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
사람들은 거의다가 나의 명칭을 권사라고 부릅니다. 마치 내 이름이 “권사님”이렇게 듣는 것이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이름입니다. 남자들은 평상복을 입을때 하고 군복을 입었을 때하고 예비군복을 입었을 때 행동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나도 나를 권사님이라고 불리울때 하고 외국인이 부를때 “마마킴”을 그냥 “마마”라고 부를때 하고 “엄마”라고 부를때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말레이시아에 살 때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에게 가서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날 요한복음 1 장 12 절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우리 모두가 한 아버지를 모시고 살수 있기에 형제 자매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한명의 노동자가 불쑥 하는 말이 당시에 사십대 후반이었는데 “나는 누나 같지 않고 엄마 같아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노동자는 이십대 초반이었고 우리 친아들과 나이가 같은 또래들이었습니다. 어떤 의미로 그렇게 불렀는지 정확한 마음은 헤아릴수 없는데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그 말이 내 심장을 두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아들은 대학을 갓 입학했을 때 였습니다.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은 당시에 말레이시아에 건축 붐을 타고 건축현장에서 불법체류자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 년 내내 35 도가 웃도는 기온에서 아침은 굶고 점심시간이 한 시간인데 전기밥솥은 생각도 못하고 대야 같이 생긴 데다가 밥을 해서 먹으면 밥하는데 한시간정도 걸리고 부랴 부랴 다시 일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친 아들이 저렇게 아침을 굶고 태양빛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 엄마는 어떻게 할까?” 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엄마라는 이름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외국에서 살 때 다른 외국인들은 남편 성을 따라서 “미세스 조”라고 부르던지 친한 친구들은 “숙”이라고 불렀습니다. 왜 하필이면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은 나를 엄마 같다고 했을까요? 밤새 고민을 하다가 엄마는 매일은 못해도 할수 있는 만큼 밥을 해 주자 생각하고 그 현장에 있는 40 명쯤 되는 노동자들에게 점심 도시락을 싸서 배달해주기 시작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더운 나라기에 낮 12 시면 시장이 문을 닫고 주로 부지런한 중국계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여는 새벽시장은 아주 일찍 열어서 대부분 장사들이 사러 가는 시장이 열렸습니다. 나는 당일 새벽에 가서 물건들을 구입해서 11 시까지 도시락을 싸는것을 마치고 12 시까지 차로 운전을 해서 가려면 실고 운반하는데도 비지땀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바로 그 “엄마”라는 이름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때부터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은 “마마”라고 부르기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마마킴”이 되었습니다.
디모데가 처음 편지썼을때 권사님이라고 불렀을때 하고 또 엄마라고 부르고 싶어하여 허락을 하고 나니 말레이시아에서 느꼈던 같은 감정이 또 생겨납니다. 음식을 할때도 밥상을 차릴때도 온가족이 모여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도 교도소내의 회색건물과 푸른 색 갈의 수감자들이 입은 옷이 생각하곤 합니다. 그냥 권사라고 불렀으면 그렇게 느끼지 못하였을 터인데 말입니다. 음식을 들다가도 목에 걸리는 기분이 자주 듭니다.
선교를 하다가 지금 많이 지쳐 있는 한분에게 어제 전화를 통하여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거의 같은 시간에 외국인 노동자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저가 질문을 했습니다. 다른 후배 신앙인이 “선교란 어떤 것이냐”라고 질문하면 무어라고 답변을 하겠느냐고요. 어느 날인가부터 기쁨을 잃어버렸다고 하면서 “선교는 해야 되는것이다”이렇게 답변을 하기에 저는 선교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선교현장은 내게 특권이었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는 기쁨의 현장이라구요. 내가 하는일이 없고 내 앞에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놀라고 감탄하는것이 바로 이 축복의 장소입니다.
인도네시아 노동자를 바라볼 때나 세상에서 남들이 초라해 보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한 영혼들을 바라보고 있어도 정말 나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저절로 울어나는 마음이 바로 그들을 귀하게 보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나의 본성이 아닙니다. 성령이 주신 마음입니다. 나도 이해할수 없을 정도록 그런 마음이 듭니다. 우리 아들이 군대에 가서 훈련을 받을 때 밖에 텐트를 치고 2 월달의 날씨에 잠을 잘 때 많이 추웠다는 그 한마디에 저녁밥을 차려서 먹으려다가 몇시간을 울고 밥을 먹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군복을 입은 차량이 지나가거나 군인만 보아도 눈물이 났습니다. 가을에는 끝없이 떨어지는 낙옆을 보면 연병장을 끊임없이 씅어도 끝이 안 난다는 아들 생각, 눈이 펑펑 오면 연병장 눈을 종일 쓸어야겠지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은 것 같이 혼자 따뜻한 음식과 편한 잠을 자는 것이 미안한 마음으로 교도소에 있는 디모데가 걸립니다. 바로 그 “엄마”라는 이름 때문입니다.
우리 두 자녀가 어렸을 때 몇 년을 그런 기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하여 부른 엄마가 하나님의 사랑을 막고 보여주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성령께서 제 마음을 다스려 주십시오” 라고 몸부림치며 몇 년을 기도했습니다. 엄마는 그렇게 힘든 직책입니다. 윤권사님이 하루는 나와 대화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 되기는 쉬워도 엄마 노릇은 힘들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책이 바로 엄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도 나의 친 자녀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없이 부족한 엄마를 고백합니다. 누가 엄마 노릇을 잘 했다고 자랑훌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