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를 의지하며 적진으로 달리며
삼하22:30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이제 금년도 어느새 9 월이 지나고 10 월을 곧 바라봅니다. 금년의 하루 하루를 돌아보게 되고 또 이제는 인생의 믿음의 여정을 돌아보게 되며 오늘 아침에는 “믿음”이라는 말씀이 함께 나눌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믿음으로 행진하는 우리의 삶 즉 “믿음에서 믿음으로” 라는 그 삶은 바로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릴수 있고 내 하나님을 의지하기에 난공불락인 성을 뛰어넘는 것이 바로 믿음의 현장입니다.
어떤 선교사가 고백하기를 선교를 십년 하다 보니 후원자들은 우수수 떨어지고 생계도 힘든다는 고백은 사실 현실은 인간의 방법과 인간의 노력으로는 그것이 전부입니다. 결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난공불락의 놋성벽을 뛰어 넘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 선교사님의 고백처럼 저도 25 년이라는 선교현장에 있다 보니 사람의 인맥이나 사람의 감정에 호소를 했다면 옛날에 홀리네이션스 선교회라는 이름조차 사라졌을 것입니다. 학생들이 졸업을 맡고 자국으로 돌아가서 사역을 하고 있으면 학비가 줄어드는것이 아니라 학생들은 여전히 신학교에 재학중인 학생들은 현재 있고 사역을 하는 현장에 후원을 하기에 우리의 운영비는 더 많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현실은 2009 년에는 오랫동안 후원하던 분들이 못하게 되는 사연들을 양해를 구해 왔고 삼분지 일이 떨어진 가운데 금년에는 그 숫자에서 또 삼분지일이 줄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후원을 하거나 총회후원으로 선교사로 나가면 훨씬 더 든든하고 후원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데 가장 믿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고회에서 후원을 해야 오래 간다?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결코 믿음으로 적진을 향해 달려가며 믿음으로 성벽을 넘는 이 기쁨은 결코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한 교회는 목회자가 바뀌자마자 몇 달 후에 후원하던 후원금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물론 아무런 사전에 통보나 사연은 없습니다. 다른 교회도 마찬가지 인데 그 교회는 목사님이 직접 전화를 해서 못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두 교회에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사실 우리 선교회재정에 교회라는 이름으로 후원하는 액수는 0.1% 도 차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런 전화나 상황의 변화가 전혀 하나님의 장중에서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다윗왕의 고백처럼 요동하지 않는 평온함과 신뢰가 있습니다.
[시16:8]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우편에 계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기에 요동치 아니 하였고 하나님은 지금까지 넘치게 부어주셨습니다. 단지 금년 상반기에는 나눔을 넘치게 함으로 우리 살림은 하루 하루 주님을 더 절대 의지해야 나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연고로 한번도 재정이 마이너스로 가 본적이 없지만 25 일 하루 지출이 1600 만원이 넘는 지출을 할때 회계를 8 년 이상 해온 정은실집사님도 하루전날 한번 전화를 걸어 상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가 전날 전화 왔을 때 “내일 아침에 송금해 줄께요” 라고 약속한대로 그날 넘치게 송금을 할수 있게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그날 아침에 출근 전에 부랴 부랴 많은 액수를 송금하고 출근을 한 손길이 저가 한 말을 책임 질수 있도록 하나님은 그 손길을 감동시키셨습니다.
금년에 하나님이 주신 헌금 중에서 참 여러명을 사용하셨는데 잊지 못하는 헌금 중에 하나가 청소부를 하면서 이년 모음 적금을 몽땅 보내주신 집사님의 헌금도 있습니다. 일부러 멀리 분당에서 때 맞추어 처음 본분이 가지고 온 헌금이나 지금까지 전혀 얼굴을 모르는 분들이 힘들게 삼위교회를 찾아서 연결 연결 해가지고 어떻게 홈페이지에 계좌번호를 못찾겠다고 하면서도 보낼 분들은 그것도 때 맞추어 보내어 단 한번도 모자른적이 없습니다.
이 경이로운 현장에 없었다면 “믿음에서 믿음으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해매이며 예수를 잘 믿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았을 터인데 하나님이 사람을 믿지 않게 제 마음을 지켜 주셨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신 것을 감사 드릴뿐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저가 집회를 많이 가면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받아와서 선교회에 보탬이 될 것이라 오해를 할 수도 있는데 단 10 원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섬김을 하는 사람들이지 대접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교회에서 삼일 집회를 할때도 그곳 목사님이 식사를 같이 하자는 요청을 정중히 사양하고 근처에 마땅한 식당이 동태찌개 만 파는 곳이기에 삼일 연속으로 동태찌개를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요새이십니다. 우리의 방패이시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고 전진할 때 결코 요동치 않고 성벽을 뛰어 넘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다면 인간의 모든 방법을 중단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쓰는 한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통로를 당신 스스로 막아버리는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묵상한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삼하 21 장 1-14을 한번 깊이 읽어보시면 왜 기도가 막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다윗왕이 그 땅에 삼년 기근이 있을때 하나님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다윗왕에게 기도응답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브온 사람에게 해결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고 그것을 해결했을 때 하나님은 그 땅을 회복시키셨고 그의 기도를 응답하신 것을 봅니다.
삼하21:14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걸려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게 되면 쉽게 응답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선교의 현장에서 하나님은 사막에서도 물을 내시고 반석에서도 물을 내시고 사람의 숫자와 관계없는 전쟁을 앞서서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보았습니다.
우리가 기드온의 삼백명의 이야기를 단순히 설교로만 들으면 결코 믿음을 배울수가 없을 것입니다. 성경 전체에 승리하는 그리소도인들은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이지 무엇인가 특출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오늘 이 아침에도 물으십니다. “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