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의 편지
샬롬, 사랑하는 엄마께,
아침식사를 마친후 늘 그랬듯이 찬양을 흥얼거리며 설거지를 했습니다.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어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시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가사가 맞는지는 모르지만, 찬양을 드리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살아도 주위해 살겠다는 그 다짐과 주 위해 죽겠다는 결심대로 성령세례를 받은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날 위해 피흘려 죽기까지 하신 주님의 사랑과 가르치심에 부끄럽지 않은, 합당한 날들을 살아드리고 있는 것일까....매일 기쁘게 내 곁의 동료, 나를 사랑하고 관심두는 이가 아닌 내 신앙의 허트름을 찾아 내려듯이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사랑하고 품으려는 노력 아니, 그 마음까지도 보듬으려는 마음은 있었는지....
주님안에서 평안하셨는지요? 아버지께서는 평안하시고 동생들과 조카들도 평안하고 행복동의 가족들도 평안하신지요? 지난주에도 엄마의 사랑 가득함에 행복했습니다. 엄마가 항상 느끼게 해 주셔요. 디모데가 얼마나 존귀한 아들인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 아들인지를요.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부를수록 참 행복해져요. 디모데의 소중한 우리 엄마! 참 많이 사랑합니다. 아, 이게 바로 엄마의 사랑이구나. 아! 이 마음이 엄마를 사랑하는 아들의 마음이구나.라는것을 너무도 행복하게 알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이보다 더 깊은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사랑해야 하는 구나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을 통하여 사랑만 주는 엄마가 아니라 사랑을 통하여 주님을 향한 저의 사랑의 마음의 깊이를 가르치시고 닮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울 엄마!
요즘의 엄마 마음은 역경을 딪고서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분들을 통하여 환경이 중요치 않고 환경을 극복하고 이겨내려는 마음가짐과 같은 환경 속에서도 무엇을 바라고 소망하느냐가 중요한지를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 가득 느껴집니다. 부끄러웠답니다. 저보다도 더 악조건 속에서도 세상 속에서 아름다움의 본이 된 모습들이 세상 속에 이리도 아름다운 영향력을 끼치며 승리자의 삶을 살았는데 저는 저의 환경 탓속에 지금의 저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정당화를 시키려 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엄마의 귀한 가르침이 이제라도 늦지 않았음을 깨닫게 해 주시고 제가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날들의 방향을 제시해 주심인줄 알수 있었습니다.
VTR 시청시간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영화를 시청하였습니다. 바깥세상에서는 오래전에 상영되었던 것들을 이곳에서는 이제야 시청케 한다며 동료들은 투덜거리기도 하지만 가끔씩 가슴에 와닿는 영화들이 방영되어서 머리도 식힐 겸 관심을 두고 시청하고는 합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최고수(이곳에서는 사형수를 최고수라고 합니다)와 교도소 방문자(봉사자)와의 관계를 통하여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는 과정을 나타낸 영화인데 그 내용속에서 최고수의 마지막 삶을 공유했던 여 주인공의 독백이 인상 깊어서 엄마와 나누고 싶었습니다. “나는 갑자기 예수가 그렇게 사용수로 처형된 것이 고마웠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원수를 감히 위로할 수 있겠는가?”
여주인공의 독백이 마음에 와 닿았는데 한번 지나간 영상이라서 기억해 내려 애쓰고 있는데 공지영작가의 원작 소설책이 있다며 동료가 건네 주기에 영속에서 찾아 온전한 내용을 담을수 있었습니다. 책을 다시금 읽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지만 그런 시간이 아직은 없기에 엄마와 나누고자 했던 여주인공의 독백 내용만 읽었는데 죽음을 둔 남자주인공을 향해 이런 마음을 품은 여주인공이 참으로 고결하리만치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보통의 경우 최고수들은 그들의 육신이 죽기 이전에 먼저 인명이 죽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최고수를 향해 퍼 붓는 저주와 조롱이 그들의 인격을 죽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최고수는 죽지 않았어도 이미 수없이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
여 주인공의 독백이 저의 마음 안에 더욱더 깊게 담겨졌던 것은 아마도 예수님을 묵상하고 있는 사순절 기간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분명 사형수이셨으니 까요. 예수님도 온갖 멸시의 언어로 난도질 당하셨겠지요. 예수님의 육체를 수십가락으로 갈라진 채찍에 맞아 찢기고 찢어지셨겠지요. 만일 제가 예수님이 고난당하는 그 현장에 있었다면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겠다는 다짐을 할수 있을지요? 제가 지금 믿는 예수님은 갈릴리와 골고다의 고난 당하는 “예수”가 아니라 그럴싸한 “그리스도”는 아닐지요? 마치 농부의 수고에 진심으로 감사한번 전하지 못하면서도 잘 차려진 값비싼 밥상을 찾아 이곳 저곳 다니는데 수고를 아끼지 않던 예전의 저의 모습과도 같이 십자가 없는 영광을 기대하는 인간 디모데갸 아닐는지요. 골고다의 주님을 머리로서가 아니라 가슴으로 삶으로 더 만나는 디모데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오니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참 지난번에 넣어 주셨던 용돈은 잘 받았습니다. 과분하게 챙겨주시는 엄마와 사랑하는 마음들께 감사드리는 가운데 저 혼자만의 누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울엄마!
저 역시도 다음주에는 엄마를 뵙게 되고 사랑하는 분들을 뵙게 될 것을 생각하면 기쁘고 설렙니다. 특히 이모님은 두 달 만에 뵙게 되어 더욱더 기다려지고요. 강건하신 가운데 엄마의 사랑을 만나 뵙게 되기를 원하며 특히나 고난 주간에 들어서는 만큼 고난 속에서 꽃피워진 우리 주님의 참사랑에 대하여 엄마를 통하여 더욱 깊이 알아지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서서평 선교사님의 아름다운 섬김의 삶속에 내주하셨던 주님, 울 엄마의 행복한 섬김의 삶속에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이 저의 삶속에서도 늘 함께 하시기를 소망하며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아프지 마시고 승리하십시오. 아들도 엄마를 참 많이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