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의 편지
샬롬, 참 많이 사랑하는 울 엄마께,
하루 종일 창문을 열어 놓아도 춥지가 않았어요. 여름까지는 아들 디모데는 생활하기에 참 좋은 때이죠. 겨울 추위를 많이 타기도 하지만 여름에는 더위 때문에 남들보다 힘들어 하는 체질이거든요. 다른 이들에 비해서 땀도 많이 흘리고요. 그래서 그런지 봄도 가을도 너무 빨리 지나 버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주님 안에서 평안하신지요? 아버지께서도 평안하시고 사랑하는 가족 모두 평안하신지요? 지난번에 겪으셨던 배앓이와 구토에 관한 증세는 괜찮으신지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기에 궁금합니다.
특수학교라고 하시는 엄마의 말씀은 절로 긍정의 웃음을 짓게 한답니다. 딱 맞는 모형이네요. 바깥 세상속에서는 생각지도 못하는 일들이 계속 되어지는 세상속의 특수(?)한 삶을 살다가 모여져 있는 인생들이니까요.
사랑하는 엄마,
저는 특별학교라는 표현을 하고 싶어요. 엄마께는 이곳이 학교요 병원이라는 말씀을 이미 드렸지만, 주님을 알고 믿기만 하면 특별한 사랑이 듬뽁 담겨지는 이곳이니까요. 공평하신 하나님임을 잘 알지만 제가 느끼는 제가 체험하는 바로는 저를 특별히 참 많이도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니 조금은 공평하지 않으신 것 같아요. ^.^
이 곳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저처럼 체험하게 되면 저와 같은 고백이 나올 터이니 저는 이곳을 특별하신 주님의 사랑을 만나는 특별학교라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어떤 이에겐 그냥 그대로 암울하고 절망스런 날들의 계속이겠지만 엄마의 고백 (나는 죄인입니다)처럼 오직 주님만이 주시는 구원의 감격이 숨쉬고 주님이 주시는 참 자유가 있기에 악인의 장막에서의 날들이 아닌 주의 궁정에서의 나날임을 고백합니다.
새벽기도 시간인 줄 알고 일어났더니 한 시간이나 빨리 일어났습니다. 더 잘까 말까 잠간의 고민, “에잇, 피곤하니까 누워나 있자.” 담요속에 포옥 안겨 1시간의 여유를 누렸습니다. 단잠보다 더 꿀맛 같았습니다. 덤으로 얻은 시간에 참 좋았습니다.
덤으로 살아가야 한 나날들, 생각해 보니 꿈만 같이 살라고 참 좋게 살라고 주님이 깨우셨습니다. 세상이라는 암울하고 참담한 것들을 꿈꾸며 깨어날 줄 모르던 인생인데 꿀맛 좀 보라고 참 좋은 나날들을 살아보라고....
사랑하는 엄마,
어제 있던 일이었어요. “이게 뭡니까 형!” 신문을 읽고 있던 동료가 뭔가 큰 이슈를 발견이라도 한 듯이 저를 부르며 신문을 가져와서 보여줍니다. “형, 목사가 무슨 방송 출연을 하겠다고 방송출연정지에 대한 취소 신청을 한답니까?” “형제, 목사님은 방송 출연을 하면 안 되는 겁니까?” 라고 했더니 “그동안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남겨 놓고서 이제 목사 된지 얼마가 된다고...”라면서 실망스런 표현을 짓기에 대체 어떤 내용인가 하며 내용을 읽어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세상적인 물의를 자주 일으키고 해외로 도피까지 했던 경력의 유명 개그맨 출신의 목사님 이야기였습니다. 사회적인 큰 문제들이라서 모 방송국에서 출연정지를 시켰던 것이죠. 어찌 어찌 하여 얼마 전에 성도들에게 십일조도 거두지 않으며 자비로 교회를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을 신문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는 그런 목사님이었습니다.
