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랑하는 대화의 기술
하루는 영풍문고를 가게 되었는데 “내 남자 사용법”이라는 제목을 보고 너무나 깜짝 놀랐다. 마치 “컴퓨터 사용법” 이렇게 사람을 취급하는 우리 나라의 풍토가 심히 걱정이 되었다. 사람들의 많은 불행의 문제가 바로 대화를 할 줄 모르는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고 대화하는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땅에서도 하늘에 속한 생활을 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잠15:23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제때에 적절한 말을 하려면 우리가 먼저 천국언어가 쓰여있는 성경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사랑하는 대화를 배우려면 우선 자신이 사랑받는 것을 느끼고 알 때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의 언어를 할 수가 있다. 우리는 언어로 서로 사랑을 전하는데 그 언어를 듣고 배운 사람만이 사랑의 언어를 사용할 수가 있다. 성경을 계속 읽으라고 권면하는 이유도 이 사랑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젖 먹는 자식을 혹시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한번 되새겨 보자.
사46:3-5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이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신에게 들려주자. “나는 보배로운 존재이며 존귀한 존재이다. 배에서 태어났을 부터 하나님께 안겼고 태에서 날 때부터 하나님께 업혔다. 내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것이고 백발이 되기까지 하나님아버지는 나를 품을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만드셨기에 업을 것이고 품고 구하여 내신다.” 이런 사랑의 언어를 계속 듣게 되면 우리 입에서도 사랑의 언어를 쓰는 것을 배우게 된다. 사람은 사랑을 받아야 자존감이 생기고 사랑을 받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게 되고 생명이 넘치는 사람을 또 낳게 만든다. 성경의 언어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쓰여 있다. 우리를 만드셨기에 우리를 안고 업고 구하여 내신 구속사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책이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의 언어가 우리의 가슴속에 가득차기를 바란다. 사람은 그 속에 들어 있는 대로 말이 나오기에 그 말은 우리의 인생을 좌우하고 우리의 가족과 주위의 사람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하나님의 말씀의 사랑에 근거하여 여러분에게 사랑의 언어를 하는 몇 가지 기술을 전해드리고 싶다.
먼저 상대방의 입장과 눈높이에 당신의 눈높이를 맞추어야 상대방을 이해할 수가 있다. 우리는 늘 우리의 눈높이에 기준을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을뿐더러 그 결과 가정과 자녀가 지옥 같은 곳에서 살고 우리가 가는 곳마다 스스로 지옥의 구덩이에 갇히는 것이다.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인생의 전반을 이해하여야 사랑을 할 수가 있다. 진정한 대화를 하려면 상대방의 입장과 언어를 먼저 경청해야 한다. 훌륭한 경청이 선행될 때 대화가 잘 될 수가 있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에도 잘 듣고 말은 천천히 생각해서 하도록 가르치셨다.
약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1) 대화를 할 때는 시선을 상대방에게 고정시킨다.
자신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지 아닌지는 아주 어린 아이도 잘 알고 있다. 이 훈련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을 성령 안에서 훈련 할 때 잘 할 수 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17초 이상 남의 말에 집중하지 못할뿐더러 그 시간에도 다른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알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마음을 살수가 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그들이 나갔다오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우리 아들은 야구 한 것을 중계 방송하는데 그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다음에도 다른 이야기를 또 하고 청소년이 되어서도 성장하여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 시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가지면 다음에 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성인도 마찬가지이다.
2)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요즈음 현대인은 가장 많이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 휴대폰인 것을 볼 수가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대화를 하면서도 스마트 폰에 나오는 여러 가지에 정신이 다 팔려 있다. 길을 가면서도 보고 있고 전철 안에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함께 하는 시간은 전적으로 관심을 집중시키는 시간임을 기억해야 한다. 말을 들으면서 휴대폰이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다른데 관심을 가지면 전혀 대화가 되지 않는다. 상대방은 그것이 부부이던 자녀이던 나의 말을 경청해 주지 않으면 반드시 삐걱거리는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랑을 위해 투자한 만큼 사랑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이 심는 대로 거두는 원칙이다. 우리의 고통은 관계에서 좋은 관계가 되지 않으므로 생기는 고통이 무엇이 부족한 것보다 훨씬 더 힘든 것을 알면 우리는 좋은 관계를 위해 자신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3) 상대방의 속마음을 읽어라
상대방의 눈빛을 통하여 감정을 읽는 데는 상당한 배려와 관심이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겪고 살아온 인생의 여정은 전혀 다르기에 이것을 알지 못하고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 단 한명도 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 똑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어도 부모가 똑같이 자녀를 대우하지 않았고 개인차가 많기 때문에 상대방의 감정에 고통과 상처와 배일 속에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지 않는 한 진정한 대화를 나누기는 힘이 든다. 상대방이 느끼고 있는 기상도를 잘 살필 수 있을 때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열수가 있게 된다.
