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 2 차, 3 차 선교여행
나의 선교 여행을 일차는 홍콩에서 이차는 말레이시아에서 삼차는 이곳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나누게 됩니다. 홍콩에 사는 대부분의 주재원들은 거의다가 필리핀 도우미를 두고 살며 주로 외식과 쇼핑을 즐기며 그곳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더불어 한국에서 잘 칠수 없는 골프를 즐기고 지냅니다. 말레이시아에는 일년내내 여름이고 넓은 푸른 잔디를 가꾼 골프장이 바로 집 근처에 있기에 거의 99.9% 가 여자들도 골푸를 치느라고 시간과 정력과 모든 것을 드립니다. 한인교회에 가도 교회의 가장 책임자인 중진에서부터 주일 교회예배를 마치고 나면 골프장으로 향합니다. 남선교회 여선교회 친선대회를 하는 광고가 주보에 실려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전혀 놀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온 골프를 아주 좋아하는 어떤분이 골프장에서 며칠을 즐기면서 우리집에 묵었습니다. 그분의 질문이 한국은 땅이 좁은데 골프를 치려면 예약하기도 어려운데 말레이시아 골프장은 마치 대통령 전용 골프장 같은데 왜 저는 골프를 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그냥 웃었지만 “인생은 언제나 선택입니다.” 라고 속으로 대답했습니다. 육신의 소욕대로 사는 것과 성령의 이끄심대로 사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시간과 모든 것을 그곳에서 낭비하기에 인생은 그리 길지도 않을뿐더러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은 청지기로써 사용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걸어갈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골프를 치지 않으면 그곳에 교민과 교제를 할 기회는 별로 없습니다. 홍콩은 주로 레스토랑에서 교제를 많이 하지만 그곳은 골프장에서 교제를 하기에 낮에 한국 부인들을 찾으려면 단골로 가는 골프장에 거의 다 모여있습니다.
그곳에서 인도네시아 청년들은 지금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가 공장에서 일을 하듯이 한참 건축 붐을 일으키고 있는 현장에 불법으로 와서 노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식사를 준비해서 가곤 했는데 저는 도시락을 싸서 가면 함께 저와 동행하며 과일을 사가지고 간 홍현숙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저는 40 대 중반을 넘어셨고 홍집사님은 40 대 초반이었습니다. 저가 도시락 담당하고 가서 성경공부를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에게 어설픈 그들의 언어로 가르치고 있을 때 홍집사님은 설거지를 해 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라오스의 선교사로 간 소식과 지금은 다시 라오스로 가기 위해 필리핀의 신대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메일을 받고 놀랐습니다. 아직 젊었던 그 시간에 주님의 뜻을 행하였던 그 결단이 있던 집사님이 이제는 더 지굿한 나이가 되어 라오스를 섬기고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그 귀한 세월 다 보내고 이제 옵니다. 나 뉘우치는 마음으로 옵니다” 라고 처량한 찬송을 부를 것이 아니라 오늘 아직 움직일 수 있고 할수 있는 힘이 있을때 늘 주님을 바라보며 본향을 향해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달려가야 사도바울처럼 승리의 고백을 할 수가 있을것입니다.
딤후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나의 멘토는 항상 권사님입니다.
그래서 누가 나에게 물으면 항상 권사님의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권사님을 만난것이 축복임을 자랑합니다.
수업 시간에 멘토에 대하여 숙제가 나왔기에 나는 아무 부담 없이 권사님의 이야기를 썼는데 역시 권사님은 유명하신 분이라 바로 장재중 장로님과 아는 사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 제 기억력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2005년 권사님이 서울에서 함께 하기를 권했고 저도 그러고 싶었지만 그렇게 못하고 집안의 어른 들이 다 돌아가시고 2008년 1월에 라오스를 갔습니다. 2005년 아이들이 군에 있을때 하나님께 약속을 했습니다.
3년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그리고 저의 특기인 무작정 라오스에 갔습니다.
저는 권사님 처럼 살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무늬는 권사님인데 열매가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은 다 지나고 한국에 가고 싶어 기도를 하는 중에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제는 나의 노년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생각을하며 고민을 하던 차에
어떤 분이 저에게 필리핀에 가라고 하셔서 이곳에 와서 신학 공부를 하며
성경 공부와 권사님이 시켰지만 잘 빠져 나갔는데 여기서는 꼼작없이 성경 암송하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열매가 없는 이유를 알기 까지 참 오래걸렸습니다. 쉽게 선교를 하려했기에 그리고 타인의 밥상에서 얻어먹으려 했기에 나의 사역의 시작 자체가 어려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영어가 안되면 성경공부를 할 수 없기에 지금은 그 영어와 전쟁을 하며 영어 성경공부와 성경읽기 등 나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 때 철이 낫더라면 이라는 후회와 함께 영어 공부도 하고 바쁘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어서 최선 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후회 할 때가 늦지 않았다는 말을 생각하며 늦은 나이에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내년 4월에 졸업을 하고 6월경에는 라오스에 갈 것 같습니다.
쉽지 않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기에 타인의 이상한 눈초리에도 담대하게 맞서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 까지는 내가 한 일이 하나도 없기에 새롭게 무엇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모르겟습니다.
그럴수록 권사님의 담대함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권사님을 만나게 하시고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지점에서 권사님을 만난 것이 우연일 수 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다시 한번 격려해 주시려고 권사님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무식해서 용감한데.... 일은 벌려 놓고.... 지금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대책 없는 권사님의 멘티에게 좋은 권면이 필요 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자주 연락을 드리죠.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그래도 많이 귀찮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쁜 손주들 부럽습니다.
우리 큰 아들도 작년에 결혼했는데 아직 애기소식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참 예쁘네요.
항상 건강하시고 주님의 큰 사랑을 나누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