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세우는 일 (15)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 장 19 절에 제자 삼는 사역을 하려면 “행하며 가르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지 단지 가르치기만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보통 제자 양육이라고 하면 성경공부 교제를 어떤 것을 가지고 몇권을 가르쳤는 것이 제자 양육을 했고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님께서 “행하며 가르치는자”의 모델은 그들의 삶이 이미 이 세상에서 떠났어도 우리에게 제자의 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삶 자체가 우리에게 제자의 도를 가르쳐 주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경종을 울려 주고 있습니다. 정형외과의사로써 최초의 정형외과으사가 한센환자들을 수술하여 더 이상 불구는 없다는 것을 승리한 폴브랜드 의료선교사를 그러한 제자를 만든 사람은 그의 어머니의 삶이 그에게 모델리 되었고 그러한 폴 브랜드가 있었기에 한 한센환자의 고백은 늘 기억에 남습니다. “나는 한센병을 걸려서 가족에게 버림받는 생활을 하였지만 한센병이 걸린 것을 감사합니다. 한센병이 걸렸기에 볼브랜드를 만나게 되었고 폴브랜드를 만났기에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세우는 모습이고 성공적인 제자 양육의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폴브랜드의 모델인 그의 어머니의 신앙과 폴브랜듸의 한센 환자들에게 전도내용을 여기에 옮겨 놓습니다.
폴 브랜드박사를 통하여 1500 만의 한센환자들은 외과 의사로 최초로 재활 수술을 하는데 성공하여 새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에 관한 책을 세권을 읽으면서 한글 한글을 넘기기가 너무나 아까워서 감사해서 그 책을 써준 작가에게, 출판사에게 감사했습니다. 가장 감동깊게 배운 점은 한 영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곧 전도의 시작이라는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런 눈을 가졌기에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된것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을 세우는 어머니의 신앙의 능력에 관하여 오늘 아침 모세의 어머니와 존 웨슬리의 어머니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폴브랜드의 거울인 어머니의 신앙을 잠시 살펴 보겠습니다.
작가 필립얀시는 폴브랜드를 통하여, 그의 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 피조세계에 어떤 의도를 품고 계신지에 대해 또렷한 시각을 가질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신앙의 부정적인 어두운면만 주로 글을 써왔는데 그의 신앙에 폴브랜드는 엄청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환자들을 단순한 환자로 보지 않았고 하나님이 소중한 피조물로 보았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사람의 겉만 바라보는지…
거울을 사용하지 않은 폴브랜드의 어머니 이블린은 그의 거울은 해맑은 웃음을 짓는 인도사람들이고 폴의 거울은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인도에서 죽음의 산이라는 부르는 산악지대에서 흑사병으로 사십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90 이 넘도록 인도의 산악지대에서 인도인을 섬기고 사랑으로 주님의 복음을 전했는데 85 세가 되어서 손 발이 마비가 왔을 때도 강인한 신앙으로 이어나갔습니다. 이블린은 목발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부목과 대나무 지팡이 두개에 의지해서 천천히 뒤뚱뒤뚱 걸어다녔습니다.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전도 여행을 중단하는 법은 없었습니다. 이블린은 조랑말을 타고 수백 킬로미터를 다니다가 궂은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야영을 했습니다. 이블린은 나무판 위든 돌 위든 심지어는 맨땅바닥에서 자기도 했습니다. 이블린은 소박한 사람들과 함께 소박한 생활을 하면서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그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폴은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의료 혜택을 받을수 있는 곳에서 사시라고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세계 제일의 의료 혜택을 받으며 사는 것보다 마지막 순간까지 일을 계속하며 사는 것을 기뻐했고 그 일생을 이끌어 온 것은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폴이 어머니를 위해 감당해야 할 의무는 사랑의 주님을 따라가는 것 뿐이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그가 남긴 감명깊은 묵상: “나는 어느날 죽음에 이르는 질병을 경험하게 될것입니다. 나의 이 유한한 몸은 더 이상 싸울 힘을 잃고 어둠이 짙게 드리운 계곡으로 나 있는 길로 들어서게 될것입니다. 오 주여, 바로 그때 제가 패배자의 절망이나 목전에 있는 악의 환호를 듣지 않게 해주소서. 오직 내 안에만 시선을 두게 하십시오. 내 안에 밝게 빛나는 영원하시는 성령님만 바라보게 하십시오. 내 몸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기는 하지만, 위대한 경이 곧 영혼을 감싸고 있는 의무일뿐임을 다시 한번 알게 해 주십시오. 비록 내가 내 몸을 떠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이전에 알지 못하던 친밀함과 하나됨을 나의 구세주와 더불어 누릴수 있도록 주의 사랑과 임재로 붙들어주십시오.”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 폴브랜드가 한센 환자들이미 대부분 기독교들이 아닌 사람들에게 전한 복음의 내용입니다.
"Ten fingers for God" 에서 나온 부분입니다.
