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가문의 자녀로
세계 어느 나라 민족도
자신의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답니다
모든 사람은 불완전해
죄악 중에서 태어났기에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이
인간의 애환이지요
고통의 주범은 죄랍니다
딱 한 가지 해결의 길은
새 가문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어 새 나라에서
사는 길이 있지요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어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로 옮겼을 때
비로소 평강과 기쁨과 즐거움이
빛의 나라에서 넘침답니다
이 세상을 떠나 죽은 다음에
가는 것이 아니고
지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나라
지금 옮겨 오세요
(요 3:3, 눅 17:21, 롬 14:17)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라는 표현을 깊히 묵상하며 많은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대하8:14]솔로몬이 또 그 부친 다윗의 정규를 좇아 제사장들의 반차를 정하여 섬기게 하고 레위 사람에게도 그 직분을 맡겨 매일에 합의한 대로 찬송하며 제사장들 앞에서 수종들게 하며 또 문지기로 그 반차를 좇아 각 문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전에 이렇게 명하였음이라
성경을 깊히 묵상하며 반복 반복 또 읽고 묵상하다보니 성경에 나오는 인물은 우리나라에 역사적인 인물 세종대왕을 비롯하여 우리와 익속한 그 누구보다 실지로 잘 아는 우리에게 신앙의 진수를 깨우쳐 주는 것을 느끼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책속의 인물의 이야기로 들리지가 앖습니다. 너무나 잘 아는 인물로 느껴집니다.
내적 치유 세미나를 우리 자체 내에서 여름과 겨울 두 번에 걸쳐서 했고 영국에서도 인도하였지만 성경의 인물들을 깊히 살펴볼수록 어떤 상처나 고통도 아버지품안에서 오히려 우리를 성숙한 아버지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는 코스라고 생각하니 넘치는 소망이 생깁니다. 오히려 우리는 왜 시편에 고난이 유익이라는 고백이 나왔나를 한 단계 더 높은 치유를 선포할 수가 있습니다.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구약에 하나님이 쓰임 받은 모세, 요셉, 다니엘 어떤 인물도 이 고난의 수업을 그냥 통과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저는 가금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만약 선교회를 하지 않았고 그냥 평범한 교인이었다면 저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지금처럼 생생하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려주지 못했을 것이라는 고백을 많이 합니다. 그러기에 시편의 고백이 “아멘” “아멘” 하며 공감을 합니다.
[시73:2]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시94:18]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그런 간절한 상황이 아늘대 누가 하나님 앞에 일주일에 하루를 금식하며 기뻐할 수가 있을까요? 라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오직 주만 바라보아야 하기에 다윗과 같이 고백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시편 78 편을 읽으며 만나를 비같이 내리신 이야기나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신 이야기며 떡도 주시고 고기도 주신 이야기가 비디오로 보는 것 같이 선명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새 가문, 즉 아버지의 자녀가 되면 오히려 안일한 모든 것에서 자리를 털고 독수리 같은 훈련을 기뻐해야 할것입니다.
신32: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저는 신명기 32 장 11 절에 독수리의 훈련을 늘 기억합니다. 독수리는 아주 어린 아기 일때 벼랑 끝에 자기 털을 뽑아서 둥지를 만들어서 밑에는 가시를 놓고 그 위에 부드러운 깃털을 놀고 새끼를 처음 애기였을 때 그곳에서 먹이를 가져다 먹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금만 크면 부드러운 깃털둥지에서 안 나오려고 바동거리는 새끼를 밀치는데 나오게 하는 방법이 깃털을 제거하면 가시가 찔려서 할수 없이 새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높은 벼랑에서 떨어트리면 새끼는 그냥 밑으로 놀래서 떨어지는데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날개를 펴서 새끼를 낚아채서 다시 높이 상공을 나르고 다시 떨어트리고 반복 훈련을 하며 그렇게 높이 나르는 독수리로 만드는 말씀이 바로 신명기 32 장 11 절에 묘사된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앞에 어떤 고난도 오히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이기는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독수리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고 실패하면 참새 밖에 되지 못할 것입니다. 참새는 비가 오려고 하면 낮게 나르지만 독수리는 태풍이 오면 더 높이 날라서 태풍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높이 나르는 태양을 언제나 가장 가까이서 보는 새가 되는것입니다.
고난은 오히려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더 겸손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게 할뿐 아니라 자족하고 탐욕에서 더 자유하게 되며 주와 함께라면 이기지 못할 어떤 고난도 없는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 다윗의 고난을 자세히 함께 묵상하니 성환이가 그 내용을 다시 지호하고 나누며 어떤 어려움도 이길수 있는 소망이 생긴다고 제가 말해 주었습니다. 안이할수록 사람들은 허약해지고 진짜 복음이 전파될때 사람들은 소망을 갖게 되고 강해집니다.
독수리가 되고 싶습니까? 참새로 만족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