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부흥운동 (영적 대각성운동)
한국교회는 주로 교인수가 몇 명 모이느냐 헌금이 얼마 걷히느냐 아떤 교회 건물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부흥의 점수를 사람들 기준으로 매기지만 하용조목사님의 말슴이 그때 마다 생각난다. 좋은 프로그램은 많은데 날지 못하는 교인들만 있는 것을 안타까이 여길때 성령으로 돌아가라는 음성을 듣고 돌아간 사실을 설교를 통하여 들었다. 주위에 대형교회를 다니는 다수가 이런 고백을 하였다. “교회 내부에 들어가면 머리 아프니까 교회에 등록하지 않고 교회 기둥뒤에 앉아 예배만 얼른 드리고 온다”
한국교회에 감리교의 지도자급의 목회자가 한국교회를 “메도디스트릐 전도이야기” 책 앞 서문에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많은 교인수에 배해서 사회적인 영향력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교회는 교회로서의 정체성과 권위를 상실하므로 맛 잃은 소금이 되었고 불이 꺼진 등대가 되었다. 성령의 바람이 아닌 성도들과 교회를 해치는 사탄의 바람이 여러 모양으로 강하게 불기를 시작하였다.”
역사적으로 성령의 임재아래 일어났던 영적 대각성 운동의 이야기를 역사적인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도록 하자. 여기서는 소수만 소개를 하는데 역사적으로 대 부흥과 회개 운동과 영적 대 각성 운둥을 일으킨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먼저 성령세례를 받았으며 기도의 사람이었던것이 공통적이다.
죤 웨슬리 (1705~1791)
가장 유명하게 부흥운동을 했던 사람이 존 웨슬리일 것이다. 웨슬리는 36 만km 이상 말을 타고 달리면서 4 만번의 설교를 행한 위대한 복음전도자였다. 그는 교회지도자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자 가장 성격이 포악하고 복음을 들어본적이 없는 킹스우드의 광부들 앞에서 야외설교를 시작하였다.
웨슬리가 설교도중 사람들이 넘어지는 것을 본것은 그가 목회를 시작한지 14 년째 되는 해였다. 이러한 넘어지는 현상은 웨슬리가 새로 건설된 식민지 조지아 주에서의 선교 활동에 쓰라린 실패를 경험한후 1738 년 5 월 24 일 9 시 15 분경 이상하게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 유명한 올더스게이트 체험으로 성령의 특별한 능력을 받았을때 부터였다. 그날 쓴 웨슬리의 일기를 읽어보자.
“저녁에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은 채 올더스케이트 가 (Aldersgate Street)에 있는 어느 회에 갔는데 거기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읽고 있었다. 9 시 15 분경쯤 되어서 그가 계속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역사를 하신다고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믿는다고 느꼈다. 뿐만 아니라 쭈게서 내 모든 죄를 씻으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생겼다.“
웨슬리가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은 영적 체험 이야기가 있다.
“1739 년 1 월 1 일 월요일 새벽 3 시경, 홀, 킨친, 휫필드, 레인과 60 여명의 형제들이 계속 기도하고 있을때였다.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강하게 역사해서 주체할수 없는 기쁨으로 울음을 터트리고 많은 사람들은 마루 바닥에 쓰러지기까지 했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경외와 놀라움에서 깨어나자마자 우리는 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나님 당신을 찬양합니다. 당신은 전능자이심을 압니다.” 연속되는 이러한 성령체험이후 그의 선교사역에는 초자연적인 요소가 강화되었다. 목회 전반부의 14 년동안은 영적인 역사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후 50 년 간은 영적인 역사가 일어났다.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두가지 결론을 내렸다.“
1. 그의 설교가 회심에 중점을 둔 것이기 때문에 자연히 사람들이 울부짖고 통곡하게 되었다.
2. 여떤 사람들은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시달림을 받았기 때문에 귀신에게서 풀려날 필요가 있었다.
어느날, 배교자로 유명한 제임스 왓슨이 집회에 참석했다. 웨슬리가 부르짖기를 “여기에 제임스 왔슨 씨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당신의 권능을 나타내소서” 라고 했더니 제임스 왓슨이 돌처럼 땅에 나동그라졌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리고 혹은 쓰러지고 하는 현상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성령님의 역사로 인해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생명을 탄생케 하려는 “산고의 고통” 에 부르짖음으로 인식되어졌다.
