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놀라운 약속
아버지의 놀라운 약속을
들어보세요
그때가 되면 맹인의 눈이
밝아진데요
청각장애인은 귀가 열린데요
다리를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래요
언어장애인의 혀는 노래한데요
광야는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른데요
뜨거운 사막이 연못으로 변하며
메마른 땅은 원천이 된데요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나며
거기에는 사자가 없답니다.
구원 받은 자녀들은
슬픔과 탄식은 사라지고
기쁨과 즐거움이 넘친답니다
거기에 거룩한 길 대로가
펼쳐지는데 구원받는 자만
갈 수 있는 그 길에
예수 믿고 함께 손잡고
기뻐하며 달려갑시다
최고 영광의 직분
세상에는 여러 가지 직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집을 방문하니 색 바랜 사진에 전에 공직에 있던 사진을 영광스럽다는 모습으로 걸어 놓았습니다. 그 사진을 보면서 빛바랜 만큼 세상의 것은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세상을 한 손에 넣을 것 같은 그 사진의 주인공들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보았던 지금은 관광지로 바뀐 몇몇 저택은 과거에 돈을 많이 벌었던 직업을 나타내는 가정집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돈이 흔했으면 그 집안에 수영장 바닥에 줄을 금으로 그어 놓았습니다. 참 부질없어 보였습니다.
최고의 귀한 직분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전도자의 삶처럼 영광스러운 직분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십대 갱단들, 마약중독자들로 문란한 성관계, 동성애를 하는 아이들, 칼부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아이들을, 진정 예수님을 그들로 하여금 만나게 하면서 옛사람을 버리고 그들이 새 사람이 된 이야기를 쓴 “십자가와 칼” 이라는 책을 읽으며 생명의 근원되시는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생명은 또 하나의 생명을 낳고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아름다운 일을 보는 것처럼 귀중한 일은 세상에 없으며 그러한 현장에 보내심을 받은 것은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사람들은 전도하는 일을 참으로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전도한다고 해도 그저 교회에 데리고 오는 정도로 생각하는데 한 사람이 어두움에서 참 자유함을 누리는 것은 왜 성경에서 한 영혼을 얻는 것이 천하보다 귀한 일이라고 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 책은 1500만부나 팔렸고 영화를 제작해서 5000만 관객을 동원한 책으로 우리가 정말 복음을 시시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전도자가 되어야 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어떤 일을 해 주셨는지를 처음 성령께서 가르쳐 주셨을 때 그 사랑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랑으로 선교의 현장에서 있기 시작한지 26년째의 삶은 최고의 축복의 현장이었습니다.
우리 집에는 다른 집에 없는 특별한 사진이 결혼생활 내내 걸려 있습니다. 보통 결혼식 사진은 결혼 초에는 걸려 있다가 세월이 가면 그 사진은 자취를 감추는데 우리는 38년 동안 결혼사진이 언제나 거실에 있습니다. 오늘은 그 사진을 남편이 드려다 보더니 참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로에 있는 선교사들이 최초에 세워서 선교사님들이 예배를 드리는 태화관에서 결혼식을 하였고 우리 주례는 미국 선교사님이 주례를 서게 되었습니다. 그 선교사님은 미국에 오순절 계통의 아주 강력한 성령운동을 하는 교단에서 나오셨고 아주 순수한 분이셨습니다.
남편과 나눈 이야기를 나누면서 최초의 한국을 복음화시킨 선교사들의 기도가 강력한 태화관에서 선교사가 주례를 서서 저가 선교사의 일을 하게 된 것 같다는 것입니다. 저도 늘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이름으로 변영달이라고 했던 그 선교사님은 주례를 자주 하지 않는 분이었는데 우리 주례를 서기로 했던 한국인 목사님이 우리 결혼 일주일전에 맹장이 터지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선교사님은 결혼식 주례를 갑자기 맡게 되었지만 그 후 우리는 계속 친밀한 교제를 갖게 되었습니다. 전혀 선교사가 될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해외에 근무하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심정을 주심으로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절대 부족한 사람을 불러 주시고 예수님을 소개하는 이 귀중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세상적으로 너무나 고달프고 슬픈 마음이 있는 영혼들의 하소연을 들어만 주어도 평안을 갖는 것을 보면 감사할 뿐입니다. 그 영혼들을 위하여 절대 중보기도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화요일 하루라도 금식하며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