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금선교, 믿음선교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통과한 이명희 선교사님은 전에 뵈었을 때 논문 주제를 이주자들을 위한 선교에 관한 것으로 오랫동안 쓰셨는데 전에도 함께 나눈 주제는 미국에서도 선교를 “뜨거운 감자”로 이야기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먹자니 뜨거운 것. 그들도 선교의 과정에 가장 문제를 재정 확보 때문에 고심을 하는 그들에게 논문 내용 중에 우리 선교회의 이야기를 한 장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모금선교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선교를 다시 한 번 나누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통과하지 못하면 장기전으로 들어가는 선교를 감당하는데 첫번째 장애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일찍 모금선교의 문제점을 깨우쳐 주신 것으로 인하여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1989년 초에 우리집 앞에 있는 교회에서 선교샌터를 마련한다고 하였을 때 한 사업을 하는 분이 선뜻 1억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다달이 천만원씩을 불입해야 하는 상가건물인데 지금의 1억이 아니고 20여년전이니까 돈의 가치가 지금보다 더 큰 액수이며 그 교회는 아주 작은 개척교회였습니다. 우리는 그 교회 교인도 아니고 단지 선교에 뜨거운 열정이 있기에 되어지는 과정을 보고 있는데 그 사업가가 한 달만 내고 다음 달부터는 그 교회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달이 천만원을 지불하는데 함께 도우면서 정말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우리는 당시에 남편 월급이 오백만원이었습니다. 사실 89년에 고액이었는데 우리의 생활비를 아주 적게 남기고 모두 갔다 헌금해도 한달에 천만원은 난공불락의 성으로 보였습니다. 어떤 때는 돼지저금통의 동전까지 다 털었고 우리 아이들 돐, 백일 금반지까지 처분을 하여 그 선교를 도우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다달이 한달은 금방 돌아오고 가난한 몇십 명도 안 되는 그 교회를 돕다가 힘들어서 한번은 선교대회를 해서 이 일을 알리고 함께 선교에 비전을 가진 분들과 짐을 같이 나누면 좋지 않겠느냐고 회의를 했습니다. “선교의 밤”이라고 하여 저녁 식사를 마련하고 초청을 했습니다. 지금도 3층 상가에 있던 그 교회에 계단을 걸어 들어오는 수 많은 멋있는 옷을 차려입고 왔던 행렬이 장면이 스쳐가서 웃음이 나옵니다. 그 행렬은 아주 맛있게 그때 없는 돈 다 털어서 장만한 저녁 식사를 하고 화려한 저녁 행사를 했습니다. 그때 아는 권사님 한 분이 저에게 함께 먹자고 수박을 한통 사왔다고 하며 수박 한 덩어리를 내밀었습니다. 그것이 그날의 수확의 전부였습니다. ㅎ ㅎ 만약 그날 모금이 잘 되었으면 저는 지금까지 그런 방법을 썼을 것입니다. 수박 한덩어만 주신 것에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그날 밤 강하게 배운 교훈이 처음부터 저가 배운 모델이 조지뮬러였는데 조지뮬러는 정말 이 고백을 하며 승리의 찬가를 불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딤후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수천명의 고아를 먹이면서도 수백명의 선교사를 도울수 있고 절대 사람에게 재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고아원 건물을 지금도 보여주는 믿음의 모델이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그러기 위하여 조지뮬러는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선한 싸움을 날마다 매순간마다 해야 했을 것입니다.
우리 선교회는 12년째가 되는데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가까운 시기에 생긴 것을 예를 들어야 더 실감이 나기에 가까운 시기에 생긴 일들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2월과 8월에 가장 많은 경비가 지출됩니다. 학생들의 학비를 지출해야 하니까요. 제가 모금 하러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만약에 모금을 하러 갔다고 가정하면 학비를 도와달라고 사람의 감정에 호소할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때 주로 환자가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모금을 해서 돌아 왔는데 화장실에 한 외국인이 와서 양변기에 애기를 낳아서 병원도 급히 가느라고 우리와 협력하는 병원을 가지 못했으니 여러분 도와 주세요. 라고 또 말을 할 수가 있을까요. 그러자 돌아서니 또 다른 애기가 태어났습니다. 도와 주세요. 라고 하면 저는 매일 구걸하러 나서야 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음에는 나라와 나라 어머니 비행기 표값이 들어요. 도와 주세요. 라고 마치자 한승수 목사님 병원비도 도웁시다. 이렇게 외쳐야 하고 인공관절 수술하는데 우리가 오백만원은 지불해야 해요. 라고 어디가서 외칠까요.
우리는 학생들 한달에 한번 생활비 나가는 날은 25일 하루만 1600만원이 나가야 하고 쉼터 부식비 운병비 나눔은 어디가서 구걸을 하고 다닐까요? ㅎ ㅎ
다른 사람한테는 그만두고 가족들에게 매일 그렇게 했다면 우리 자녀들은 왜 우리 엄마는 저렇게 살아야 할까 라고 하면서 절대 후원하는 사람으로 되지 않았을 뿐더러 남편도 그만 두손 두발 들었을 것입니다.
한데 그날의 수박한 덩어리는 시편 146편의 말씀을 충분히 증명하는 길이었습니다.
시146: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시146: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이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그리고 다달이 천만원이라는 그 선교센터를 구입하는 동안 빌립보서 4:19 절을 하나님께서는 하루는 밤에 꿈속에서 빌립보서 말씀을 보라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새벽에 그 말씀이 궁금해서 옆에서 잠이 아직 깨지 않은 남편에게 전기를 켜면 방해가 될까봐 열름 교회로 새벽기도 하러 가면서 성경을 펼쳐서 보았고 그 말씀은 지금까지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빌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선교를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재정에서 믿음으로 자유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돈을 걱정하고 돈 이야기만 하게 되어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을 다 기피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오늘도 선한 싸움을 계속하지만 이 길은 행복한 길, 주님의 임재를 날마다 순간마다 볼수 있는 길이며 정말 풍성하게 우리 쓸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을 찬야합니다. 그런 선한 싸움을 이기게 하시는 성령님이 늘 붙잡아 주셔서 우리의 찬양은 “내 맘에 한 노래 있어~~~평화 평화 하나님 주신 선물” 이렇게 부를 수가 있답니다.
아버지가 직접 풍성하게 채우신다고 하셨는데 누구에게 구걸을 하고 다니겠습니까? 할렐루야!!! “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나는 이길을 가리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단 한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으신 것을 증명해 보여 드릴 수 있는 수많은 행복동의 증인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