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치유를 생각하게 된 동기(1)
나이를 많이 먹어서 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일까?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되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찾아와서 자신들의 속 아픈 고백들을 듣게 되었다. 자신의 아픈 마음을 털어 놓기 위하여 두 시간을 전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 일산까지 찾아오는가 하면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소개 해 주기도 하였다. 어느 날은 사회적으로 아주 높은 지위에 있는 남자분인데 그분은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 몇 분들도 한분은 아파트에서 떨어서 죽고 싶었다고 하기도 하고 출장 갔다가 호텔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다고도 고백했다. 물론 이분들이 남들이 보면 모든 것을 다 가진 분들이다.
한번은 우리 토요 새벽 6 시 성경공부에 참석한 분인데 그분은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온 분으로 처음 그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얼굴이 웃고 들어오지만 아주 슬퍼 보였다. 나간 다음에 문자를 보내서 “상담하고 싶은 사람을 오랜만에 찾았네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울증에 걸린 수 많은 사람들 마음이 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복음송의 가사가 생각이 났다. “감춰진 울음소리 주님 들으시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이분들을 좀 도와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내적치유에 관한 여러권의 책을 그때부터 읽기 시작을 했다. 그 책들은 한국의 전문가들이 이미 전문으로 내적치유를 하는 분들이고 미국에서 공부를 한 많은 분들이 쓴 여러권의 책이었다.
다른 저자들이 쓴 책의 시작이 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첫 장을 넘기면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교회에 이미 오래 다닌 사람들의 불행한 이야기이다. 세상 형편이 힘들어서 불행한 것 아니고 그들의 마음이 힘들어 불행한 이야기 이며 다수는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이 그곳에서 성경 이야기나 예수님 이야기를 할 때 부끄러웠다는 것이다. 케이스 별로 나온 이야기들의 주인공의 백 퍼센트가 교회 직분을 가진 사람들의 불행한 가정생활들의 이야기로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 분석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 내용들은 거절감, 수치심, 두려움, 열등의식, 등등 그런 감정들이 생긴 뿌리가 거의다가 부모나 어릴 때 받은 상처라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감춰진 분노가 그런 상처의 이야기를 만들게 되고 끝에 가서는 “용서하라” “사랑하라” 이런 식으로 결론을 맺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한참 듣다 보면 부모탓, 조상탓, 배우자탓, 주위 환경탓이었다.
나는 거기에 동의하기가 갸유뚱했다. 더 많은 이야기와 주위 사람들을 바라볼 때 상처와 아픔이 없다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내가 관찰한 인생의 이야기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결과이다.
예1.) 엄마는 한국의 최초의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이다. 그런 엄마를 가진 딸의 고백이야기다. 이 엄마는 요즈음은 의료보험이 생겨서 병원들이 많이 운영에 힘들지만 전에는 의료보험이 없고 사람들이 큰 병원을 찾지 않고 동네 병원을 찾아가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 엄마는 가정을 열심히 꾸려 가는데 음식도 스스로 만들어서 가족들에게 주었고 특히 딸이 고 3 이 되었을 때는 점심 저녁을 도시락을 싸가야 하는 시점에서 생전 자가용을 사지 않던 분이 기사를 두고 자가용을 샀다. 그 이유는 딸에게 금방 만든 음식을 기사를 통해 배달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고3 이라 입맛이 없이 피곤할 딸을 위하여 온갖 음식을 모양을 내어 특별 수시, 김밥, 금방 만든 만두 등을 배달하는 것을 보았다. 그 엄마의 뒷바라지와 정성으로 명문대를 졸업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딸에게서 자신이 행복하고 사랑받는다고 고백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결혼후 자신의 동생보다 엄마가 돈을 더 적게 주었다고 늘 엄마를 불평하고 나쁜 엄마를 만난 것 같이 언제나 투덜거렸다. 경제적으로 잘 살면서도 노상 하는 말이 “깡통만 차면 나는 거지야” 하면서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으려는 생각만 했다.
예 2) 이분의 남편은 60 세가 넘었는데도 아주 활발하고 열정적으로 사업을 하는 분이었다. 다른 남자들은 50 이 넘으면서부터 후줄근해지고 어깨가 쳐지는데 이 남편을 내가 보았을 때 그렇게 긍정적이고 열심히 일을 하고 아내의 원하는 것을 많이 들어주는 것이었다. 마치 어린 아이를 돌보듯이 다 들어주었다. 주거지도 대치동에 아주 대형 아파트에서 살면서 나이가 들면서 좋은 주거환경을 만든다고 대대적으로 새로 고쳤다.
이분에게는 세 명의 건실한 아들이 있었는데 결코 행복하거나 감사하다는 것을 모르는 분이었다. 이분도 불평불만이 대단한 것이 남편이 자신과 함께 놀아주고 여유 있게 살지 그렇게 일을 하느냐고 불평하여 그것이 병으로 까지 도져서 늘 병원을 여기 저기 전전 긍긍하며 검사하고 아무 이상 없다하고 퇴원하는일의 반복이었다. 이분도 강남의 대형교회소속이었다.
두사람의 예를 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를 부탁하러 찾아오곤 했다. 열심히 합심기도해서 기적을 체험하며 자신이 원하는데로 되었다. 그들중에 열명중에 아홉명은 잠시후에 자신이 원하는 것 불가능한 것이 되어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아주 소수이다. 내가 느긴 것은 상처는 바로 이런 우리 내면에서 오는것이라는것이지 누구의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