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2) 윤의정
은주를 만나고 은주가 시집을 내는 것이 십년동안 기도 제목이었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시집을 출간해 주겠다고 하자 은주는 의정이를 소개해 주면서 의정이는 자신보다 더 시를 잘 쓴다고 하는 것이다. 덧붙여서 하는 말이 의정이는 자신보다 장애가 더 심해서 엎드려서 지내는데 종일 극동방송만 듣고 성경 읽고 하면서 시를 써서 아주 잘 쓴 시인데 같이 출판을 해 주면 좋겠다고 하여 의정이를 소개 받게 되었다.
의정이는 은주보다 이년 후인 1972 년생이다. 의정이도 처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고 3 살 때까지 정상 아기로 집안에 첫째 딸로 태어났다. 그러던 어느날 심한 고열이나 병원에 가보니 뇌신경에 이상이 생겼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후 몸이 괴롭고 아파서인지 의정이는 자주 칭얼대며 짜증을 부렸다. 어느 날은 의정이가 하도 울고 보채니까 엄마는 수건을 의정이의 입안에 틀어막곤 했다. 아마도 주변 사람들에게 시끄러워 페를 끼칠까봐 그러셨던 것 같다. 이때마다 의정이는 숨을 쉴수가 없어 너무 괴로워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엄마의 마음을 열어 의정이를 죽지 않도록 지켜주셨다.
우리가 한달에 한번씩 김포에 향유의집에 갈 때 기도하기전에 내가 권면했던 말을 의정이는 기억하며 이런 고백을 했다. “우리가 육신의 병을 고침 받기를 원한다면 우선 미움이나 원망이나 열등감이나 마음에 남아있는 앙금부터 하나님 앞에 모두 철저하게 내려놓고 용서받아야 해요” 라고 시작을 하자 바로 어릴 때 잊어버렸던 엄마가 입에 수건을 틀어막았던 기억이 나서 모든 것을 다 주님앞에 철저히 씻고 성결하는 기도를 했다고 한다.
열한살 때 어떤 분이 와서 엄마를 설득시켰다. 마냥 이 상태로 집에만 둔다면 의정이에게도 또 다른 가족에게도 아무런 발전이 없다며 시립아동병원이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일단 엄마는 의정이의 의견을 물었다. 병원에 가서 병을 고쳐 보자는 식으로 말했고 의정이는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어두운 시간 방문 밖을 나서 아저씨의 차에 올라타려 하니 “으앙”하고 울음부터 터져 나왔다. 11 살밖에 안되었으니 당연한일 아닌가? 그 시간 동생들은 이미 잠자리에 들어 한참 꿈나라 여행 중이었고 아버지는 마침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연유로 시골에 가 계셨던 터라 뵙지도 못하고 떠났다.
처음 가족과 떨어져 다른 환경에 처하니 낯 설음과 두려움이 교차해 많이 울었다. 집에 보내달라고 밥도 잘 먹지를 않은 채 몇 날 며칠 울기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곳 생활에 적응해 나가게 되었다. 그곳의 언니들과도 사귀게 되었고 그중 공태숙이라는 한 간호사 언니를 알게 되었는데 이 만남 속에서 성경 말씀을 자주 접하게 되었고 찬양도 많이 배우며 부르게 되었다. 이때부터 찬양을 몹시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라고 하셨듯이 찬양을 부르면 가슴속에 있는 것들이 터져 나와 아버지 앞에 그대로 올라가는 것같이 느껴지곤 했다. 그후 의정이는 예배 시간에 특송으로 찬양을 자주 올려 드리곤 한다.
비록 부정확한 발음이어서 다른 사람들은 잘 알아들을 수 없어도 머지않아 누구보다도 더 아름다운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으로 찬양 드릴 수 있을줄 믿고 주님께 먼저 감사와 특송을 올려드린다. 의정 이는 겉과 속을 친히 창조하신 주님께서는 모두 다 알아 들으시고 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기쁘다. 아주 가끔은 몇몇 사람들과 함께 저녁 산책을 하곤 했었는데 그때 맡았던 아까시야 향기는 기억 속에 진하게 있으며 자신도 아카시야 향기가 되어 주님의 그 크고 높고 깊고 넓으신 사랑을 만방에 흩날리기를 소망해 본다. 인간의 힘과 능이 아닌 오직 성려의 힘으로 말이다.
정식 초등학교를 다녀보진 못했지만 그 병원에서 15 살 때 특수교실에서 한글을 깨우쳐서 책을 읽을 수 있고 글로 표현할 수 있어서 처음에는 손이 자유로운 친구 한명이 의정이의 시를 대필해 주어 “나의 꿈”이라는 시를 적게 되었다. 기억이 희미하나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어제 밤 꿈속에 나는 날개를 달고 천사와 함께 하늘나라로 올라 올로 갔지요. 예수님의 손목을 잡고 하늘나라 이곳저곳을 구경했어요.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어요.”
전화번호를 수소문한 끝에 가족들을 6 년 만에 찾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만나고 보니 부모님의 모습이 달라져 계셨다. 아동시설병원은 가족이 없는 사람들만 있을수 있기에 다른 시설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나무젓가락을 물고 그곳에서 타자연습을 하게 되어 그후 컴퓨터에 나무젓가락으로 자판을 두들겨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를 쓰게 되었다.