눈물을 흘린다던지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슬픈 표정이든지 상대방에 관심을 가지는 습관을 가지면 우리는 많은 사람을 얻을 수가 있게 된다. 몸으로 하는 언어를 읽는 기술을 배우면 이것은 국제 적인 언어이며 연령을 초월한 언어가 된다. 계속 관심을 가지고 상대방을 보다보면 참 재미있는 것은 처음 만나는 사람도 그 사람의 내면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기술이 생기게 된다.
4) 상대방의 말을 도중에 자르지 말라.
듣는 기술은 말하는 기술보다 훨씬 힘이 들지만 그 이상의 놀라운 효과를 나타낼 수가 있다. 이 기술을 늘이려면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 거의다가 상담을 하기 원하는 사람의 내용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그것은 자신의 고통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인내하며 듣는 훈련을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노력하면 점점 더 긴 시간을 경청하는 기술이 늘게 된다. 이 또한 성령의 권능으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훈련을 통해 할 수가 있다.
5) 대화를 나눈 후 만약 자신에 대한 비난을 듣는다면 즉시 감정을 나타내는 일을 하면 안된다.
상대방이 한 이야기를 듣고 그 내용이 당신에 대한 비난이거나 불만이었다면 듣고 즉시 반응을 나타내면 역효과를 나타낸다. 만약 자녀가 대화 도중에 당신에 대한 불만을 나타낼 수도 있고 배우자가 아니면 이웃에게서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사랑은 오래 참고”를 기억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기도를 통해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을 하면 수많은 사람을 얻게 된다.
6) 상대방의 이야기를 다 듣고 성경에 근거한 대답으로 전환하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기를 원하고 저런 경우에는 하나님은 더 좋은 대안을 가지고 계신다는 이야기로 격려하고 세워주고 용기를 주는 사랑의 이야기로 결론을 내리면 좋은 사랑의 대화로 좋은 관계가 이어질 것이다. 이것 역시 강압적인 것이 아니고 부드러운 주님의 속삭임을 배워야 잘 전달이 될 것이다.
서로 공감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격려하며 사는 것은 바로 천국의 생활이다. 세상에 태어나면 시간이 지나면 자기의 나라의 언어를 배우게 된다. 그러나 대화는 일생동한 배우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한 집에서 살면서 전혀 대화를 나누지 않는 부부도 많이 보고 자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부모와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왜냐하면 사랑의 언어는 들어본 적이 없고 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의 대화를 나누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사랑의 언어를 듣고 또 듣고 우리 자신도 그러한 말을 쓰는 연습을 해봐야 배우는 것이다.
절대 삼가야 할 언어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 믿어주지 않는 태도와 언어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주 유능한 사람이라도 믿어주지 않는 언어를 늘 들어버릇하면 자신이 그러한 사람으로 평가 절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이다. 98점 맞은 아이에게 “왜 하나 더 맞으면 백점인데 그것 틀렸어?” 라고 말하면 아이는 늘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어질 것이다. 반대로 80점을 맞아도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지난번 보다 더 잘했어?”라고 칭찬해 주면 자신을 그렇게 믿고 나아갈 것이다.
사랑하는 법은 배우고 연습할수록 더 잘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가야할 최고의 경지는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죄인을 위해서도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그 경지까지 가야 할 것이다. 우선 가장 일단계로 옆에 있는 가족부터 실천을 해 보자.