술집은 자원해서 문을 닫았고 웨슬리가 설교를 할때 사람들은 소리 지르고 울고 회개를 하여 웨슬리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큰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한 사람이 100 년후에 근처에 술집을 찾으로 다녔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길 가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죤 웨슬리가 지나간 후 술집이 문을 닫고 그 근처에 술집이 100 년 동안 열지를 안았다고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도 영국에 그가 목회하던 교회앞에 한손에는 성경책을 한손에는 말 을 잡고 달리는 동상의 모습이 눈에 삼삼하다.
죠나단 에드워즈 (1705~1758)
죠나단 에드워즈 목사가 메사추세츠 주 노댐프던에 있는 회중교회의 목사로 부임했을 때 아무도 이 온화한 젊은이가 뉴잉글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설교자로서 제 1 차 대각성 운동의 지도가가 되리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이 대각성 운동은 오늘날까지도 큰 영향력을 느낄수 있는데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는(적어도 명목상으로라도) 인식은 바로 이 운동에 그 군원을 두고 있다. 식민지 시대 미국의 9 개 대학중에 6 개는 이 대각성 운동의 직접적인 결과로 세워진 것이었고 또한 수 많은 선교사가 중국, 인도, 아프리카에 파송된 것도 이 대각성 운동의 결과였다.
에드워즈 목사는 1000 편 이상의 설교를 썼는데 그중 “진노한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죄인들”이란 설교로 인해 매서운 전도자로 인식되어져 있다. 사실 오늘날의 관점메서 볼때 그는 조용하고 이성적인 설교자였지 청중을 사로잡는 웅변가는 아니었다.
미국 동부의 뉴잉글랜드 사람들을 회심시키는데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영국의 복음전도자 조지 휫필드 목사가 전도사역을 위해 초석을 놓아준 사람이다. 횟필드 목사는 1740 년 뉴잉글랜드에 와서 설교를 했으며 보스톤에서 2 만명의 청중들 앞에서 고별 설교를 마지막으로 하고 미국을 떠났다. 휫필드 목사가 에드워즈 고양마을인 노댐프턴을 방문했을 때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그 놀라운 회심의 역사를 에드워즈 목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 회중 전체가 울음바다였고 쓰러지는 등의 역사로 가득했다. 그 도시 여러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집회에 참석하여 직접 듣고 봄으로써 크게 영향을 받았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령의 권능에 압도당하는 체험을 하게 되고 몇시간이나 계속된 기도, 찬송, 상담, 등으로 큰 감동을 받았다. 이러한 현상은 개개인의 사람들에게는 벅찬 기쁨을 가져다 주었도 마을 전체에 신앙에도 큰 발전을 가져다 준 놀라운 사건이었다.”
휫필드의 방문후 같은 효과가 에드워즈 자신의 목회에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듬해인 1741 년 그의 집에서 16 세에서 26 세 정도의 젊은이들에게 설교했을 때 많은 젊은이들이 쓰러지고 몇 명은 성령의 역사에 너무나 강하게 압도되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밤을 새우기까지 했다. 그후 예드워즈가 예일 출신의 부흥전도자를 초청했을 때였다.
“사람들은 일종의 입신 상태로 누워서 24 시간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의식은 활동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들은 마치 하늘나라에 가서 즐겁고 영광스러운 물체를 보는 것과 같은 상상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조지 휫필드 (1714~1770)
웨슬리의 부흥운동이 영국을 위해 이루어졌다면 그의 동역자 조지 휫필드의 부흥운동은 식민지였던 미국을 위해 이루여졌다. 휫필드는 옥스퍼드의 동급생들이 멸명지어준 아주 엄격한 형식주의자라는 뜻의 “메소디스트"로 불린 사람이었다. ”메소디스트“란 모여서 기도하고 성경공부하며 교회에 나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을 조롱하기 위한 용어이다. 웨슬리가 부흥운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휫필드 목사는 야외와 도시 광장에서 많은 청중들을 모아 놓고 설교한 첫 인물이었다. 벹 프릴크린(미국작가, 정치가)은 흿퓔드가 3 만명의 청중들 앞에서도 설교할수 있다고 추산했는데, 이것은 마이크와 확성기와 같은 음향 시설리 없었던 당시의 사정으로 볼때 그것은 놀라운 숫자가 아닐수 없다. 조지 워싱턴 이전의 세대에게 휫필드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의 젊은 시절, 웨슬리와 함께 영국에서 사역할 때 사람들이 쓰러지는 현상을 보고 에드워즈는 편지를 써서 웨슬리에게 반박하기를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집회 때 사람들이 쓰러지고 발작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그러한 편지를 쓴 다음날 휫필드가 설교할 때 그의 가까이 서 있던 4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쓰러졌기 때문이다. 그중 한 사람은 아무 감각도 없이 움직이지 않았고 다음 사람은 심하게 떨었고 세 번째 사람은 온몸의 충격이 너무 심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신음하기만 했고 그리고 네 번째 사람은 같은 충격을 받아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그 이후 웨슬리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하시도록 해야한다“ 라고 했다. 휫필드가 미국으로 건너와서 설교할 때 마다 사람들이 쓰러지는 현상은 일상적인 일로 나타났다.
