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아침 수 많은 교회의 십자가가 자랑하는 대한민국 우리 조국, 여기 저기 성경책을 옆에 끼고 교회로 가는 발걸음들 그러나 이 조국이 어찌 이 지경으로 되었을까 라는 안타까움으로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연이어 성폭행의 기사가 끔찍한데 자신의 집 안방에서 성폭행을 거부하다 살해당안 가족의 아픔을 얼마전 들었는데 또다시 우리 손자와 같은 나이의 어여뿐 일곱 살의 아이가 성폭행을 당하다니.....그것도 옆집 아저씨에게.....저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기에 뉴스의 이야기를 주로 시청한 사람들의 입에서 듣습니다. 태풍이 불고 이 어수선한 날씨에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다리 밑에서 성폭행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어린 생명을 보호하지 않고 그 엄마는 어디에? 라고 당연한 질문을 했습니다. 밤이 새도록 PC방에서 있었고 성폭행을 한 남자는 함께 PC 방에 있다가 일찍 자리를 떠서 범행을 저질렀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가슴이 아프고 그 어린 생명이 당한 상처가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린 생명이 푸근하고 안심할 수 있는 품이 엄마품인데 어느 날인가부터 엄마도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어린 세 명의 자녀를 목 졸라 죽이고 “생활고”라고 대면 자신의 변명꺼리가 되니 어찌 천만이라는 기독교인을 자랑하는 나라라고 할수 있을지 하나남 아버지가 가슴이 아파서 얼마나 애통해 하실까 생각하니 기가 막힙니다.
전에는 그런 일들을 매스컴을 통하여서만 볼수 있었는데 아주 가까이서 인간의 본능의 최고의 사랑이라는 본능조차 없는 부모를 바라보며 그런 뉴스의 이야기가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여인은 십대에 문란한 성관계를 가지고 아이를 다섯 명이나 낳았습니다. 아주 일찍 나이에 아이들이 다섯 명이 되었습니다. 처음 이 여인을 만났을 때 스무살이 되기전에 아기를 낳기 시작하여 삼십이 갖 넘었는데 이미 초등학교 6 학년 아들이 있었고 초등하교 아이가 네명에 유치원 다니는 망내까지 다셧명이었습니다. 그녀는 정부보조금을 받기 위하여 남편과 이혼을 하였고 그녀늬 문란한 생활은 지금까지 계속되어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딸은 중학생이 되자 마자 남자아이를 데리고 집에 와서 자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엄마는 관계하지도 않았고 당시 너무나 예쁘장하게 생겼던 둘째 아들은 이미 소년원에 들어가버렸습니다. 얼마나 “죄”가 무서운지 모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최근에도 또 다른 남자와 함께 병원에 나타났다가 우리 동역자와 마주치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주님은 사복음서에 보면 종교인들인 바리새인들에게 “외식하는자여” 이렇게 그들을 책망했는데 요즈음 말로 하면 “이 위선자야” 라고 하셨습니다. 장애우들을 위한 특수학교를 한다고 차려놓고 그들을 성희롱 대상으로 해서 사회의 물의를 일으켰던 사건이 기억이 납니다. 그학교를 운영하는 운영진은 장로들이고 재판을 받을때도 가슴에 십자가를 부치고 “주여 이 고난를 이기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습니다. 오히려 판사나 이런 사람들과 한통속이 되어 그런 끔찍하고 경악스러운 일을 하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가 작가가 영화로 나오게 하게 되어 그 학교가 폐교된 사실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이런 일을 볼때마다 로마서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롬2: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전에 살던집에 아랫집에는 남편이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아주 어린 자녀들을 두고 해외에 나가서 집 한 채를 마련해 보려는 남편의 선 한뜻과 정반대로 이 여인은 한방에서 밤이면 카바레에서 춤을 한바탕 추고 와서는 남자를 함께 데리고 와서 한방에서 잠을 자곤 했습니다. 저는 그 여인에게 복음을 전해서 같이 교회에 데리고 갔는데 그 여인의 고백이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밤만 되면 저절로 자기 발이 죄를 짓는 장소로 달려가게 된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죄를 짓는 것도 무섭지만 그 두 딸이 무엇을 배울까 생각하면 너무나 무서운 현실입니다.
주일날 교회로 모이는 그 사람들부터 “죄”에서 성결함을 선포되어져야 하겠습니다. 사망이 왕 노릇하지 못하게 성결하게 예수의 피로 씻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예수님이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게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참된 의미를 우리가 깊히 깨닫고 대대적인 회개의 새 운동이 교회마다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