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인가 쇼인가
이것은 토저 목사님의 책 제목입니다. 하용조 목사님도 “여러분 예배를 드리러 왔습니까? 쇼를 보러 왔습니까? ” 라고 한탄 하시며 걱정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느 흑인이 백인들만 들어갈 수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러 왔다가 모두 들어가는것을 거절당하고 주일날 공동묘지에서 울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 옆에 예수님이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들어가실 교회가 없어서 공동묘지에 계시며 그 흑인을 위로하시더라는 일화입니다. 히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며 죄인들은 회개하고 구속한 주님을 찬양하는 예배의 감격!!!. 그 예배의 감격은 우리 삶 전체가 예배로 인도하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토저 목사님이 쓴 “예배인가 쇼인가”에서는 복음주의를 자랑하는 교회에서 어느 날인가부터 복음이 전파되는 대신 쇼 무대로 바뀌었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고 있기에 사람들의 숫자는 많지만 날지 못하는 사람들로만 가득차 있는 실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만큼 능력이 있는가? 를 실지로 보는 것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송학식품에서 처음 말씀을 전하기 전에 한두 번 초청을 받아 말씀을 전하러 간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예배를 드린다기 보다는 모두 구경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나마 구경을 하는 사람들은 인사 치레로 눈을 뜨고 있는 것이고 다수가 그 시간에 월요일 첫 출근 시간에 일해야 하는 시간에 앉아 있으니 주말에 덜 풀린 피곤이나 풀자 하는 마음으로 모두들 잠을 청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삼년전부터 한달에 반은 저가 말씀을 전하고 박찬국집사님 내외와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찬양도 전혀 따라 하지 않던 이백 명 정도 되는 직원들이 어느 날인가 부터는 예배 15 분전부터 와서 뜨겁게 찬양하는 직원들이 많아 졌습니다. 예배도 열심히 하나님의 말슴을 듣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어 갔습니다. 예배 전에 와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하나 둘씩 늘어났습니다.
그러던 중 모두 열심히 예배를 드리는데 한분만 가장 늦은 시간에 나타나서 그때부터는 “여기가 우리집 안방이다”라는 선포라도 하듯이 엎드려 잠을 자기 시작하고 예배가 끝나면 눈이 빨개져서 눈을 뜨곤 했습니다. 그분의 잠을 깨워야 갰구나 생각하며 하루는 “오늘 부터는 말씀 후에 잠시라도 기도시간을 가질것이고 저가 소수라도 기도 해 드릴 것입니다.” 라고 선포하고 잠을 자고 있는 그분의 손을 꽉 잡고 기도하였습니다. 물론 얼마나 놀라하는지 속으로 웃음이 터질 정도였습니다. 그날 그분은 깊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 다음번에 갔을 때 그분이 좀 일찍 왔습니다. 저가 그분에게 대화를 했습니다. “교회 다니시지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멋쩍은 웃음을 웃었습니다. “그런데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지요?” 역시 수긍을 하며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해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거의 얼굴에 쓰여 있다는 것을 그분은 잘 모릅니다. 저가 그날 그분의 이름과 휴대폰 전화 번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문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마당 뜰만 밟는 교인이 아닌 주님을 만나는 신자가 되기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그 신약구약의 복음은 능력이 얼마나 있는지요!!! 어느 날인가는 예배 보다 일찍 와서 그분이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예배에 절대 잠을 자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말씀에 청종을 하고 찬양도 열심히 부릅니다. 지난번에는 찬양을 하며 “당신의 마음에 우리에 사랑을 드려요” 라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며 할때 저를 향하여 손을 내밀며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어제는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는데 그렇게 밝아지고 잘생긴 열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할렐루야!!!
진정한 복음이 선포될 때 모든 회중은 마음이 한곳으로 집중이 됩니다. 우리를 구속해 주신 주님을 찬양하게 되고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지난주 양재 온 누리에서도 기도시간을 가질때 많이들 회개하며 울면서 기도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 내용의 일부가 회개하는 믿음에 관한 공감되는 글이 있어 여기에 나눕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며 이야기 하는 신앙 고백자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그들이 기초가 없는 집을 지었다고 확신한다. 그들이 죄를 깨닫게 하는 성령의 칼을, 그 죄를 죽이는 칼끝을 느껴보았다면 그들은 사자나 곰을 보고 도망하는 것처럼 죄에서 도망칠 것이다. 진정으로 용서를 받은 죄인들은 마치 불에 데어본 아이가 불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악의 겉모양조차 두려워한다. 피상적인 회개는 언제나 부주의한 삶으로 이끈다. 회개로 젖어 보지 않은 믿음은 거룩함의 꽃을 결코 피우지 못한다. 하나님은 참회하는 영을 기뻐하심을 기억하라. 애통해 할 이유를 알지도 못하면서 기뻐해야 할 근거를 가질 수는 없다. 위로의 약속은 죄로 인해 애통해 하는 자들을 위해서만 보장 된것이다.”
마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