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식탁
바다를 갈라 무더기 같이
서게 하시고 건너갔건만
그 감격은 삼일밖에 가지 않아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깊은 샘에서 나오는 물맛 같은
물을 마셨건만 여전히 불평만 가득
바위에서 시내를 내어
물이 강같이 흐르게 하셨건만
마실 때뿐 또 의심하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 했지만
광야에서 식탁을 마련하랴
만나를 비같이 주시고
먼지처럼 많은 고기를
바다의 모래처럼 내리셨지만
여전히 믿지 않고 불평하는 인생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
주여 우리의 믿음 없는 것을
불쌍히 여기소서
광야에서 베푸신 식탁을
당신이 베푸신 기적을
늘 잊지 않게 하소서
사람의 기억 속에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과 손길을 잊지 않고 감사한다면 우리는 수 많은 걱정과 근심 중에서 자유하며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력이 너무나 짧어서 기억하고 감사하기 보다는 두려움과 의심과 덩달아 나오는 불평이 우리의 마음을 마귀에게 빼앗겨 평안을 잊게 되고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신 능력을 수 없이 열거할 수가 있습니다. 저가 우리 신학생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갑자기 환자가 생겨서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할때 그런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향할 때 병원비가 얼마 나왔을까를 생각할까 아니면 얼마만큼 다쳣을까 생각할까를 질문했습니다. 한 결같이 저가 얼마나 다쳤을까 생각할까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한데 사실대로 대답을 하면 병원비가 얼마가 나왔을까 생각합니다. 마치 오늘도 바위를 쪼개서 깊은 땅속에서 나오는 물맛과 같은 물맛을 아버지께서 내실까 라는 생각입니다. 한두 번의 환자도 아니고 늘 하늘로부터 준비되어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듯이 내리지 않으면 한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광야입니다. 몽골에 깐숙씨가 한국에 잠시 와서 길에서 쓰러져서 학생들 한달에 한번 생활비를 주는 날 그의 병원비는 550 만원이라는 액수였습니다. 요새는 25 일이 되면 이번달도 1675 만원이라고 회계 정은실집사님이 제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외에 월말이면 엄청난 다른 지출이 나갑니다. 그런 가운데 갑자기 환자가 생겼을 때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가 어떤지를 진단해 볼 수가 있는 시간입니다.
깐숙씨는 당시에 이대동대문 부속병원에 입원했고 지금은 그 건물이 이전하였는데 그때 그 병원 복지과에 근무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저와 만났을 때 인사가 “외국인 도와준다고 한국인 괴롭히기 없기”를 쐐기를 박아서 말했습니다. 저가 그런일은 사전에 있지 않다고 하였는데 당시에는 두명의 암환자를 계속 입원과 퇴원을 번갈아 가며 시켜야 하기에 엄청난 병원비가 들었습니다. 김대진선생님은 그 병원비가 엄청난데 한번도 실수 하지 않고 모두 지불을 하니까 한번은 거꾸로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방글라데쉬 어린아이를 입원시키고 퇴원시켜야 하는데 병원비가 없다고 하니 저희보고 내 줄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분이 요청했을 때 전혀 돈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저가 “지금은 없는데요.:” 라고 하니 “그럼 다음 주면 되겠어요?” 라고 하면서 저가 워낙 많은 병원비를 잘 내니까 그 다음주에는 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분의 믿음대로 다음 주에 그 방글레데쉬 아이의 병원비를 내 드릴수가 있었습니다. 그 돈은 50 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깐숙씨가 입원해서 많은 액수를 내게 되었을 때 복지과직원은 자신이 어떤 단체에 그의 상황을 저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신청하여 그의 병원비중에 300 만원을 지원받도록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오십만원을 도와주고 300 만원을 받았으니 여섯배를 돌려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식탁을 비같이 내리는 만나와 바다의 모래같이 날마다 필요를 채워 주신 것입니다. 그날 동대문에서 550 만원을 또 마련해야 했을때 동대문 지하철역에서 그 병원까지 가는 비탈길을 걸으며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 광야에서 식탁을 마련하나 생각하며 걷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믿음의 싸움을 하는 법을 배웠고 그때마다 한 단계 더 높이 상공을 나를 수 있는 독수리의 기법을 배워 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갈 길은 묘연하지만 배워 가는 이 광야의 수업을 감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