“어떤 사람들은 죽은 듯이 창백했고, 다른 사람들은 양손을 마주 잡고 튀틀었고 더러는 땅바닥에 쓰러져 누워 있었고 또 더러는 친구들의 팔에 쓰러져 부축되어 있었다.” 공동묘지 전체를 꽉 채운 수 많은 군중들은 휫필드의 설교를 듣고 성령의 권능에 압도되어 쓰러져 있었다. 더러는 심하게 울음을 터뜨리고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울었다. 설교가 끝났을때 사람들은 몸이 땅에 붙어버린 듯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대각성 기간동안 많은 설교자가 있었지만 누구도 휫필드보다 더 많은 복음 전파와 그리스도안에서의 회개의 역사를 불러일으킨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이 기간동안에 만 2 만 5 천명 내지 5 만명 정도의 시림들이 뉴잉글랜드 지방에 있는 교회에 등록했다. 1750 년 인구가 겨우 34만 명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휫필드의 설교에 감동이 되어 전체 인구의 7~14%가 교회(특히 회중교회)에 등럭록게 된 것은 대단한 일이다. 미국 중부 지방에서는 20 년간 침례교 목사나 21 명에서 79 명으로 늘어나고 장로교 목사도 2 배 이상 증가했다. 남부에서는 그 후에 이루어진 침례교의 놀라운 확장을 위한 튼튼한 기초를 닦아 놓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성령의 권능으로 나타나는 열매였다.
찰스 피니 (1799~1875)
2 차 대각성 운동의 후반부 19세기의 가장 유명한 설교자는 찰스피니였다. 피니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한 칼빈주의자였는데 그의 설교는 마치 “배심원 앞에서 논증을 하는 변호사”처럼 논리정연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당시의 형식적 설교 방식과는 달이 일대일 개인에게 대면하여 직접 말하는 방식의 설교를 하였다.
그는 장로교인이었지만 깊은 확신이 없는 회개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게 되는 첫 역사는 뉴욕주의 유티카에서 어느 오후의 설교에서였다. 그의 설교가 15 분 정도 진행되었을때 400 명 정도의 사람들이 교회 의자에서 떨어져 마루 바닥에 쓰러지는 일이 일어났다. 그후 이에 대해 피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느 시대의 교회에서나 하나님의 진리의 역사가 분명히 나타남으로써 사람들이 육체적인 힘을 완전히 상실 당하여 땅에 엎드려지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일은 다니엘에게도 나타났는데 그는 서 있지 못하고 쓰러졌다. 다메섹 동상의 바울도 하나님의 영광의 빛에 엎드리어 땅에 엎드려져 꼼짝할 수 없었다. 나자신도 또한 말씀의 확고한 진리와 무한한 위대함을 깨달았을때, 육체적인 힘을 완전히 상실하고 쓰러져 버린 경우가 여러번 있었다.”
성령의 권능에 압도당하는 경우에는 지각이 마비되고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의 빛으로 밝혀진다. 이런 일들은 분명 눈물을 자아내는 민감한 감수성의 표출이나 활발한 상상력의 결과 나타나는 흥분이나 깊은 감동으로 빚어진 느낌 같은 것은 아니다. 그 반명에 마음으로 함께 드러난 진리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동안 모든 육체적은 힘은 완전히 제거되어 버리는 것이다. 영이 육체로부터 분리될 때 마음을 싸고 있던 베일은 걷혀 버리고 진리를 깨닫게 되는것이며 이 과정에서 육체가 압도당하며 힘을 읽는 것이 분명하다.“
피니의 설교는 엄청난 효과를 몰고 왔다. 교회 역사상 유래가 없는 1 년에 10 만명의 신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기 전에 대부분의 복음인도자들은 특별한 을력 즉 성령세례를 받았다는것이다. 배심원 앞에서 자신이 맡은 소송사건을 별론하는 변호사처럼 설교를 하는 피니조차 하나님의 권능레 압도당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 축복을 받았다고 말했다.
위의 열겨한 영적 대각성 운동을 일으킨 사람들외에서 여러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물줄기 같은 사랑의 파도”가 전신을 씻기는 것과 같은 체험이라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