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 년 7 월 19 일 법브란드 목사님을 뵙고
지난번 교도소에서 디모데가 보내온 편지에 루마니아의 법브란드 목사님에 관한 글을 읽고 문득 1970 년 7 월 19 일 주일날 노량진 교회에 와서 그분의 설교를 듣고 감동받아서 쓴 일기가 생각나서 꺼내보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대학교 4 학년이었는데 법브란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정확히 말하자면 설교 듣기도 전에 그분의 모습만 뵈어도 은혜가 되었던 생생한 기억이 나서 그날 밤 일기에 기도문을 써 놓았습니다.
그후 그분이 쓴 여러책을 많이 읽어보았고 그렇게 인생을 살아온 주님의 증인은 영원히 잊혀 지지 않는 것을 체험하곤 합니다. 마치 죽은 엘리사의 뼈에 닿자 사람이 살아나듯이 말입니다.
[왕하13:21]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적당을 보고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일생에 그런 진실한 진짜 하나님의 사람을 뵈올 수 있고 그런 분들이 가르쳐준 교훈이 영원히 제 영혼 마음 밭에 씨가 되어 잊혀 지지 않기에 우리집에 오랜 역사의 이야기를 간직하는 나무 상자를 열고 빛바랜 노트에 쓰여있는 글을 여기에 올려봅니다.
“오늘 잠자는 저를 깨워주신 법프란드 주님의 종을 뵐수 있게 해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목사님이 건강한 몸으로 주께서 앞으로도 더 많이 주님을 전파하고 공산국가에서나 다른 나라에서 기독교인들을 세우며 여생을 보낼수 있게 하시옵소서. 저가 그 목사님의 가르침을 잠시 생각하다가 잊어버리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그 목사님을 본받을 수 있는 음혜를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주님이시여,
저의 마음은 부끄러움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회개합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잠든 영혼을 깨워주실 귀중한 은혜를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주셨습니다. 저에게 어떠한 고통이라도 즐겁고 평온한 마음으로 이길수 있는 힘을 그 목사님이 이기는 간증을 통해 얻게 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하고 내일 걱정을 말고 오늘 걱정으로서 족하다고 말씀하신 주님을 잊어버리고 여러 가지 아주 사소한 걱정으로 괴로워 하였습니다.
주님이시여,
이제 부터는 법사에 감사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많은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주님을 기억하고 저의 조그만 고통을 이기게 하옵소서. 원하옵는것은 저가 인생의 짧은 쾌락에 영원한 평온을 잃어버리는 생활이 되지 막게 하옵소서. 저가 말로써 주님을 전파하지 않고 곧 행동으로서 거룩하신 주님을 찬송하며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저는 연약하고 간사한 인간으로 주님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즐거울 때는 전혀 주님을 기억을 못하고 괴로울 때만 간구하는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주님이 제게서 떠나지 마시옵고 항상 주님을 사랑하고 앙모하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가 남을 미워하지 l말고 아무리 저를 욕하고 질투하는 친구라도 사랑할 수 있게 범브란드 목사님이 모범을 보인 것같이 따라갈 수 있게 하옵소서. 저가 그들을 미워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을 모두 비난받게 한 적이 많습니다.
주님이시여,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옵시고 겉으로 뿐만이 아니고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주께서 또한 그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마음에 평화를 주옵소서.
사랑이 많으신 주님, 우리가 어떠한 난관이 닥쳐도 이길 수 있는 용기와 신앙으로 항상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옵시고 세상에 다른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되지 말게 하시고 부모를 공경하고 가족들 하나 하나를 주께서 사랑하듯이 사랑할수 있게 도와 주소서.
우리 가족뿐 아니라 우리 민족 전부가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하옵소서. 매일 요즈음은 홍수 때문에 많은 재산을 피해당하고 죽고 하는 이나라를 기억하여 주옵소서. (당시에 한국에 아주 큰 홍수가 있었던것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사랑하는 주님이시여, 저희 힘은 약하고 저희는 가난하지만 주님은 부요하옵니다. 그들을 구하여 주시옵소서. 해마다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서로 속여 넘어가고 최악에까지 이르렀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남들에게 비난을 받을 뿐 아니라 저희는 주님의 사랑을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먼저 저희 그리스도인들부터 정신을 차리고 우리 형제들을 구원하고 전도할 수 있게 하옵소서. 개인의 욕망과 그날 그날 사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도록 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약해질 때마다 주께서 강한 힘을 주시옵소서. 오직 주님의 능력만이 이 민족을 구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무신론자와 유물론자로서 주님을 모릅니다. 전 교인들에게 주께서 힘을 주셔서 가까운 곳에서부터 모범을 보일 수 있게 하시옵소서.
북한에서 몰래 기도하고 있는 주님의 자녀들도 기억하여 주옵소서. 그들은 오히려 환란과 고통 중에서 저희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심히 부끄럽게 생각하옵니다. 자유스러운 저희가 그들을 위해서 항상 기도하게 하여 주시고 그들을 위로하며 계속해서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이 모든 것을 저희를 위해서 돌아가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기도문이 저가 22 살 때 쓴 기도문입니다. 당시에 법브란드 목사님은 아주 허름한 옷을 입고 노량진교회 강단에 스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빛났으며 어떠한 농담도 가식도 없이 공산주의에서 믿음을 지킨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박해를 할때 어떤때는 대번을 입에 먹이기도 하였는데 그때 다른 사람 대변 말고 자신의 대변을 먹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는 이야기도 생각이 납니다. 기억나는 이야기중에 자신의 아내의 가족을 죽인 독일인을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복음을 전한적이 있습니다. 아내는 집에 있었는데 그 독일인도 자신이 한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그 독일인에게 만약 주님을 영접하고 한 가족이 되면 자신의 아내는 전혀 원수로 취급하지 않고 한 형제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잠을 자고 있는 아내가 있는 집을 독일인과 함께 갔습니다. 현관문을 들어서면서 아내에게 지금 아무개가 우리와 한 그리스도인의 형제가 되어 왔다고 말하자 아내는 잠을 자고 있다가 나와서 그 독일인을 포옹하고 뺨에 키스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저는 너무나 감동을 받았습니다. 당시에 이십대 초반의 대학생이었지만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를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법브란드 목사님이 감옥에서 잠깐 풀려 나왔을 때 어린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어떠한 박해도 이길수 있는 영생의 소망를 심어주며 잠시 잠깐의 안일한 삶과 비교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해 주며 무장시켜 주었던 글도 읽어 보았습니다. 인생전반에 진짜 그리스도인의 롤모델을 보여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