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아식
“나는 조 아식인데 기억하세요?” 방글라데시에서 다시 한국에 온 아식이가 전화를 해서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한국으로 와서 원중 초등학교 근처에 있던 교회를 찾아갔는데 이미 재개발되어 교회는 이전했는데 친구가 인터넷으로 홀리네이션스 선교회를 찾아서 제 전화번호를 찾아주어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순간 생각을 했습니다. 기억속에 아식이는 초등하교 3 학년이었는데 내년에 서울대학을 한국 정부 장학금을 지원받고 다시 한국에 와서 지금 경희대학교 어학당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그마한 초등학생이 세월이 흘러 이제 대학을 입학하게 된 것입니다.
정확한 년도를 기억하지 못하는데 약 8~9 년 전이었습니다. 식사동의 한 공장에 전도를 나갔는데 낮에 엄마 아빠는 불법체류자로 공장에서 일하러 나가고 조그만 아이가 혼자 방에 있었습니다.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아이까지 데리고 와서 한국에 머물고 있는데 공장 한 가운데 있는 숙소에 어린아이가 혼자 있는 것이 너무나 안쓰러웠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가정교사를 자원해서 여러 명을 뽑았습니다. 그중에 양식집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라나도 한 몫 했고 여러 명이 시간표를 짜서 아식이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공부도 중요하지만 다른 아이들하고 노는것도 아주 중요하기에 근처에 원중 초등학교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 이렇게 함께 만나서 아식이를 그냥 청강생으로 받아줄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습니다. 상당히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셔서 다 된 줄 알고 아식이와 함께 학용품을 사고 학교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주가 되어도 전화를 해 주신다는 약속과는 달리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다시 학교에 전화를 해 보니 마침 교감선생님이 받더니 자신은 괜찮은 것 같은데 학부형들이 혹시 무어라고 할까봐 교장 선생님이 안 된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식이가 실망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편지를 간곡하게 썼습니다. 교육이라는 것은 한 생명을 살리는 것인데 다시 한 번 교려 해 줄 수 없느냐는 애원의 글이었습니다. 참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재미있는 것이 그 교장선생님은 원래 한군데 발령이 나면 삼년근무인데 저가 편지를 보냈을 때 일 년만에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고 제 편지가 학교에 도착한날 새 교장선생님이 처음 부임하는 날이었고 그 교장선생님은 편지를 받자 마자 제게 전화를 해 주셨습니다.
“그 어린이를 당장 데리고 와도 됩니다.” 와우, 할렐루야! 그날 장항동에 공장전도를 하고 있던중에 그 전화를 받고 언제나 편을 들어주신 하나님의 응원에 힘을 얻어서 신나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렇게 아식이는 그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였고 금방 아이들과 어울리고 잘 따라갔습니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집 성을 따라서 “조 아식”이라고 이름 붙여 주었습니다. 그 이름을 붙혀 주고 엄마 아빠 다시 방글라데시로 돌아갈 때 까지 그 학교를 다녔고 KBS "People 세상속으로"에 아식이도 출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함께 호수공원도 놀러갔고 우리 집에도 놀러왔던 그 어린 아식이가 이제는 대학생 신분이 되어 왔다니 참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이번 주일에 교회에 오기로 했습니다. 지나온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언제나처럼 이 현장에 있는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만일 이 일을 계속 하고 있지 않았으면 다시 한국에 와서 아식이가 실망했을 터인데 계속 이 현장에 있기 때문에 이런 재회를 다시 할 수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후회나 다른 선택을 할 걸 하면서 후회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저는 주님을 따라 이 길을 살아온 것이 너무나 즐겁고 불러 주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찬송을 부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말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 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