시를 썼을 것입니다. “나와 세상은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러한 감격으로 예배를 드리는 한국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