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없는 감옥과 창살 있는 낙원
홍콩에서 대만에서 온 쉐리와 영국인 남편과 사는 집은 홍콩의 잡지에 집안 전체가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쉐리는 저와 잘 아는 사이라 그 집을 간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 집의 실내장식은 정말 화장실 문고리 하나 창문하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하게 내부 장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쉐리는 자신의 집을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처음 쉐리를 대만에서 온 사람들이 모인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서 만났습니다. 그때 제일먼저 쉐리의 얼굴이 제 눈에 들어왔고 첫인상이 마치 에이즈 환자가 죽어가는것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쉐리에게 말을 건네면서 같이 기도하러 우리 집에 가겠느냐고 하니 즉시 따라나섰습니다. 그날 같이 기도하고 정말 오랜만에 밤에 편안하게 수면을 취할수 있었다고 하던 쉐리가 그렇게 아름다운 실내장식에서 평강을 전에는 전혀 누릴 수가 없었기에 밤마다 수면제를 의지해서 잠을 자는데 너무 장기 복용하니까 전혀 잠을 자지 못해서 그렇게 죽어가는 표정이었습니다.
다른 한 집도 아주 아름다운 장식을 잘 하고 있고 그분의 특징은 수백만 원 하는 명품 헨드백이 500 개를 소유한 사람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데 조용히 둘만 있을 때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자신은 슬픈 여인으로 하루에 눈물을 닦느라고 크리넥스를 한통씩 쓰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돈이 많아서 딸이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댄스파티도 하고 즐겁게 놀라고 아파트 한 채를 따로 사 주었는데 그곳에서 그렇게 놀다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것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사는 수 많은 사람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교도소에서 있으면서도 자유를 누리며 아름답게 사는 영혼이 제게 보내온 편지를 오늘도 우리 기도모임에서 같이 읽으면서 너무나 아름다워서 여기에 함께 나눕니다.
샬롬! 주님사랑 권사님께
어떤 마음을 먼저 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주님께 먼저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립니다. 권사님과 윤난호권사님과 함께 왔던 형제님과 자매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안에서 평안하셨지요? 잘 귀가 하셨는지요? 윤권사님도 형제님과 자매님께도.....
보내주신 귀한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제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마음을 전해 주시려는 권사님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조나단과 함께 하셨던 주님이 제게도 함께 하시는 것을 믿으며 저를 통하여 나타날 주님의 크고 비밀한 일들을 기대해 봅니다. 그러기 위하여 주님께 부르짖고 또 부르짖으며 믿음의 경주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함도 개닫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물질 또한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권사님께 우표를 보내주셨으면 그러다가 더 필요하게 될 때 말씀드리려 했는데 면회때 권사님이 “우표 사구요” 라는 말씀을 하시기에 속으로 “히야...!” 했습니다. 저의 필요를 아시기나 하는 듯이....오래된 안경이어서 안경알을 교횐 했으면 하였는데 안경알도 교횐하려고 교환 신청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신세진 주변 동료들과 어려운 중에 지내는 형제들과 닭고기 훈제 라는 음식물을 구매하여 나누었고 제게 내의를 입히고 싶어 하셨던 권사님의 마음을 참으로 따뜻하게 받았기에 내의 한 벌 구입하여서 없는 형제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물하였습니다. 믿는 형제에게 선물할까 하려다가 남을 먼저 챙기셨던 권사님이 생각나서 믿지 않는 형제에게 선물하였답니다. 저는 입고 있는 내의가 있습니다.
참 글씨체에 관하여 말씀드린다고 하였지요? 중학교 1 학년때 쫓겨 나와서 가출을 한 제가 세상 속에서 방황하느라 글씨를 써보기나 했을까요.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졸업자격을 얻고 난후에도 글시체는 저의 못마땅한 부분 이였습니다.
제 작년쭘엔가 “찬미예수”라는 복음송가 곡이 담겨진 찬양 책을 보다가 글씨체가 예쁘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런 글씨체로 훗날 편지 사역등 문서 사역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예쁘게 전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성경책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써내러 갔습니다. 그냥 쓴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책의 여백이나 종이들 (이곳에서는 허가 되지 않는 종이나 기타 다른것에 필기를 할수 없고 보관할 수도 없기에 그때만 해도 저의 행위는 부정행위였지만 그 가운데서도 무사히 완판을 하였답니다)를 찾아서 정자로 또박 또박 써내려 갔는데 마무리 때쭘에 두 가지 글씨체를 자연스레 사용하게 되어 저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또 한 가지 더 기뻤던 것은 성경 완전이 써내려 간 후에 그동안 꼬리처럼 따라다니던 특별 관리대상 요시찰이라는 감사체제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아시죠? 그 기쁨!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그 충만한 감격, 신뢰, 감동....늘 그 충만함으로 살아가야 하는데...순간 순간 마다 파도치듯이 나타나는 저의 연약함, 번덕스런 믿음이 불만입니다. 그래서 권사님의 믿음을 본받고 닮아가라고 권사님과의 인연을 닿게 하셨다고 믿습니다. 이곳에서 지내고는 있지만 저의 노력들이 예쁘게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어지는데 사용되어 질줄 믿습니다. 그리 되기를 소망합니다.
면회 때...돌아가는 발걸음,,,,
오랜 사랑을 나눈 가족처럼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10 분이라는 짧은 만남을 위해 길고도 귀한 시간을 내어 사랑을 내어 찾아오신 분들! 옥장 안에 갇힌 자식을 놓고 돌아서기 힘든 어머님 마음처럼 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면회실에서 바라보고 계셨을 권사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돕니다. 그 어떤 첫 만남이 이리도 고울 지요...주님이 아니시면 누가 이런 귀한 사랑의 모습을 만드실 지요...감사드립니다. 참 좋으신 주님!
말씀 드렸듯이 형의 호적을 사용하게 되었기에 주민들 옥상으로 44 살입니다. 제 본 나이로는 42 세 인 셈이죠. 권사님의 연세에 견주면 큰 아들 벌이죠. 저 권사님의 아들 되렵니다. 권사님을 통한 주님의 사랑의 자양분 먹고 권사님처럼 믿음으로 기도의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아들이 되렵니다. 그래 주실꺼죠? 그런 지금부터 어머님을 향한 아들의 마음처럼 아니 아들의 마음을 담겠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님!
윤권사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밝음 모습이 좋으시다구...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는 능력임을 고백합니다. 40 이면 자신의 모습에 책임을 져야 된다는 말처럼 제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모습이 나타내어지도록 살렵니다. 더 노력하고 더욱더 훈련되어 세상 그 어느 곳에 놓여있게 된다 하여도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는 인생이 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면회후에 그날 편지를 드리려다가 이런 귀한 인연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어머님과 만나케 하신 주님의 계획하심과 어머님의 사랑의 섬김과 가정이든 선교회든 함께 하시는 가족준들을 위한 직접기도를 드리고 난후에 소식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늘 임마누엘의 주님을 주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가운데 복된 시간들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사랑의 마음을 담아 주신 윤권사님과 형제, 자매님께 다시금 감사를 드리면서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승리하십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