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죤즈 목사님의 성령론
아래 내용은 한국 교회 강단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마틴 로이드 죤즈 목사님의 성령론에서 간추린 내용의 일부이다.
지나치게 성령님을 이론적으로만 강해되어지는가 하면 반대로 너무나 체험적인 것에 치우치는 것을 로이드 죤즈 목사님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고전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2: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 성령의 내주하심 (dwell), 1차적인 구원의 수준
마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베드로는 이러한 고백을 하였지만 그가 성령 세례를 아직 받지 못하여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그는 세 번 부인한 결과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 수준을 1차적인 구원의 수준이라고 목사님의 책에는 기록되어 있는데 이 수준에서는 그리소드의 장성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에 자신의 영혼에 온전한 기쁨과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지 못한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이 수준에 멈춘다.
2.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fulfilled, upon) 이차원 적인 구원의 기쁨이다.
이렇게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더 이상 멀리 있는 상태가 아니고 아빠 아버지라 소리질러 부르짖으며 기뻐하게 된다.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여기에서 두가지 형태를 구별해야 한다.
첫째: 여기서 말하는 성령 충만은 성령으로 지배받는 인격적인 상태로 우리가 마땅히 취해야 할 명령형이다. 마치 술취하면 술의 통제아래 있지 우리가 자신을 통제 하지 못하는 것 같이 성령이 우리를 통제하는 성령의 인격이 우리를 다스리는 상태를 말한다.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
예로 다음의 상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삶의 형태를 가르침니다.
행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행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둘째,. 성령세례: 임무 수행을 위하여 주시는 성령의 권능을 받는 것 즉 권능이란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덧입혀 주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에는 한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항상 다시 주어지는 권능이다. 이것이 되지 않을때 우리는 맡겨 준 임무를 잘 감당할 수가 없다.
출31:2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출31:3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출31:4 정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그의 일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는 인격적인 지배의 상태가 아니고 성령세례를 목적을 위해 주신것이다.
행4: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행4: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행4: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행4: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행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여기에서 보면 베드로는 이미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다시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하여 다시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다.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행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여기에서도 다시 충만함을 재충전 받은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같이 충만함을 다시 받았다. 이것을 받은 사람은 특징이 담대히 주님을 증언하게 된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바울의 경우이다. 사도행전 9장을 읽으면 그의 회심과 성령세례를 받은 것을 보게 된다.
행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9: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행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행9: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행9: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행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행9: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행9: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그러한 바울이 13장에 가면 다시 성령세례를 받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을 보게 된다.
행13: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행13: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행13: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행13: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행13: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행13: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행13: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위의 예를 들은 사람들은 자신도 남도 성령이 자기들에게 입혔구나 하는 것을 의식했고 자기들이 새로운 능력과 권위로 옷입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들은 일어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다.
이런 예를 들어서 로이드 죤즈 목사님은 미국에서 나온 책중에 성령을 설명하면서 “성령충만을 받으라”라고 한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면서 자신이 어떤 체험이나 느낌이 없어도 그냥 믿으라고 하는 이론이 잘못된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역사상 진정한 변화와 부흥을 가져오게 한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도 아무 느낌이 없이 받는 줄로 믿고 행하여서 어떤 결과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여기서 내가 받은 성령세례와 실지 신앙의 수준의 변화를 나눔으로 이해를 돕고 싶다. 나는 1986년 홍콩에서 강력한 성령세례를 받고 회심을 하여 그때부터 복음을 전하는 삶을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성령세례의 강력함의 수준과 실전을 통해 똑 같은 상황, 아니 더 힘든 상황을 당할 때 대하는 나의 태도가 전혀 다른 것을 나누고 싶다
빚쟁이의 심정과 아버지의 자녀의 특권과 심정
1986년 성령세례를 받고 필리핀 도우미들메게 복음을 전하다 다음해에 한국에 귀국하게 되었다. 삼년후 다시 말레이시아로 가게 되었고 항상 나는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1988년을 맞이하여 중앙성결교회에서 대학부를 맡고 집앞에 있는 교회에 새벽기도를 나가게 되었다. 그 교회에서는 삼층을 분양받고 힘들게 갚아 나가면서 비어있는 이층을 선교관으로 구입하여 외국인 목회자를 초청하여 선교현장실습을 시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 삼층을 갚기에도 그 교회 교인들은 아주 가난한 교인들이었다. 그런 가운데서 이층을 선교관으로 구입하고자 할때 다른 교회 다니는 한 사업을 하는 분이 어느날 나타나서 당시에 1억이 되는 분양금을 자신이 다달이 천만원씩 갚겠다고 선뜻 나셨다.
우리는 중앙성결교회에 몸을 담고 있었고 그 교회에 새벽기도를 나가면서 옆에서 관망을 하는 위치였다. 삼층 분양금을 낼때 한번은 성령께서 내가 담당하도록 말씀하셔서 함께 담당한 적이 있었다. 이층 선교관을 구입하는 돈으로 그분은 첫달 천만원을 냈고 그 교회 교인들의 선교 작정헌금은 235,000원이었다. 어떻게 그것을 기억하느냐고 질문한다면 그때 옆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24만원도 채 안되는 돈으로 그 선교관을 구입한다고 할 정도로 교인들은 가난한 당시에 한달에 천만원씩을 요즈음 돈도 아니고 25년전에 일어났던 일이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지금 세월이 흘러도 그 상황이 비디오로 보이는 것 같이 뚜렸한 장면들인데 한달이 지나고 두 달째 되자 그 약속을 했던 사장님은 그 교회 목사님에게 “나만 바라보지 말고 교회내에서 해결하라”고 그 다음 달부터 전혀 헌금을 하지 않았고 갑자기 진퇴양난에 처하게 되었다. 앞에는 홍해 뒤에는 애굽병정이 추격하는 상황에서 선교의 열정을 받은 사람으로 이일을 돕는데 정말 빚쟁이가 어떤 심정인지를 맛보았다. 한달에 한번은 어찌 그리 빨리 돌아오는지 다리를 뻗고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때 내가 받은 성령세례와 신앙의 수준은 빚장이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기에 그렇게 걱정을 했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오늘 더 많은 지출과 더 많은 열방을 향해서 나아가면서 나는 아버지의 품에서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으며 측량할 수 없는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알고 누리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일년에 수억대가 필요한 지금 현실에서 전혀 요동함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자녀인데 다른 교회에 가서 특강을 하고 돈을 받을 이유가 없을 뿐더러 아버지께 돈을 달라고 기도하지도 않는다. 이미 풍성하게 채우신다는 약속을 잘 알기 때문이다. 비록 내일 지출할 것이 없어도 내일 틀림없이 채우실 나의 아버지를 너무나 잘 아는 것이다.
1986년에 인생을 바꿀 성령세례를 받아서 선교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이 현장에서 계속 반복하는 성령의 강력한 기름부어주심은 점점 더 주님의 능력과 권세가 무엇인지를 잘 알게 된 것이다. 오직 아버지가 주신대로 잘 사용하면 아버지는 그의 모든 소유를 맡겨 주신다는 사실을 이론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현실 속에서 잘 알고 성장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몇 개국에 교회를 몇 개 세우고 그런 차원에서 머무를 자가 도취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세계를 향하여 더 나아가야 하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주님의 군사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