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좀더 검소하게 삽시다
우리 선교회는 이제는 자체 내에 경비보다 해외 지원비가 훨썬 더 많은 지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외로 나가서 하나님 일을 잘 감당하는 우리 선교회 출신 자녀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해외 흩터져 있는 수 많은 홀리네이션스 자녀들에게 사랑을 보내드립니다.
여러나라중에 영국에 우리 행복동 고석만 백경아 선교사님 가정을 방문했을 때 그곳은 8 월에도 가디간을 입어야 할 정도로 날씨가 우리 몸에 추위를 느기게 했습니다. 춥지 않느냐는 질문에 오해려 한국에 아파트가 너무 난방을 과소비 하지 않느냐고 웃는것입니다. 저가 느끼기에는 항상 으스스 하게 추웠습니다. 그렇게 물가가 비싼 가운데서도 선교사님 부부는 전혀 불편하거나 하지 않고 오히여 나눔을 너무나 잘하고 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그곳에서 우리 선교지 한곳을 매달 백만원의 나눔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런 자세를 가졌기에 우리는 힘을 다해 더 두분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몽골을 먼저 방문했고 삼년후에 네팔을 방문하였습니다. 몽골에 선교사로 간분이 쓴 내려놓음이라는 책에서 겨울이면 석탄을 집집 마다 영하 40 도에 때느라고 도시가 연기로 자욱하다는 내용을 기억합니다. 마그나이와 나라 부부 목사님들의 전해주는 이야기는 몽골의 석탄을 때는 곳은 그래도 행복한 곳이고 교회들이 그 석탄비를 감당을 하지 못해서 긴 겨울에는 사역을 쉰다고 합니다. 우리처럼 스위치 하나로 난방을 펑펑하는 것이 아니고 겨울이면 두시간씩 석탄을 집어 넣어 주지 않으면 파이프가 고장이 난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겨울에는 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고 들려주었습니다. 작년보다 금년에는 석탄값이 배로 올라서 석탄을 좀 덜 때는 바람에 파이프가 터졌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겨울에도 몽골 성도님들을 위하여 난방비를 더 지원했습니다.
한데 몽골을 방문하고 금년에 방문한 네팔은 좀더 심각했습니다. 그곳은 전혀 난방을 때지 않고 겨울을 나는 네팔 전체 국민들의 생활이었습니다. 전기 히타도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 그곳은 저녁이면 수시로 전기가 나가는 지역이고 엄청 비싸기도 하고 석탄도 어떤것도 땔수가 없기에 그냥 겨울을 나는 것이었습니다. 여름에도 히말라야 산은 눈이 덮힌 고지 인데 도시 카투만두의 겨울도 정말 만만치 않은 시간들인 것 같습니다. 교회를 건축하다가 예상보다 더 많이 드는 건축비에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 선교회에서 또 추가로 건축비를 보내 준것에 행복해 했습니다.
해마다 추수감사절이면 외국인 전체에게 겨울 용품을 선물을 하였는데 금년부터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 나와 있는 외국인들보다 그들의 고국이 더 힘들기에 해외지원을 이곳에서 좀더 절약해서 보내기 위해서 방침을 바꾼 것입니다.
이런 모든 지원비가 어디서 나오는것일까 라는 것을 전혀 언급하지 않다가 최근에 이야기들을 좀 해 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아파트는 그런 네팔 같은 지역에 비하면 난방을 때지 않아도 견딜만 하다고 어린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데 전혀 난방을 틀지 않고 힘을 다해 헌금을 하는 가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절약한다는 표현대신 실내가 너무 덥게 살다보면 밖에 기온하고 차이가 나서 감기가 더 잘 걸린다고 오히려 옷을 따뜻하게 입고 적당한 온도에 사는 것이 더 건강하다고 답변을 하는것입니다. 이분은 칠년이상 같이 교제를 하며 우리를 여러 가지로 도울뿐 아니라 우리보다 더 필요한 지역을 돕고 있습니다. 요즈음 겨울인데 코트를 입고 있지 않고 길이가 긴 스웨터를 입고 다닙니다. 사람들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 헌금을 하는줄로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다른 가정도 최선을 다해 헌금을 하는 삶의 방식이 기릅값을 아끼기 위해 자전거로 갈수 있는 지역은 모두 자전거로 가고 아이들 옷 한 벌도 아껴가면서 헌금을 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이 가정에 아이들은 아주 절약하며 사는 가정의 생활에 온 가족이 함께 협력하며 밝게 자랄뿐 아니라 그렇게 절약한 어린이 통장에서도 헌금을 최선을 다해서 하였습니다. 온 가족이 그런 해외 지원을 위해서 아주 검소하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한해 두해가 아니고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 당연할줄 알고 살아가며 온 가족이 행복해 합니다.
