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에게
고전4: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디모데가 곧 구약을 다 읽고 신약을 들어가는데 좀 도움이 될것 같아 이글을 쓴단다. 먼저 순서대로 사복음서를 깊이 묵상하며 반복 해서 읽어보렴. 예수님의 생애와 예수님이 직접 가르침이 있는 말씀을 그냥 스토리를 읽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한 글자 한글자 주님의 생애를 묵상하고 성령의 도우심의 기도를 하면서 읽어보기를 바래.
특히 요한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에 예수님의 인성(사람의 모습으로 온 모습을 강조한다면)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한 요한복음 말씀들을 이해가 될깨 까지 읽기를 바래. 그리고 예수님이 가르침을 주셨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던가를 다른 사람이 말한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고 성경 그 자체를 읽으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 인간의 본성과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그것을 이해하는데 성령님이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을 깨닫게 된단다.
요7: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그냥 건성으로 읽으면 그런가보다 하지만 요한복음 6장까지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라는 보여주기 위하여 사람이 할수 없는 표적들을 베푸셨지.
1. 2장 1~11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표적
2. 4장 46~54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을 고쳐 주심
3. 5장 1~16 베데스다 연목사에 38 년 동안 걷지 못하던 병자를 고쳐주심
4. 6장 1~15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심
5. 6장 16~21 물위를 걸으심
예수님께서 그렇게 어마 어마한 표적을 보이셨지만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그 형제들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6장 지나서 7장에 쓰여 있는 것을 보렴. 여기서 한번 나 자신을 적용해 보자. 디모데가 경험한 예수님이 베푸신 표적은 인생에 무엇 무엇이었던가? 과연 그 감격이 늘 함께 하는가?
예수님은 요한복음 11장까지 자신이 메시야라는것을 가르쳐 주시면서 7가지 표적을 보이시는데 5번째 까지 보고도 다른 사람이 아닌 형제들까지 믿지 않는 그런 상황이었어. 그후 두 가지 더 표적을 보이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자.
6. 9 장 1~41 날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시각장애인을 고치심
그리고 드디어 죽음 나사로는 살리신 표적이 11장에 있어.
7. 11: 1~41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
죽은 사람까지 살리신 표적외에 예수님은 가시는데 마다 많은 병자를 고쳐 주셨고 약령이 든 사람들을 고쳐 주신것을 옆에서 목격한 제자들은 이 표적을 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을때 왜 모두 도망을 갔을까?
하나님께서 디모데를 사랑하시고 가족이 없기에 고통받고 홀로 내버려 둔 것 같은 외로움에 처해 있을 때 지금은 주일이 되면 행복동의 대 가족이 보내는 편지 답장을 하느라고 바쁘게 된 그 사실 하나만이라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잊지 말아야 될 것이야.
제자들은 그렇게 완벽하고 흠이 없는 예수님께서 시청각교육을 통하여서 예수님이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 그 분이라는 것을 보고 믿었어야 하는데 그들은 모두 실패작인 제자 밖에 되지 않았던거야. 그러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가서 “성령을 받으라”고 (요 20:22)
하셨고 실지로 그들은 오순절때 성령세례를 받고는 세상을 뒤엎는 사람이 된 거야.
“성령”에 대한 말씀은 사도행전에 시작된 것이 아니고 이미 사복음서에도 쓰여 있고 성경 곳곳에 성령님을 말씀하셨어. 그렇게 표적을 보고 배워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고 예수님이 하는 일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가르쳐 주실 때 예수님이 하신 것보다 더 큰 일을 하신다고 약속하셨지.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 당하시고 생명을 주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 때까지 가르쳐 주시고 표적을 본 것을 알아듣지 못한 것을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깨닫게 된다고 하신거야.
요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요16: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요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다시 1장으로 돌아가서 창조주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알아보지도 못했고 영접하지도 않았어.
한번 우리 점검해 보자.
“죄와 심판, 의에 대하여 우리가 잘 알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그 댓가로 주어진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에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기에 이 몸 바칩니다. 라고 찬송을 부르게 될꺼야. 그러면 찬송가 144장을 부르면서 그 찬송을 부를 때 디모데의 마음이 어떤지를 한번 점검해 보자.
1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2 십자가를 지심은 무슨 죄가 있나
저무지한 사람들 메시야 죽였네
3 피와 같이 붉은 죄 없는 이가 없네
십자가의 공로로 눈과 같이 되네
4 아름답다 예수여 나의 좋은 친구
예수 공로 아니면 영원 형벌 받네
(후렴)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아멘
우리는 우리의 죄를 지음으로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사랑하는 주님이 대신 심판을 받고 죽으셨는데 지적 동의만 느끼고 아무 감정이 없을까? 사랑하는 주님이 막연한 존재가 아니고 실지로 그분이 흘리시는 피와 고난이 느껴지면서 우리를 회개하게 만들고 감사하게 만들고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몸 드립니다. 라는 고백이 나오는거야.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보혜사 성령이 임하셨고 그 성령님은 2000년도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그 사실을 믿게 하시고 죄를 미워 하게 만드는거야.
찬송가를 부르면서 이 사실을 깊히 깨닫고 감사하게 해달라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되면 새로운 인생이 우리 앞에 펼쳐질 꺼야.