성경에서 배우는 대화의 기술
약3: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말의 위력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만큼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서로 대인관계에서 사용하는 힘이 얼마나 놀라운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성경에서 배우지 않은 우리 조상들도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이 생겼을까? 그렇다면 과연 어떤 말을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 때에 맞는 아름다운 언어- 은 쟁반에 금사과
잠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잠12:18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언어 중에 하나가 감사라는 언어를 하나님의 궁정을 들어가는 열쇠를 주시는 것을 이미 살펴보았다. (시 100:4) 사람의 마음을 여는 열쇠중의 하나도 감사라는 마음속 깊이 나오는 언어이다. 입으로 하는 감사가 아니고 진심으로 감사할 때 마음 문을 열어준다. 우리가 평상시에 당연하다고 누리는 것을 제공한 사람에게 감사의 언어를 사용해 보자. 예를 들면 부부지간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녀가 당연히 해야 하는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 부모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감사의 표현을 하면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를 선물한 것이기에 하나님이 천국 문을 열어주듯이 마음에 문을 열어주고 그 무엇도 당신을 위해 아끼지 않고 충성할 것이다.
*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하는 언어
상대방이 싫어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용기와 자신감을 빼앗아가는 언어를 생각 없이 뱉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그 말에 자신이 얽매이게 되는 결과를 갖게 되면서도 그 것을 깨닫지 못한다. 스스로 왕따를 당하기 위해 말로 무덤을 판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은 요리솜씨가 뛰어나고 웰빙음식을 만들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분은 경제력이 있었고 남편은 조기 퇴직해서 경제권이 없었다. 그분은 좋은 음식을 차려놓고 우리 앞에서 남편이 밥을 두 공기 먹으면 요새 누가 그렇게 밥을 먹느냐고 멸시하는 조로 웃어가며 같이 식사할 때 마다 흉을 보았다. 자신이 한 말이 메아리쳐 온다는 사실을 알면 그러지 않을 터인데 그녀는 평생 남편에게 욕지거리를 듣고 때로는 육박전까지 벌어졌다. 그분은 자신이 그렇게 좋은 음식만 해서 주는데 감사를 모른다고 투덜대며 단 한번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 싫어하는 언어가 그녀의 공든 탑을 무너지게 하는 사실을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잠10: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성경에서 배우는 대화의 기술이라는 분야에서 예수님도 칭찬을 즉시 하셨고 서신서에서도 꾸지람이나 어떤 지적을 하기 전에 먼저 칭찬과 격려로 상대방의 마음문을 여는 기술을 설명한 책을 읽고 참으로 공감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대답을 바르게 하였을 때 칭찬을 하신 내용이다.
마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사도 바울은 서신서를 쓸 때마다 책망이나 권면 어떤 것 전에 칭찬부터 시작을 하여 마음을 열었습니다.
로마서에는 그들의 믿음을 칭찬했다.
롬1: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책망할 것을 말하기 전에 칭찬으로 마음 문을 연 것을 주목해 보자.
고전1:4-7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복음에 처음부터 참여한 것을 감사하며 칭찬하고 감사함으로 사랑의 인사로 시작을 하고 있는 것을 본다.
빌1:3-8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골로새 교인들에게도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칭찬했다.
골1:4-5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그리고 빌레몬에게 쓴 편지의 공손함의 칭찬은 빌레몬의 마음을 충분히 얻고도 남는 감동적은 표현이다.
몬1:21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게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사실 성경에는 모든 인생의 최고의 지침서이다. 사람들이 쓴 어떤 책은 후에는 번복이 될 수 있지만 성경은 진리이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원불변한 가르침이다.
*나의 언어를 점검해 보자:
내 언어는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하고 있는가?
내 언어는 충분히 들은 다음 성경적으로 하고 있는가?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은 어떤 점인가?
6. 사랑의 대상은 요람에서 부터
우리의 자녀 교육을 위해서 부모가 사용하는 언어에도 세상의 책은 전혀 다른 견해가 나와 있다. 자녀에게 엄하게 교육을 시키는 것이 좋다는 의견과 칭찬과 격려를 하라, 칭찬이 좋지 않다, 등등 사실 모든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른다. 오직 예수님이 우리의 가장 완벽한 모델이시다.
