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된 청지기를 찾으시는 아버지(5)
진짜 믿음의 위력을 맞좀보렴
어리석은 사람아
진짜 믿음 좀 보여주렴
행함이 없다면
네 믿음은 헛거야
진짜 믿음과 순종은
함께 따라 다녀
입으로만 믿는것은
진짜 믿음이 아니야
진짜 믿음은 순종하게 되지
행함이 없다면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것 같이 죽은 믿음이란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믿음으로 앞에 막힌 태산을
바다로 던질수 있는
진짜 믿음 좀 보여주렴
진짜 믿음의 위력을 맛좀 보렴
(약 2:17~22)
청지기의 직분을 감당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진실로 믿을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을 수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모든 것의 소유는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만 할뿐이라는 결심과 순종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전11:1-2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11:2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나눌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식물을 나누면 그것이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오기에 힘껏 나누라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아직 어릴 때 둘 다 초등학생이었을 때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까지 나누워서 지급을 한다는 천만 원의 교육보험을 들어 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중앙성결교회를 출석하였는데 교회가 동대문에 위치하고 있었고 홍콩에서 근무하다가 바로 귀국한 터이어서 새벽기도를 집 앞에 있는 교회를 다녔습니다. 중앙성결교회는 당시에 건축을 하고 있었고 교회를 건축하다보니 계속 재정이 필요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헌금을 하고 또 하여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이 없는 상태에서 집 앞에 새벽기도 나간 교회가 삼층을 분양 받아서 온 개척교회였는데 다달이 천만 원을 지불하느라고 아주 가난한 작은 무리의 성도들이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교회에 관하여 잘 모르고 있었고 그 교회 소속도 아니었는데 그 교회에 가자마자 그달 분양 금을 내지 못해 새벽과 밤 계속 기도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기도를 하는데 그 교회에 필요한 금액을 저가 도와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순간 그 교회 상황이 불쌍해서 생기는 감정인가 생각하고 바로 전주에 중앙성결교회에 그 만큼의 헌금을 하여 집에 전혀 돈이 없는데 저가 감당을 할수 없는 형편이라고 그 생각을 무시했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그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역시 같은 마음을 더 강하게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구체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우리 집에 재정 관리를 하지 않습니다. 외국으로 나가기 전에는 월급 전액을 남편이 제게 주었는데 외국으로 나가면서 저가 돈 관리하는 것이 저한테는 맞지 않으니까 저가 필요한 생활비만 주고 남편이 하라고 부탁하여 남편에게 일임을 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 교회에 거액의 헌금을 저가 할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서 질문을 한 것입니다. “돈이 없는데 무슨 돈으로 이 교회를 돕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순간 저가 자녀를 위해 들어 두었던 천만 원의 교육보험을 떠오르게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87 년도에 일어났던 이야기라 당시에 액수는 지금의 액수와 가치가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청지기로써 순종을 했습니다. 그렇게 물위에 식물을 던지고 여러 날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4 년이 흘렀습니다. 한국에 외국은행들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하여 직업을 잃었을때 저희 남편만 홍콩에서 다시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백명이 직읍을 잃게 되었는데 혼자 직업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몇 달있다가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하는데 졸업장을 받으로 강단 앞으로 나갔습니다. 홍콩 국제학교에서는 중학교 졸업에도 강단에 한명씩 호명을 하여 강단으로 올라가는 장면을 볼때 (그 학교는 중학교 졸업식때도 대학 졸업처럼 한명씩 강단에 올라가서 졸업장을 수여 하였음) 갑자기 몇 년 전에 교육보험을 깨서 헌금으로 드렸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 저는 몇 주 동안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어서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잊어버렸던 생각이 갑자기 나면서 저는 두 아이의 몫의 천만원을 드렸는데 400 명중에 한명 직업을 주셨을뿐 아니라 엄청나게 비싼 학교를 남편의 외국은행에서 담당해 줌으로 다니게 하신 생각이 났습니다. 그날밤 넘치는 감사로 울고 또 울었고 그리고 허리 디스크는 낳았습니다.
이렇게 식물을 던지려 여러날 후에 찾는 경험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들이 대학을 입학했을 때 역시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아들은 미국의 아이비 리그 중에 하나인 브라운 대학을 입학했는데 IMF 가 터져서 우리는 홍콩에서 살다가 말레이시아로 갔는데 그 미국은행 말레이시아 지점에서 말레이시아돈으로 월급을 받으면 45% 정도가 미국 달라로 환산하면 떨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에 사업을 하는 한국인의 자녀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역시 식물을 던지는 일의 선택의 시간이 있었는데 한국에 한 신학생을 도와 주려고 삼년 학비를 1350 만원을 저축해 놓고 갖다 주려고 했을 때 그런 일이 터진 것입니다. 다시 청지기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을 해야 할지 아니면 내 아들의 학비를 도와야 할지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는 자를 절대 실망시킨 적이 없으신 것을 알기에 물위에 식물을 던지를 일을 선택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말레이시아에 미국은행이 생긴지 30 년만에 가장 영업이 잘되게 하셔서 특별 보너스를 타게 하셨기에 신학생 장학금을 주었어도 아들이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전혀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아들과 딸이 둘다 아빠의 직장을 따라 외국에서 살다보니 계획을 그렇게 한갓도 아닌데 결과적으로 둘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대학을 다니고 있는 도중에 삼 년 후에 딸이 또 들어가서 둘이 필요한 학비는 지금 계산해보니 우리 선교회에서 신학생 전체를 내는 돈보다 더 많은 학비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이 혼자 다닐 때는 한명만큼의 보너스를 타게 하셨고 둘이 다닐때는 둘만큼 보낼수 있게 하셨습니다. 어느 분이 미국의 명문대에서 공부를 시키기 위해 5 살부터 저축한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책에 쓴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걸어갈 때 정직하게 행하여도 하나님은 언제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 은행에 적금을 들고 돈을 모아두지 않아도 둘다 공부를 마칠 수 있었기에 작은 개척교회에 헌금한 액수는 해아리지 않을때 누르고 넘치도록 다시 안겨준다는 말씀대로 증명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두 아이들은 졸업을 맡고 직업을 가진 후 선교회의 든든한 후원자로 최선을 다해 돕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고등학교 도중에 이동이 있을 경우 학교 입학에 지장을 주는데 그 기도까지 하나님은 완벽하게 들어주셔서 홍콩을 떠난 날은 95 년 6 월 12 일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이고 말레이시아를 떠난 날도 정확하게 삼년이 지난 98 년 6 월 12 일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날이었습니다.
돈을 열심히 모아두지 않고도 그때그때 하나님이 위에서 부어주신 것으로 하나님의 신실함을 볼 수가 있던 것을 함께 나눌 뿐입니다. 그때 공부를 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외국인 신학생들을 많이 가르치면서 그 은혜에 보답을 조금이라도 하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