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는 독수리인가? (3)
넷째: 예수님의 모델을 따르기
예수님은 언제나 먼저 모범을 보이시고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지 않고 말로만 가르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눅22: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요13:12-15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의 가르침은 섬기고 사랑해 주고 목숨까지도 주시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비로서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는것을 증명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진정 그리스도인이라면 다른 것 한 가지 그것은 “서로 사랑 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사실 전도하고 한 사람의 나르는 그리스도인이 될 때까지 그런 과정은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써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시간이기에 우리 자신을 위하여 아주 유익한 것을 선교 25 년동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만이 기적을 남긴다” “사랑은 실패하지 않는다” 이것은 주님이 보여주신 진리인데 우리는 사랑을 받을 줄도 할 줄도 모르는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위로부터 받는 사랑을 깨닫고 배우고 행할 때 비로소 사랑이 무엇인지를 하게 됩니다. 오직 거듭나서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를 때 이것은 가능합니다.
엡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주님의 권면을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새겨봅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이 보여주신 어떤 모범도 사실 주님 안에 뿌리를 박고 그곳에서 진액을 받아서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안에 거하기만 하면 우리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을 저절로 내안에 행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주례를 많이 섰던 목사님께서 이런 설교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모두 슬플때나 기쁠때나 어떤 상황에도 사랑한다고 결혼 서약을 하고 결혼하면서 서로 그 서약을 지키지 못하고 금방 싸움을 하게 되는데 어떻게 세계 평화가 이루어지느냐고 하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가장 열렬하게 사랑한다고 하는 남녀의 사랑이 “처음에는 그 사람이 없으면 못살겠고 결혼하여 잠시 후면 그 사람 때문에 못살겠다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코스입니다. 참 우스운 것은 결혼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대화가 자신의 가족을 흉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째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고 주님이 말하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도 있는지요?
그러나 나는 죽고 내 안에 주님이 대신 살 때 이것은 가능합니다. 전혀 자신도 알 수 없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사랑입니다.
예) 여호수아는 내일 이 10 번째 생일입니다. 정신 지체인 엄마와 파카스탄 아빠에게서 태어났고 현재는 아빠는 이혼하여 다른 파키스탄 여자와 살고 있습니다. 엄마 영자씨와 결혼하기 전부터 만났기에 햇수로 10 년이 넘도록 함께 지내왔습니다.. 선교 초창기에 자신의 한국 비자를 취득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결혼을 하려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결혼을 7 쌍을 현재까지 시켜 주었지만 처음부터 그의 의도가 좋지 않은 것을 알았기에 저는 거절을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곳에서 결혼을 하고 다시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에 관심이 있기 보다는 여러 가지 의료 혜택이나 다른 것이 좋아서 교회를 다녔는데 하루는 어린 젖먹이 여호수아와 엄마를 놔두고 외국으로 떠나버렸습니다. 독일에 가서 일거리가 있나 떠난 것입니다. 젖먹이 여호수아를 업고 다니는 영자씨를 따라 그 집에 가보니 옥탑방에서 살면서 우유를 먹이다가 남으면 여기 저기 소독하지 않는 젖병이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살길이 막막하고 애기를 혼자 돌보는 것이 너무 위험해 보였습니다. 다달이 내는 집세와 생계를 해결할 방법으로 그녀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장애인판증을 받고 여러 가지 서류를 구비하여 다달이 정부 지원을 받도록 했습니다.
그 지원금으로 집세도 내고 생활도 하는데 하루는 애기를 책상위에 올려놓았다가 떨어트린 적도 있습니다. 일산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처음에는 애기가 너무 오랫동안 말을 구사하지 못해서 언어 장애가 있나 걱정을 했지만 지금은 말을 아주 잘합니다.
우리 선교회 팀은 서로 힘을 합쳐서 이 가정을 십 년째 돌보고 있습니다. 먹을 음식도 만들어다 주고 옷도 사다주기도 하고 함께 기도시간도 가지고 지냅니다. 한번은 그 가정이 저가 모르는 사이에 이사를 해서 그 딸을 찾아냈습니다. 어느새 삼십대 후반에 결혼한 영자씨는 이제 49 세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인가부터 49 세나 된 자그마한 키를 가진 그녀는 저를 부를 때 “엄마”라고 부릅니다. 어떤 때는 바빠서 충분한 시간을 같이 하지 못하지만 한 가지 끊임없는 끈끈한 사랑이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이어집니다.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이 우리의 관계를 이어갑니다.
지용이는 아무도 없는 데서 둘만 있으면 “권사님, 저 한번만 안아주실래요?” 하며 180 cm 나 되는 체격을 가지고 두팔을 벌립니다. 그럴때 제 눈에는 어린 아이같아 보이기에 안아주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안아주는지 그 모습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성환이도 속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따로 둘만 만나서 자신의 내면의 숨겨진 이야기까지 모두 털어놓습니다. 언제나 돌아올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정말 끊임없이 욕을 퍼붇는 사람도 각가지 사연이 있으면서 사랑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도 국적을 초월해서 한 영혼들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그들의 허물보다는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25: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