다른 가정은 식당업을 하며 십년을 후원한 가정이 있습니다. 이분들도 식당에 종업원들이 수시로 들락거리기 때문에 부부가 사람이 없으면 주방에서도 고된 작업을 하여 헌금을 보내 옵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온유하고 부드럽고 밝은 모습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차로 가면 20 분이면 직장을 갈수 있는 거리인데 지하철을 이용하며 최선을 다해 헌금을 합니다. 저가 그 구간을 지하철을 타 보니 시간이 두배가 걸리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두배의 시간이 걸리는데서 직장이 있는 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지하철이 갈아타야 하기에 걷는 거리와 합치면 그렇게 두배의 시간이 걸립니다. 늘 출 퇴근 시간에는 서서 왔다 갔다 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청지기의 직분을 감당하기 위하여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 회원 한분한분을 모두 열거하자면 소수이지만 한결같이 그런 자세로 헌금을 하여 이 거대한 군함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좀더 절약하면 해외에 우리보다 훨씬 더 열악한 지역에서 사는 수 많은 영혼들에게 더 많은 나눔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원래 나눔은 내가 다 쓰고 남은 것은 영원히 없습니다.
우리 선교회에 여러 가지로 수고한 한분에게 저가 양복을 선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가기전에 저가 저희 남편이 단골로 양복을 사는 곳이라고 이야기 하고 갔는데 그분은 가기전에 근처에 롯데 백화점에 양복을 생각하고 갔다는 것입니다. 뉴코아 에 가서 저가 그분에게 남편은 이곳에서 세일을 할 때 사입는데 그분은 특별히 세일하지 않는 양복을 사자고 하면서 30 만원짜리 양복을 해 드렸는데 그분은 그날 너무나 쇼크라서 두고 두고 그때의 놀란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남편의 친구분들이 저희 남편이 신은 운동화가 멋있어 보여서 어디서 샀느냐고 물었습니다. 15000 원짜리를 신었는데 그렇게 좋은 것으로 보였었나 봅니다. 홈플러스에서 그 값으로 샀다고 하니 회사의 회장님이 농담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더라는것입니다.
한데 우리 모두 행복지수가 높습니다. 무엇을 소유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우리의 편리함을 오늘 구하기 보다는 세계에 춥고 굶주린곳에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을 더 가치있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오늘 편리하고 내가 좀더 잘 먹고 잘 입고 따뜻하게 지내기 보다는 더불어서 나눔을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버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길을 택하는것입니다.
그렇게 절약을 하지 않고는 춥고 굶주린 북쪽에도 나눔을 절대 할 돈이 없습니다. 해외 어떤 나라에도 지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살기 때문에 사역자가 함께 이런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지역이 아닌 곳에는 후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 글은 우리 신학생들과 또 사역을 하는 분들과 또한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하여 쓴 글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고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전주 안디옥교회에 써 붙힌 표어는 늘 잊혀지지 않습니다. 서울의 대혈교회보다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겨울에는 추위에 견디고 깡통으로 지은 교회에서 여름에는 찜통으로 더운 그곳에서 “우리 좀 불편하게 삽시다”입니다. 그러기에 수 많은 곳에 300 명이 넘는곳에 파송을 하고 그곳은 자가용은 목사님부터 없고교인들 날르는 대형버스도 없습니다.
저는 “우리 좀 불편하게 삽시다”가 아니고 “우리 좀 검소하게 삽시다”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당신은 청지기로 뽑힐수도 없을뿐더러 사역자가 되려면 하나님께러부터 받기 위하여 갖추워야 할 자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