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허기진 사람들
“넌 네가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줄 아니?” 몇 권의 시리즈 책중에 한권은 제3 세계 어린이들의 이야기가 있고 지난주에는 북한의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읽어보았습니다. 정말 가슴이 저며 오는 슬픈 사연이었습니다. 제 3 세계 어린이들의 비참함은 인도의 슬럼가에서 이미 목격하고 직접 본 체험도 있는데 북한의 어린이들의 이야기는 바로 옆에 차로 가면 하루에 왕복할 수 있는 거리에서 이루 표현할 길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인도에 갔을때 목격한 것은 슬럼가의 아이들은 학교에 보내지 않고 전에 한국에 지게꾼이 무거운 짐을 버스까지 날라다 주는 것 같이 아이들이 머리에 시장 본 물건을 날라서 차에 실어주면 얼마를 받고 그것을 서로 하겠다고 아우성들이었습니다. 슬럼가에 아이들은 집 같지도 않은 헛간 같은 곳에서 결핵환자인 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으며 배고픔에 주려 있었습니다. 길거리에는 구걸을 하는데 더 동정을 더 사기 위해 일부러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팔다리를 부러트려 사람들의 동정을 더 많이 받아서 구걸하는 수많은 장애 아이들. 이것은 저가 직접 본 이야기입니다. 네팔은 아직 가보지 못했고 슈랜드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주 어린 아이티가 벗은 소녀가 인도의 성 노리개로 팔려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이의 신체 내부의 장기를 인도에 팔아서 고통을 당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것은 육신이 배고픈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나누어서 배고픈 그들과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그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할것입니다.
전에 일본에 위안부로 끌러갔던 이야기를 담았던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를 기억합니다. 그런 고통 가운데서도 “나는 살고 싶었어요”라고 고백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런 모든 고통이 사람을 죽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데 사람은 영혼이 허기지만 아무런 미련이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립니다. 전에 한국에 부동산 붐이 일어나 복부인이라는 유행어가 사회를 휩쓸 때 가난한 판잣집에서 상추쌈 싸서 서로 입에 넣어주며 행복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부인이 복부인으로 등장하며 판잣집에서 세월이 자나자 빌딩이 몇 개가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아내를 보고 황금알을 낳는 부인이라고 하며 그 돈으로 바람을 피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엄청난 과외비를 들여서 공부를 시켰지만 모두 비행 청소년으로 되어 이 복부인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복부인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백화점으로 다니면서 고가픔을 사들이며 다른 친구들 앞에서 과시 하였지만 늘 허기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빌딩 관리인 젊은 남자에게 돈을 주면서 자신의 쾌락을 찾으며 한숨지며 고백하는 말이 “아무것도 없을때 보다 더 허기져”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면의 이야기지만 한국의 아이들은 길거리에 떨어진 빵을 아무도 줏어 먹지 않습니다. 더더군다나 북한의 아이들처럼 쓰레기통에 썩은 음식이라도 찾아서 해매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느 날인가부터 엄마 품에 자라야 할 아이들이 어린이집으로 가야 합니다. 그 누구도 엄마가 대신 해 줄수 없는 사랑을 아이들은 받지를 못합니다. 언젠가부터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게 되었습니다. 모두 그렇게 돈을 벌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아이들은 혼자이고 집에 와서도 기다려줄 엄마가 없습니다. 부부들은 종일 세상에 보이는 것을 갖기 위하여 너무나 피곤합니다. 영혼의 사랑이 필요한데 영혼의 사랑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넌 밥을 먹으니까 제 삼세계 아이들이나 복한 아이들보다 얼마나 행복한지 아니?” 이렇게 질문합니다. 과중한 뺑뺑이 돌리는 스케쥴에 아이들은 경쟁에 지쳐 더 허기진 배를 움켜 쥐고 생명을 포기합니다.
어른들도 아이들이 있는데도 생명을 포기합니다. 너무나 허기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전에 마더테레사가 한 말이 기억납니다. “제 삼세계의 허기진것은 빵으로 채우지만 잘 발달한 나라의 영혼의 배고픔이 더 해결하기 어렵다고” 한 것에 동감합니다. 사람들은 처음 사람을 보면 그들의 옷이나 소유가 눈에 보이지만 저는 언제나 눈을 바라봅니다. 육신이 배고픈 사람은 쾡하니 깊은 눈을 가지고 있고 영혼이 배고픈 사람은 생기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이 넘치는 사람은 눈이 반짝입니다.
사랑할줄도 받을줄도 모르는 인간의 본성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임할 때 서로 사랑하게 되며 우리의 영혼은 살아납니다.
가난한 세대의 사람들은 신세대를 보고 “복에 겨워서 그래.”라고 하지만 사람은 동물이 아니고 영혼이 있기에 사랑이 없으면 죽습니다. 다음 찬송이 절로 생각나는 시간입니다.
1.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냉정함을 아느냐
곳곳마다 사랑 없어 탄식 소리 뿐일세
악을 선케 만들고 모든 소망 채우는
사랑 얻기 위하여 저들 오래 참았네
사랑 없는 까닭에 사랑 없는 까닭에
사랑 위해 저희들 오래 참고 있었네
2 곳곳마다 번민함은 사랑 없는 연고요
측은하게 손을 펴고 사랑 받기 원하네
어떤 이는 고통과 근심 걱정 많으니
사랑 없는 까닭에 저들 실망하도다
사랑 없는 까닭에 사랑 없는 까닭에
사랑 없는 까닭에 저들 실망하도다
3 어떤 사람 우상 앞에 복을 빌고 있으며
어떤 사람 자연 앞에 사랑 요구하도다
먼저 믿는 사람들 예수 사랑 가지고
나타내지 않으면 저들 실망하겠네
예수 사랑 가지고 예수 사랑 가지고
나타내지 않으면 저들 실망하겠네
4 기갈 중에 있는 영혼 사랑 받기 원하며
아이들도 소리 질러 사랑 받기 원하네
저희 소리 들을때 가서 도와줍시다
만민 중에 나가서 예수 사랑 전하세
예수 사랑 전하세 예수 사랑 전하세
만민 중에 나가서 예수 사랑 전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