그후 집을 떠나 산지 11 년이 지나 22 살이 되었고 한사랑 마음의 시설에서 더 이상 나이가 차서 그곳에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집으로 와서 가족과 함께 28 살까지 살게 되었다. 가족들은 교회를 가는데 의정이만 늘 집에 혼자 남아서 비디오로 혼자 예배를 드려야 했다. 의정이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싶고 혼자 거실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그런 시간이 답답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러자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사ᅟᅧᆻ다. “너는 내가 너와 함께 하는데 무엇을 외로워하며 두려워하고 슬퍼하느냐, 다른 사람들은 너를 다 이해할 수 없고 알지 못하나 나는 너를 조성하지 않았느냐 나는 너의 깊은 속까지도 꿰뚫어 보고 있단다. 너는 나의 안에 거하라 세상이 이해하지 못한 알지 못하는 자유 함과 기쁨과 평안함을 얻으이라” 순간 심령이 뜨거워지며 한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회개와 참회의 눈물이,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더 이상 밥만 축내고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하늘나라 확장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후 삼일 금식기도를 하고 엄마에게 자신의 소견을 이야기하고 지금 있는 김포에 향유의 집으로 옮겨왔다. 그곳으로 옮긴지도 어느새 14 년이 흘렀다. 의정이는 11 살 때 시설로 옮겨져서 삼십년이 넘는 시간중에 중간에 6 년동안 가족과 살고 인생의 대부분을 시설에서 살았다. 지금은 일년에 서너차례 집에서 데리러 와서 일주일정도 있다 오는데 요즈음은 올케가 임신 중이라 의정이가 부담을 줄까봐 집에 가지 않는다.
하나님은 은주와 같이 우리를 소개 시켜 주어서 6 년째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 한 가족으로 지내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행복동에서 조카 오빠 엄마 언니 이모등 많은 하늘 가족이 있기에 상처도 외로움도 없다.
손을 쓰지 못하기에 입으로 성경을 넘겨가며 읽지만 금년에 읽은 분량만도 7 독을 했다. 의정이의 성경을 읽는 열정은 행복동 가족에게 도전을 주어서 모두 성경을 많이 읽는 삶으로 바뀌게 하였다. 입으로 성경을 넘기면서도 그렇게 읽는데 우리는 손으로 넘기면서 더 열심히 읽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운동시키기 위하여 향유의집 이층 숙소에서 옆 건물 지하 예배실로 몸을 굴러 내려가고 있다. 향유의 집은 방은 따뜻하지만 옆 건물로 연결되는 복도와 교회로 내려가는 비탈로 된 복도는 한 여름에도 아주 차가운데 겨울에는 얼음을 구르는 것 같았다.
우리 선교회 학생들과 가족들이 의정이의 입장을 이해해 보기위해 직접 해보기로 하였다. 의정이가 앞장서서 굴러가는데 우리 모두는 어지럽고 차거운 복도에서 눈물을 흘리며 체험을 했다. 복도에는 휠체어들이 가장 자리에 있어서 까딱 잘못하면 의정이는 손발을 못쓰기에 머리나 몸을 다칠 수도 있고 시간이 약 20~30 분 가량 소모하는데 요즈음 같은 영하 10 도에도 멈추지를 않는 것이다. 그러기에 항상 엎드려 지내며 갸날픈 몸매를 하고 있는데 하루는 의정이의 팔뚝을 만져보니 가느다랗지만 알통이 단단하게 느껴져서 쳐다보며 웃었다. 그날 몇십명이 함께 굴러 내려가며 어떤 분은 속이 메스꺼워 토하기도 했다.
우리는 6 년째 그곳에 가지만 그곳에 더 이상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의 도전과 격려를 받고 온다. 백명 이상 거주하는 향유의 집에 다 같이 먹을 떡을 주문해 가는데 정부 보조금 10 만원중에서 일부를 의정이는 손발을 못쓰니까 허리에 차는 지갑속에 헌금을 넣어서 가지고 오고 은주는 발가락에 봉투를 끼어서 헌금을 주며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데 사용하라고 하는 것이다. 교도소에 있는 디모데에게 보내달라고 양말이나 장갑을 챙겨주기도 하고 어린 주연이가 올때쯤이면 막대사탕 하나를 사서 어떤때는 음료수를 사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은주와 의정이를 예를 들었는데 둘다 공통점이 송명희 시인의 고백처럼 남이 가진 건강 있지 않고 남이 가진 지식 있지 않으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다. 육신의 가족이 있지만 그들과 함께 살지 못하나 하나님의 가족이 더 풍성하다. 가장 상처를 많이 입은 것 같지만 상처타령하며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나팔수로 전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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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사람에게는 불행이나 상처란 존재 하지 않아요. 아픔은 나를 성숙하게 만들고 남의 아픔을 이해할수 있는 통로랍니다. 고통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고 피조물의 한계를 잘 알게 하는 특수 교실에서 배우는 과목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