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의 편지
샬롬 사랑하는 울엄마께,
사람에게서 하늘처럼 맑게 보임을 느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만나는 엄마의 글속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뵙게 되는 사랑하는 엄마와 이모님과 장로님과 집사님과 이번에 뵈었던 나라 목사님의 모습속에서 맑은 하늘을 보았습니다. 넓은 품에 안겨 보았습니다. 엄마의 아들 디모데도...하늘처럼 맑고 넓음이 느껴지는 사람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나라 목사님은 잘 돌아가셨는지요? 목사님의 간증을 통하여, 모습을 통하여 “아 좋은 밭에 뿌려진 사랑의 씨앗은 예쁜 열매를 맺고 또 그 열매가 터트려져 뿌려진 열매들이 또 다른 사랑의 결실을 거두게 하는 구나를 다시금 알수 있었구요. 나라 목사님이 몽골에서 보듬은 상하고 아픈 영혼들을 위하여 나라 목사님의 참 귀한 사랑의 삶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엄마,
참 많이 울부짖고 디모데 스스로를 자학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너무도 무서운 형량의 짐을 걸머지고서 손바닥만 한 창문 큼으로 찾아오는 햇볕의 따스함만이 느껴지는 그런 1 평 남짓한 독방 안에서 생활할 때였습니다. 자꾸만 삶을 포기하는 교도관이 보기에 참 많이 가엽게 느껴졌던 인생이었던지 맘 좋은 교도관께서 사회복지 가를 연결 시켜주 신것이 여호와의 증인 이셨던 것입니다. 떡을 받아먹으려고 과자를 얻어먹으려고 기독교가 되었든 천주교가 되었든 어떤 존재든 그분이 한달에 한번정도 찾아오시어서 하나님은 형제님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대화를 나누려 하실 때마다 저는 더 완악함을 보이려는 듯이 퉁명스럽게 그분을 대했고 또 어떤 날은 십여 분의 접견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서 하실 말씀을 다 하셨으면 그만 돌아가겠으니 가실 때 음식이나 많이 넣어 달라고 하면서 접견 장을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년여의 세월이 흘렀고 엄마께 말씀드렸던 교통사고로 그분이 돌아가신 일이 생겼습니다.
그분이....어느 누군가아ㅢ 거짓된 가르침으로 인하여 올바르게 하나님을 영접하지 못한것을 지금은 알고 있지만 그때에는 저의 완악함 속에서도 끝까지 따뜻하게 저를 보듬으려 하셨던 그분은 제게 사랑을 나누시려는 모습으로 느껴졌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분이 제게 종교적인 교리나 가르침을 가르치시며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설영 가르치려 하셨더라고 그당시 저의 마음은 그 어떤 것도 마음 안에 온전히 담으려 하지 않았을 테고 오히려 더 잔항심만 가졌을지도 모를 일이였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그런 가운데 저의 거듭남의 은혜가 있었고 저는 누군가의 큰 영향력 없이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지난 4 년 동안 그저 푯대만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노역일속세서의 현실에 감사했고 주어지는 기회에 최선을 다하여 노력했습니다. 신앙의 지식과 깊이는 미약했지만 공동체 속에서 섬김을 통하여 제 자신을 낮추려는 노력은 강렬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 사랑에 대한 진정성이 부족했고 올바른 신앙에 대한 지혜가 부족했기에 우리 주님은 엄마와의 귀한 모자의 인연을 계옥하셨고 만나게 해 주셨음을 믿습니다. 주님 보시기에 예쁜 사랑 닮아가라고...주님이 바라시는 올바르고 정직한 믿음의 삶을 배우라고...
사랑하는 엄마,
바깥세상...요란한 교회 모습은 있어도 진자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은 아주 소수라고 하시며 손양원 목사님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이셨는가를 말씀 해 주셨던 엄마를 생각하는데 TV 뉴스 속에서 봄 가뭄으로 인하여 모내기를 해야 할 시기에 물 부족이 생긴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올 겨울에 그리도 많은 눈이 내렸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름이면 홍수로 인하여 물난리가 나기도 하고 겨울에 그리도 많은 눈이 내리는데도 얼마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마실 물 마져도 부족하다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이땅의 세상 속에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
이 땅의 수많은 교회안에 수백 수천명 또 어떤 곳은 수만 명의 많은 예수쟁이들이 모여서 사랑을 노래하는데 왜 이 땅은 흥행에 목마른 영화나 공연처럼 사랑에 목말라 가고 있는지...손양원목사님의 사랑의 삶에 대한 동경을 하면서 며칠 전에 오랜만에 만난 동료가 건네준 간행물 책자 속에 담겨있던 어느 선교사님의 사랑의 삶이 진정 이 땅의 죽어가는 영혼들의 그리워하는 삶이라는 생각을 하며 디모데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캄보디아의 메굴강 빈민촌에서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물새엄마라고 불리는 김연희 선생님, 23 살의 나이에 1 년간 캄보디아에 봉사하러 갔다가 돌아오는데 폐결핵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숨쉬기조차 힘들게 옆구리가 아파오는데도 자신을 찾고 바라보던 빈민촌 아이들이 얼굴이 계속 떠올라서 가족들의 완강한 반대를 뒤로하고 아픈 몸으로 다시금 캄보디아의 빈민촌으로 달려가서 8 년째 그곳에서 섬김의 삶을 사라고 계시는 선교사님, 그분의 신앙고백이 제게 큰 도전이 됩니다.
“혹여 죽게 되더라도 그곳에서, 사랑하는 아이들 품에서 죽고 싶습니다. 선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다. 처음 이곳에 올 때는 성경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면 그곳이 곧 선교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빈민촌에 살면서 선교란 그들의 인생에 뛰어들어 다방면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모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선교이며 끊임없는 보살핌이라는 것들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이 당에 수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수백만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있기 보다는 절망과 아픔과 현실속에 올고 있는 영혼들 속에서 천국이 무엇인지 배우고 사랑의 삶을 살으쎴던 그리스도인의 발자취를 따라 가기를 소망합니다.
영혼 깊히 들어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사랑의 섬김의 삶이 저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의 한센 환자들을 어루만진 그 손길을 닮기를 소망합니다.
넣어주신 용돈과 책들을 잘 받았습니다. 이모님이 넣어주신 음실 물도 잘 나누어 맛나게 먹었구요. 감사드리며 사랑하는 우리 가족 모두 복된 사랑의 모습으로 승리하시그를 바랍니다. 알렉스 형제님의 선물, 꿈같은 사랑 책도 감사합니다. 형제님께 편지드릴께요. 엄마, 참 많이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