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사랑, 권사님 전상서
언제부터인가 저와는 무관했던 것 같은 눈물이 예수님을 알고 제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난 이후부터는 저와 가장 가까운 단어 중에 하나가 되어 버린듯합니다. 회심했을 때, 마음의 평안을 누리게 되면서 찾아온듯합니다. 기뻐도 울고, 감사해도 울고, 가슴 아파도 울고…
어릴 적에는 아버지께서 제게 울보라는 별명을 지어주셨었지요. 제가 잘못해서 그랬을 테지만, 어린 나이에 계모님의 매질 앞에 덜 맞을 수 있으려면 우는 것이 상책이라 여겼기에 그랬던 것 인지 아니면, 어머니(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참으로 귀한 인연으로 화답해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인연이 하나님 안에서의 인연보다 귀하고 소중할까요. 자기 아들을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어 우리의 죄를 아들의 피로 씻어주시고 우리를 아들과 딸로 삼아주신 후 인연을 만들어 함께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사랑하고 부족함을 채워주며 사랑의 관계로 맺어주신 이 인연보다 귀하고 아름다운 인연이 정말 어디에 있을까요…
이시간, 간절히 바라고 원합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어 맺어진 인연,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영원하기를….
참 사랑이신 주님 안에서 문안 드립니다.
평안하셨는지요? 만남을 갖기 전에 권사님과 소희자매님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뵙고 나서 디모데의 마음을 담으려고 미루었다가 pen을 들었습니다.
처음 만남은 어떠하셨는지요?
어머니를, 이모님을, 장로님을… 처음 뵐 때도 그랬지만 권사님을 뵈면서 권사님 안에 함께 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전해져서 행복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주님 아니면 제가 어찌 이리도 귀하고 사랑 많은 분들의 품에 안겨볼 수 있었을 찌요… 만남 후, 사랑하는 분들이 떠나 가신 자리에서 왈칵울음을 터트릴뻔 하였습니다. 헤어짐의 아쉬움보다는, 그 누가 저 같은 인생을 사랑으로 보듬고 눈물 어린 눈빛으로 바라봐 주실까…
그 먼길을 오시려면 꼭두새벽부터… 내가 얼마나 소중하시기에 이런 사랑으로 보듬어 주시는 걸까…
찬양이 절로 나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
주님 뜻대로 살기 원하여 이처럼 간구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죄인 부르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몸바쳐 살렵니다”
권사님!
뵙고 난지도 벌써 일주일이 되어가고 있는데도 어머니는 물론 사랑하는 분들과 찬양 드리고 마주했던 눈빛이 선하게 떠오릅니다. 특히 처음 뵈었던 권사님과 두 번째이지만 소희자매님의 눈빛이요. 권사님은 저를 꼬옥 안아 주시며 놓기가 싫으신 듯 하시다가 눈물을 머금으신 눈빛으로 저를 바라봐 주셨고 소희 자매님도 저를 안고서 “오빠 주려고 양갱 가져왔는데…” 울먹이는 말을 하는데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듯 눈가가 빨개졌었지요…
소희자매님이 지난 28일 쓰러졌다가 입술을 깨물어서 얼굴이 아주 안 좋게 되었다는 편지를 보냈었기에 염려하는 마음으로 자매님의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울먹이는 중에 보여지던 자매님의 이를 본 순간, 속으로 너무도 안타깝고 안쓰러웠습니다. 제가 잘못 보았는지 모르지만, 저의 앞니가 의치이기에 한눈에 자매님의 이가 눈에 들어왔었습니다. 참으로 고운 심성으로 글을 쓰는 귀한 달란트를 지니셨는데 어찌 육신의 힘겨움을 겪고 있는 것인가… 권사님이 저를 보시고 가지셨을 마음으로 저 역시 소희 자매님을 위하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권사님!
알렉스 형제님과도 나눈 말씀이지만, 어머니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시고 눈을 통하여 그 사람의 속 사람을 짐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도 어머니를 닮아가는 아들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을 만나면 눈빛부터 보게 되는데 상대방의 눈을 보면 어느 정도의 진실과 거짓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과 거짓된 마음이어서 똑바로 보지 못하는 경우 정도는요…
알렉스 형제님이 마태복음21장 1절로11절 말씀으로 교제를 나눠 주시기에 관련 말씀을 찾다가 누가복음 22장61절 62절 속의 베드로를 바라보셨던 예수님의 눈길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 곁에서 함께 하며 그 많은 기사와 이적을 직접 경험하였으면서도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를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눈빛은 어떠 하셨을까…
한심하다는 눈빛이셨을까, 책망의 눈빛이셨을까…
아니셨겠지요. 오히려, 약한 베드로에 대한 연민의 눈길, 염려와 이해의 눈길, 만민의 죄를 감당하시는 사랑의 눈길이셨을 것입니다. 잘못을 돌이키게 하시려는 격려의 눈길이셨을 것입니다.
권사님!
저는 이 말씀을 만나면서 고난과 죽으심을 아시는 중에도 먼저 인간 베드로를 이해하시고 사랑의 눈으로, 당신보다 오히려 베드로를 불쌍히 여기시고 가슴 아파 하셨을 주님을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옴과 동시에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인간 베드로가 예전의 제 모습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디모데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이 더 깊이 느껴져서, 주님의 고통이 짐작되어져서, 너무도 감사해서, 너무도 죄송해서, 너무도 가슴 아파서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권사님!
사랑하는 분들이 저를 바라보셨을 때, 그 안에는 주님이 함께 하셨음을 믿습니다. 그런 사랑의 눈길을 받은 디모데 이기에 저 역시 그런 눈길로 함께하는 동료들을 바라보아야 하겠지요. 언제 어느 때든 사랑의 눈길로 디모데를 보시고 보살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진실한 믿음의 자리에 서기 원합니다.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영육의 강건하심 속에서 권사님의 바람대로 권사님의 따님들이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루시고, 소희자매님께 신앙의 바른 유산이 물려져서 주님 보시기에 어여쁘고 귀한 나날들이 될 수 있도록 저 역시 온 맘으로 간구 하겠습니다. 저를 만나시려고… 아마도
주후
사랑에 빚진자,디모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