샬롬 사랑하는 엄마께,
엄마의 편지 받고서 무사히 귀가 하신 듯 하여 감사했습니다. 엄마의 품안에, 권사님의 품안에 장로님의 품안에 이모님의 품안에, 예쁜 소희 자매님을.....그렇게 안기고 안아드릴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추운 겨울, 예상보다도 더 차갑게 느껴질 감옥안의 한 구석방에 주님의 사랑의 설렘과 따듯함 마음의 온기가 있어서 행복동의 또 다른 믿음의 방으로 변한 듯 하여 행복했습니다.
사랑스런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을 바라보고 사랑만 담아보듯 이모님과 장로님의 자애로우신 눈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고, 사랑의 눈물 담아 안타까움으로 바라보았던 권사님과 소희 자매님의 눈빛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의 아들 딸들의 아름다운 만남이 갸륵하여 흘리시는 주님의 눈물인 듯 살포시 내리시던 빚줄기 마저도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넣어주신 용돈과 음식물들이 너무 과분하고 많게 여겨졌지만 그래도 하나님것을 나누어 주신다는 엄마와 이모님과 장로님과 권사님과 소희 자매님과 함께 하시는 가족 분들의 설렘과 사랑이 느껴져서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엄마께서는 제가 똑똑하고 천재라고 칭찬해 주시지만 보셨지요? 암송도 쩔쩔매고 당황스러워 하는 그저 평범한 엄마의 아들이라는 것을요.
알렉스 형제님께 답글을 하려고 마태복음 21장 1~11 말씀을 묵상한 후에 그와 같된 말씀을 누가복음에서도 있어 찼다가 베드로의 회심장면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 외모를 보지않고 그 사람의 눈물 바라보신다는 엄마는 상대방의 속사람을 보려 하시면서 한편으로 엄마 안에 담겨있는 예수님의 사랑의 눈빛도 보여 주시고 사랑도 전해 주시려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던 말씀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2장에서 61,62절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법정의 군관들에게 끌려가시며 곧 있을 고난과 죽음을 알고 계셨을 상황에서도 인간 베드로에게 보여주셨을 예수님의 눈길, 그 사랑의 눈길이 베드로를 회심케 하시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게 하셨듯이 저를 바라보시는 엄마의 눈길도 제 사랑의 멘트로서 언제나 변함없이 제 눈과 마주하시며 진실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도록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도록 이끌어 주시겠다는 눈길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암마께서는 제게 성경은 몇권이냐고 물으셨지요. 저는 구약은 39권이고 신약은 27권이라고 말씀드렸고요. 또한 신약과 구약은 무엇이냐고 질문하셨고요. 맏는 자면 당연히 가장 기본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답을 엄마께 해 드렸는데 엄마와의 만남을 생각하던 중 엄마의 이 질문이 다시금 들리면서 엄마께서 왜 성경 암기를 권면하시고 말씀을 암송케 하셨는지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66 권이고 구약의, 신약의 당연한 몇 권이라는 대답보다는 성경의 말씀 속에서 누구를 통하여 어떤 말씀을 주셨으며 가르치심의 핵심을 깊이 있게 확실히 알아야함이 중요한 것과 그로 인하여 온전한 기도 생활을 할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려는 것임을 다시금 당연히 알게 되어 엄마께서 주님의 제자처럼 외치셨듯이 저 역시 엄마처럼 외치게 됩니다.
“성령님! 마땅히 빌 바를 모르는 디모데가 성경속의 가르침으로 마땅히 빌 바를 잘 깨달아 올바른 기도를 드리도록 도와 주세요”
지금 에스겔서를 읽고 있는데 신약 들어가기 전에 사도행전 말씀을 읽고서 다시금 성령에 관하여 구하려 하는데 이 부분도 엄마의 가르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해석이 잘 되어 있는 주석한권과 성구사전 1 권을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만날 때 주셨던 말씀을 다시금 정리하셔서 보내주십시오.
최병춘 장로님과 최병님집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한 결같이 나누어 주시는 사랑과 수고를 통하여 우리 하나님의 안아주심을 더 긴밀히 체험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병님집사님은 두 번이나 먼 길을 찾아주셨는데 뵙지 못하여 아쉽습니다. 우리 주님이 다 아시는 만큼 더욱더 은혜가 되고 복된 나날들로 함께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운전하실 때 꼭 안전하시기를 바라는 디모데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엄마
창밖 건물에 있는 방에 찾아오는 고양이 이야기 말씀드렸죠?
어느 때부터인가 두 마리가 되었습니다. 한갓 미물도 유익이 되는 것을 알려주고 함께 나누는데...인생들의 가장 큰 유익이며 참된 복 누리는 구원의 기쁨을 더욱더 열심히 전해야 하는 사명감을 배웁니다. 또한 말씀을 사모하고 알아가려 하는 것들이 아는데서 그치지 않고 행함 속에서 참 기쁨을 누리는 아들이 되도록 기도하여 주십시오. 사랑하는 아버지 장로님과 홀리네이션스의 모든 가족 분들의 행복과 영육의 강건함을 바라면서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참 많이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