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허리케인
세계 가장 중심 도시인 뉴욕이 여태껏 듣도 보도 못한 허리케인은 바로 현관 앞 정원에 상어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고 모두 공포에 떨게 하였습니다. 몇 년 전부터 세계는 경험해 보지 못한 쓰나미 허리케인의 위력을 보고 입이 다물어 지지 않습니다. 특징 중에 하나는 점점 더 강도가 심해지는 것과 전에는 가난한 나라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을 덮쳤다고 하면 지금은 전혀 그런 것 하고는 거리가 멀던 가장 위상을 자랑하던 고급주택이나 안전한 곳이라고 관계 하지 않던 곳까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장수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실지로 세월이 갈수록 더 이상한 희귀 병은 심해지고 전에 소수만 앓던 병은 이제는 대중화가 되어 실지 장수한다고 하여도 오히려 편안하게 눈을 감는 대신 병원에서 온갖 고생하는 시간이 더 길어진 것 같다는 느낌을 같습니다.
오래 전에 “폼페이 최후의 날” 이라는 영화를 통하여 그 무서운 위상을 보았다고 하면 지금은 곳곳이 라이브 생중계를 실감 있게 수시로 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치 소동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적전까지 모든 패역한 죄 가운데 살던 모습을 점점 더 강도 깊게 하고 산다는 사실입니다.
요즈음은 인생의 과거의 모든 시간들을 계속 되돌아 보며 정리해 보는 시간들을 자주 갖게 됩니다. 인생의 여정에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 다른 허리케인을 맞게 된다는 것이 경험을 통한 고백이 됩니다. 각자 다르지만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일, 사업이 곤두박질하는 일, 예상 하지 않았는데 직업을 잃게 되는 일, 사고에 의하여 신체에 이상이 생기는 일, 불치의 병을 앓게 되는일……등등
이런 일들은 선진국, 후진국 관계없이 모두에게 해당이 됩니다. 허리케인이 내 집 앞 정원까지 상어 떼를 몰고 온다는 사실을 생각도 못해보았는데 그런 현실이 믿어지지 않지만 이 세상에서는 생기는 일들입니다.
이런 일들이 없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확실하게 가르쳐 주는 것은 환난은 분명히 당하나 주님이 이긴 것을 가르쳐 주셨고 우리 안에 평안을 누리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한번 상상을 한번 해 보면 내 집앞 현관 앞에 상어가 왔다 갔다 해서 미국인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고 보도가 되었는데 그런 가운데서 평안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담대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허리케인 앞에서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만 바라보며 부르짖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명의 발달도 무기력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성경에 좋은 모델이 있습니다. 사십 주야 홍수가 나서 전 세계가 휩쓸어간 것은 오늘 샌디라는 허리케인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이야기가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샌디라는 허리케인을 처음 경험한 것뿐이지 이미 성경에는 끊임없이 죄만 짓는 인간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대대적인 정리작업이 있었습니다. 그냥 나무가 쓰러지는 정도가 아니고 전 세계를 뒤덮고 싹 쓸어버린 사건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희망이 있는 것은 노아라는 한인물의 가족은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의 특징을 보면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창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노아는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다라는 기록이 연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면 전 세계를 뒤덮는 허리케인이 돠도 “너와 네 가족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대로 된 기록을 보며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방주를 짓고 있을 때 사람들은 바보 같은 짓을 한다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런 무서운 홍수를 본적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그런 일이 있을까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날은 매스컴을 통하여 세계 곳곳에서 지진과 기근과 태풍과 여러 가지 자연 재해를 보고 있어도 여전이 땅의 것만 바라보고 세상적으로 사는 우매한 인생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