형제에게 방송을 통하여 좋은 일을 하려는 것이겠지 좋은 시각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라고 했더니 그러는 것입니다. “아니 왜 좋은 일 하는 것을 방송을 통해서 보여야 합니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까지 인용하며 제게 반론을 하는 형제의 말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분은 목사님인데 세상 속에 그런 불신의 모습을 담아 놓았을까...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살아가는 이 땅의 예수쟁이들이 많은데....
사랑하는 엄마,
언젠가 신문에서 읽고 메모해 두었던 “가난한 이의 벗” 고 허병섭목사님이 생각납니다. 3월 말인가 4월초쯤에 돌아가신 분인데, 1974년 신설동 판자촌에서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들도 사람대접 받고 사는 희망세상을 꿈꾸셨던 분입니다. 많은 성도들의 존경과 추앙을 뒤로하고 소위 노가다라고 하는 막노동꾼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그들의 힘겨운 삶을 보듬으면서 노숙자들을 이 땅의 후미진 구석에서 신음하는 이웃들에게 몸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함께 하셨던 진정한 목회자셨던 허병섭목사님, 갑자기 그분이 생각나고 사랑하는 울 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인솔해 주시던 담당관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보수나 댓가도 없이 진정한 사랑을 전하시는 어머니 같은 분들이 진짜 신앙인이라셨던....엄마가 참 많이 자랑스럽습니다. 엄마를 참 많이 사랑합니다. 엄마를 참 많이 존경합니다.
이 곳은 1600여명이 생활합니다. 많을 때는 2000명 가까이 생활하기도 하구요. 1600명이며 미결수용자가 700여명 정도 되고 기결수용자가 8,900여명 됩니다. 제가 잠자는 곳을 “사방”이라 하고 노역하는 곳을 노역장이라고 하며 약 4.50 명 내지 많게는 7,80 여명이 노역을 하고 있고 사방에서는 한 방에 7~10여명이 생활하며 이런 방이 12개씩 한 층을 이루고 있고 한 건물에 상하층 24개의 방이 한 건물입니다. 전국의 교도소가 똑같은 것은 아니고 이곳 광주교도소가 전국에서 가장 낡은 시설이어서 2014년이나 2015년도에 옮겨가게 됩니다.
엄마 말씀처럼 이 특수학교에서 디모데는 특별한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훈련되어지고 있습니다. 오랜세월 동안 몸으로 체험하고 겪게 되는 교육(?)을 통하여서 훗날 행복동의 선교 섬김의 한 분야 (교도소의 감별소)를 감당하고 싶습니다. 학사고시를 마치면 본격적으로 신학을 올바르게 공부를 하면서 옮겨가게 될 청주나 순천 혹은 장흥이나 위쪽 지방의 교도소에서 함께 동역할 동역자들을 양성하고 신앙생활을 하려 합니다. 그동안은 엄마께 바르게 양육되어지고 어려운 동료들을 진심어린 사랑으로 보듬으며 섬기는 생활을 하겠습니다.
어제 운동시간에 출소하게 되는 어르신이 제게 다가오셔서 인사를 하셨습니다. 벌금 납부를 못하여 100만원어치의 징역살이를 하셨던 분인데 그동안 고마웠다며 사탕 두 알을 건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 어제 받은 사탕이 생각나서 먹으려고 개봉하였더니 더운 날씨도 아닌데 사탕이 녹아 비닐에 붙어 굳어 있는 것입니다. 손안에 얼마나 쥐고 계셨으면 사탕이 이리 되었을까를 실감하니 비록 사탕 두알 이지만 그안에 담겨있는 마음이 느껴져서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이 이러하셨을까, 울 엄마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사랑하는 울엄마, 디모데 예쁜 섬김 열심히 하면서 행복할께요.
애써 자랑하지 않아도 기대하지 않아도 행복을 주는 것이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날마다 행복하실 우리 엄마 아프지 마시고 승리하셔요.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