예수님 당시에는 여자와 어린아이를 경시하던 시대이며 사람들은 어린아이도 어른과 똑같이 존중해 주어야 하는 것을 잘 모르던 시대였다. 당시에 사람의 숫자를 셀 때도 여자와 아이는 빼고 숫자를 세는 풍습만 보아도 여자와 아이를 경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창조자 우리 주님은 어린아이 때부터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을 직접 몸소 보여 주셨다. 우리는 아이는 잘 모르는 것으로 생각하고 아이 앞에서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하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잘 묵상해 보자. 마태복음 11장 25절의 말씀을 잘 읽어보면 아이들이 모르는 것이 아니고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알 수 있다.
마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어린아이에게 하는 것이 예수님께 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기억하면 우리는 어린 생명에게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달라질 것이다.
마18:3-7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리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예수님은 분주해도 어린 아이를 위하여 우선권을 두셨다.
마19:13-15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이것은 다른 분야의 이야기지만 어린 신생아에게도 두 가지 다른 법을 주장하는 의견이 있다. 아이를 규칙적으로 시간을 맞추어서 자더라도 깨어서 일정량을 먹이는 것이 좋다, 아니면 아이가 배고파서 울면 그때 주고 아이는 배가 부르면 먹지 않는다는 등 등. 밤에 잠을 잘 때도 처음부터 독립심을 키우기 위해 따로 재워야 한다, 아이와 같이 잘 때 부부간에도 함게 하는 시간이 좋지 않다는 견해, 아이는 어릴 때 충분한 사랑을 받아야 하기에 엄마와 함께 자는 것이 좋다는 전혀 다른 견해, 이 모든 것을 주장할 때는 거기에 준한 학설과 이론을 뒷받침 하여서 견해를 주장한다. 그들 모두 유명한 전문가를 자청한다.
전에 한국식은 아이는 어릴 때 배가 부르면 먹지를 않고 어른보다 정확하기에 울면 주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배의 크기가 각자 다르기에 일정량을 주는 것이 맞지 않는다는 옛 어른들의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서양에서 신학문이 들어오면서부터 이 견해는 무시되고 규칙적으로 일정량을 주게 되었고 엄마의 젖이나 자연식보다는 가공식품이 더 자리잡게 되었다. 미국에서 아기를 낳고 키웠던 한 집사님도 전에 젊었을 때는 미국식 양육법이 옳은 것으로 알고 아이가 배가 고파 울어도 일정량을 먹이고 주지 않았던 것이 지금 지나고 보니 틀린 것이었다고 고백을 하며 손자는 다시 한국의 옛 방식이 옳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이론과 실제는 전혀 다르고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과 이미 아이를 다 키워 본 사람과 경험과 이론에는 차이가 있고 어떤 것이 좋은지는 실지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알 수가 있다.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아주 안전하게 보호되다가 전혀 다른 세상에 태어나면 아기는 아주 새로운 문화충격을 받게 된다. 키워 보면 알지만 밤이나 낮이나 누가 옆에 있으면서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중간에 깼다가도 다시 안도의 잠을 자게 된다. 하지만 아무도 없을 때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아기는 마구 울어댄다. 남편과 같이 근무하던 미국인 부부는 두 자녀가 있는데 불쌍한 아기를 한명 또 입양 했다. 아기는 처음부터 따로 재우는 것으로 키웠던 이 부부는 자리를 옮기고 두려움에 아기가 우는 바람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애기를 부부가 자는 가운데 재우니 아기는 편히 잠을 잘 자더라고 웃으면서 제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서양 사람들도 다시 규칙적으로 모두 일괄적으로 같은 양을 수유하는 것에서 전과 같이 개인차를 인정하고 돌아가는 추세도 있다. 선택은 자신이 선택할 일이지만 그 결과는 후에 엄청나게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그렇게 사람이 쓴 이론과 연구결과에는 모두 오차가 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진리이며 불변이다.
7. 사랑안에 유대감과 동기부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싶은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시기 위해 여러 가지를 만드셨다. 서로 사랑함으로 험한 인생을 사랑의 유대감으로 서로 함께 이겨나가고 계속 격려 해 줌으로 새 힘을 갖도록 하셨다.