"저는 손을 수술하는 외과의사입니다" 폴은 연설을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늘 그 사람의 손을 봅니다. 손금 보는 사람들은 손바닥을 보면 그 사람의 미래를 알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손을 보고 그 사람의 과거를 알수 있습니다. 저는 어디에 못이 박혀 있고, 손톱이 어떤가를 보고 그 사람의 직업을 알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성격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것을 알수 있습니다. 저는 손을 사랑합니다. 저는 주님을 만나 뵙고 그분의 손을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될수 있길 간전히,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의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압니다. 나는 그분의 손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수 있고 느낄수 있으며, 그분 손에서 일어 났던 변화를 알수 있습니다. 자, 이렇게 생각해 볼까요? 탄생부터 시작해서 주님의 인생을 함께 따라가면서 그분의 손을 살펴 본다고 생각해 봅시다."
청중 대부분이 기독교도가 아니며,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폴은 아주 쉽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먼저 갓난아기 시절의 주님의 손입니다. 주님의 손은 작고 연약합니다. 빛을 움켜 쥐려고 해 보지만 아무것도 움켜쥐지 못하고 손가락 하나 하나 따로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여러분들은 대부분 능숙하게 움직이는 손이 있는것과 없는것이 어떤 것이지 잘 알고 계실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창조주이시지만, 인간을 위해 그분의 무한한 능력을 포기하시고 완전히 무력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그분의 뜻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 다음은 소년 시절의 에수님의 손입니다. 주님의 손은 서투른 솜씨로 못이나 철필을 쥐고 히브리어 글자를 써보려고 애를 씁니다. 주님의 손은 다른 사람들의 손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를 힘들게 익혀야 하는 인간의 손이었습니다. 다른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지식과 지혜를 쌓아가야 했습니다. 주님이 배운 몇가지 지식은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분께 가르친 지식이 불완전한 것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묘.
하지만 목수가 되신 주님의 손을 생각해 봅시다. 목수이신 주님의 손이 어떻게 생겼을지 저는 잘 잘 수 있습니다. 저도 한 때 건축자이자 석공이었거든요. 주님의 손은 거칠고 굳은 못이 박혀 있고 손톱은 부러지고,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었을겁니다. 엄지손가락 몇번 다치지 않고 또 톱날에 손을 베이지 않고서야 솜씨 좋은 목공이 될수 는 없는 법입니다. 사람은 실수를 거치면서 배워갑니다. 그리스도가 육체적으로 완벽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주님은 영혼이 완벽하십니다. 아무련 죄도 지으신 것이 없다는점에서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철저하게 다르실수 있다는 점에서 완벽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이 주님의 육체적인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손가락은 수도 없이 찧이고 베이고, 피를 흘러야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설교를 하는 그리스도의 손을 생각해 봅시다. 주님의 손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감동시키는 엄청난 능력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주님의 손길이 닿을때마다 자신의 몸속으로 성령이 들어오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환자의 배나 가슴만 만져 보고도 환자의 몸속에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수 있습니다. 심장의 고동이나 내장의 움직임을 감지할수 있기 때문이지요. 주님도 역시 인간의 몸을 만져 보시는것만으로도, 죄악의 범죄, 분노 따위를 감지할수 있었고 더 나아가 주님 자신의 믿음과 용기와 사랑을 불어놓을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의 손을 생각해 봅시다. 한 가운데에 못이 박힌 손을 생각하면 제 가슴은 찢어질듯 아픕니다. 그 손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손 속에는 힘줄과 신경과 혈관과 근육이 대단히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한가운데에 못이 박히게 되면 그 손은 불구가 될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치유의 손이 불구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저는 주님이 무엇을 겪으려 하셨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그 고통을 당하는 속에서 불구의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의 모습을 몸소 체율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가난한 사람과 함께 그 가난을 겪으셨고, 피로에 지친자와 함께 그 피로를 겪으셨으며, 손이 불구가 된 자와 함께 그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 다음은 부활하신 주님의 손입니다. 저는 부활하신 주님의 손을 생각하면서 대단히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내세의 삶은 완벽하리라 생가갛고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와서 내 손을 보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도마에게 주님의 손에 난 못 자국 속에 손가락을 넣어보게 하셨습니다. 왜 주님은 인간으로서의 상처를 계속 지니고 계시길 원했을까요? 주님은 땅에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영원히 일깨워 줄 흔적으로 그 상처를 지니고자 하셨던 것은 아닐까요? 주님은 그러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소망을 계속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그 고통이 흔적을 지니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폴이 연설을 마치자, 뜰 안에 모여 앚은 수 많은 청중들은 손을 들어 손바닥을 쳤다. 연설 시작때아 마찬가지로, 손가락 밑동만 달린 손, 손가락이 떨어져 나간 손, 깊은 상처가 난손, 찌그러진 원 모양을 그런 손들이었다. 하지만 연설 시작 때와 똑 같은 것은 아니었다. 손을 가리려고 하는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 볼수 없었다. 사람들은 연설 시작 때보다 훨 씬 높이, 얼굴에 닿을 정도로 손을 치켜들고 있었고, 그 모습에서는 자부심이 배어나왔다. 밑동만 남은 손가락에도 위엄이 깃들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