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
지난주 토요일에는 탈북자 청년들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말씀을 전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어떤 말씀을 전해야 이곳에 와 있는 우리 동포들이 주님을 바라보고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아직 인생의 중반전으로 길을 들어서기 전에 청년의 때 선택의 갈림길에서 길을 잘 들어서야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기도하면서 그들을 그려 보았습니다. 예상한대로 구로동에 있는 교회에 도착했을 때 외관상으로 볼때 전혀 우리와 구별이 되지 않는 차림과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탈북자”라는 용어가 참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조선족이라는 말도 그렇고 고려인이라는 말 자체가 웬지 썩 마음에 드는 용어가 아닙니다. 원래 우리 모두 한 민족이고 한 핏줄을 받은 동포인데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렇게 갈라지게 된 현실입니다. 모두 아름답고 잘 생긴 청년들이 교회에 모여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도 외국에서 11년을 살았지만 외관상 홍콩 사람들과 똑 같이 보여도 단 한 번도 우리가 그곳이 영원한 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뿐더러 그들과 하나라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곳에 청년들도 겉은 똑 같아 보이지만 속사람은 이곳에서 하나라는 느낌을 갖지 못할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을 하여 남한에 왔을 때 이 조국이 그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고 있을까요? 전에 탈복을 하여 이곳에서 신학을 공부한 목사님은 가난한 곳에서 와서 더 쉽게 남한의 물질문명에 물이 든다는 우려를 했습니다. 제가 느낀 것은 비단 북한에서 온 그들뿐 아니라 온 세계에서 가장 적그리스도는 무슬림도 불교도 다른 종교도 아니고 바로 물질이라는 신 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시작할 때 한국의 이전 모습을 이야기 했습니다. 제가 청년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껌을 하나를 씹으면 얼마동안 씹느냐고 물으니 좀 씹다가 뱉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우리가 어렸을 때 껌 한 개가 귀해서 껌을 씹다가 밤에 잘 때는 벽에 붙혀 놓고 또 다음날 씹었다고 하니 모두 놀라며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냉장고가 없어서 여름에는 얼음파는 집에서 톱으로 썰어주는 얼음 한 덩이 사서 더러운 새끼줄에다 들려주면 집에 가지고 와서 너무나 비 위생적인 못으로 얼음을 깨서 온 식구가 둘러 앉아 얼음을 넣은 미수가루나 수박 한 대접을 그것도 매일 먹는 것이 아니고 어쩌다 먹으면 그렇게 행복한 한국이었다는 것을 이야기 하니 공감을 하며 귀를 귀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절에 아무도 자살하지도 이혼하지도 않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제가 대학교 4학년때 남학생 10명과 여학생 2명을 학교에서선발되어 학교에서 주는 경비로 일본을 여행갔을 때 당시 1970년도에 한국에 아직 흑백 TV 가 보급되기 전에 그들은 칼라 TV 가 나와서 흑백 TV를 세일하는 것을 보고 살아온 청년시대에 어떻게 하면 돈을 더 잘 벌어서 잘 사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온 국민의 소원이었고 당연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 했습니다. 얼마나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하는 국민들이었으면 인사가 “진지 잡수셨어요?” 라고 인사를 하고 “춘궁기”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한국은 가난했습니다.
그렇게 출발한 우리 젋은 시절에 주님은 시청각 교육을 통하여 이 땅이 영원한 것이 아니고 이 땅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일찍 가르쳐 주셨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하면서 우리를 통하여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의 통로로 지혜롭고 충성된 청지기의 삶을 원한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영상을 통하여 그 약속이 신실하고 이루신 것 들을 증명 해 보여 주었습니다. 땅의 것을 찾아가는 육의 사람들과 하늘을 향해 가는 사람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전할 때 청년들은 모두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만약 우리가족이 우리 4식구만 먹고 살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면 오늘과 같이 열방이 나아오는 이 놀라운 현장에 결코 참여하지 못했을것습니다.
요즈음 그 아름다운 영혼들뿐 아니라 수 많은 영혼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기도의 수준이 너무나 낮은 것을 실감하며 예수님의 기도를 묵상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에서 사탄의 세력을 처음부터 금식기도를 통하여 말씀을 가지고 물리치고 시작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1. 금식하며 기도하고
2. 밤이 맞도록 기도하고
3. 새벽 미명에 기도하고
4. 핏방울이 땀방울이 되도록 기도하고
이 기도의 모습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예수님이 그 정도 기도하시는데 우리 같은 허약한 존재가 그렇게 시시한 기도를 해서 과연 어둠 속의 영혼을 구할 수 있을까 많은 묵상을 하며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 탈북자를 위한 중보기도와 우리 조국을 위한 중보기도 주위에 수 많은 해매는 영혼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당연해 해야 하는데 너무나 부족한 것을 실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자신들의 기도하는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고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요청한 것과 같이 그러한 기도를 해야 될 것으로 우리는 중보기도 모임에서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중보기도를 더 하려고 시작을 하자 지난주 외국인 예배 때는 특별히 이 기도를 배우고 싶은 외국인들이 일어서면 그들을 중보하겠다고 하니 태국인 몽혼은 서서 기도하는데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는데 밑에 성경책을 놓는 자리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중보기도하고 앞으로 가려는데 다른 외국인들도 저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기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장면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잡자 마자 그냥 방언으로 유창하게 기도하는 것을 보고 제 자신도 놀랐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모델을 따라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