왜 짐승은 처음부터 태어났을 때부터 곧 걸음을 걷고 스스로 엄마 젖을 찾아서 빠는데 사람은 안아서 젖을 먹여야 되도록 창조하셨을까? 또 동물은 뱃속에 있는 시간이 사람과 달리 그리 길지 않다. 사람은 왜 거의 열 달이라는 시간을 엄마의 뱃속에서 자라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사람은 전혀 스스로 앉지도 걷지도 못하고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야 걸음마를 띠고 한 사람이 성인이 되는데 오랜 세월이 걸려야 하는 것일까?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상처받는 영혼들을 보면서 깨달음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동물에게 없는 영혼이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영혼은 사랑의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태어났기에 반드시 사랑으로만 건전하고 건강한 한 사람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290일 동안 엄마 뱃속에 있으면서 엄마는 태어날 자녀를 위하여 사랑하는 법을 깊이 묵상하고 새로운 각오로 한 생명을 키우지 않으면 일생을 자신이 힘들어 질것이다.
첫째 290일 동안 엄마는 한 생명을 뱃속에 데리고 다니면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이기적인 본성을 가진 인간으로 쉬운 시간이 아니다. 우선 입덧이라는 것을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하는 시간은 반드시 엄마가 되는 길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아기가 커질수록 작은 여성의 힘으로 아기를 뱃속에 넣고 다니는 것이 무겁다. 그리고 출산의 고통은 가장 힘든 고통 중에 하나이다. 게다가 엄마가 애기를 안고 사랑을 느끼게 해주면서 젖을 먹이는 그 시간에 엄마의 몸은 산후 조리를 해야만 하는 자신의 몸도 좋지 않은 가장 힘든 시간이다. 머리카락도 빠지게 된다. 이런 과정은 사랑의 속성 중에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으로 깨달음이 왔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을 보여준 십자가의 죽음이 바로 최고의 사랑인 것을 깊게 느껴 본적이 있는가?
어린 아이들은 사랑안에 유대감으로 자신이 존귀한 존재이고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되어야 인생을 헤쳐 나가는 법을 배우고 성인들도 사랑안에 유대감을 느끼고 동기 부여가 될 때 자신의 몫을 잘 할수 있게 하셨다. 동기화 지수는 지능지수보다 높아서 아이들을 스스로 공부하게 동기를 부어주게 되고 성인들은 자신이 할 일을 기쁨으로 하여 행복을 가져 올 것이다. 아내가 차려주는 음식을 계속 투정부리며 받는다면 남편은 더 맛없는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반대로 동기부여를 불어 넣어 주어서 감사와 칭찬을 하면 더 성의 있는 음식을 먹게 될 것이다. 남편이 나가서 돈을 버는데 사랑으로 감사하며 동기 부여를 해 준다면 남편은 기쁨으로 일을 더 잘하며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동료끼리도 직장이던 상사이던 동기화 지수를 올려준다면 좋은 효과를 더 잘 낼 수가 있는것을 본다.
이것은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서 주님과 언제나 동행하는 비결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엄청난 사랑을 인생에서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에게 행복동 주민등록증이 발부 된다.
행복동 주민등록증
다른 곳의 주민등록증은
가방 속에 놓고 다녀
행복동 주민등록증은
얼굴에 쓰여 있네
먼저 마음속부터 새겨 있지
처음만난 분이 말씀하네
얼굴에 행복이라고 쓰여 있어요
행복동 주민이니까요
다른 분은 말씀하네
평안이라고 쓰여 있어요
행복동 주택은 평강가구만 있어요
평강가구를 사용하면
얼굴은 평안이라고 쓰여 있어요
어두운 얼굴은 전혀 없어요
밝은 내 님의 빛이 비춰주니까요
사랑이 넘치는 얼굴이예요
행복동은 서로 사랑하니까요
먼저 내 주님을 사랑하지요
사실은 주님이 먼저 시작한 짝사랑
언젠가부터 서로 사랑해요
온유한 얼굴이예요
내님과 살다보니 조금씩 닮아가요
행복동 주민등록증에는
행복 평안 밝음 사랑 온유
이렇게 쓰여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