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믿는 맛
어제 집회중에서 저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쳤을때 김연희목사님이 축도하시기 위하여 강대상에 올라가셔서 하시는 말슴이 “여러분 예수 믿는 맛을 알고 예수 믿읍시다.” 이렇게 선포를 하셨습니다. 오늘 아침 “에수 믿는 맛”을 저에게 물어본다면 어떻다고 말을 할 것인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성경말씀에서 그 맛을 표현하면 이사야 66 장 11 절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사66:11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예수 안에 그 위로의 풐메 만족함으로 느끼는 맛!!! 조금 젖을 빤것이 아니고 넉넉히 빤 즐거움으로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즐거운 맛!!! 이 맛을 본 사람은 새로운 변화가 생겼던 것을 고백합니다.
그 위로의 품에서 즐거웠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도 그 위로의 품에서 위로 받게 전하고 싶습니다. 그 즐거움은 어떤 폭풍 가운데서도 우리를 보호 해 줍니다. 더 이상 다시 목마른 세상의 것을 찾지 않습니다. 세상의 물은 다시 목마르지만 주님이 주시는 생수는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다시 목마르는 세상의 어떤 것과 우리 주님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맛본 사람인 이런 찬양을 부릅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만약 이세상 부귀와 명예를 따라가기를 원한다면 이 영광의 풍성함의 즐거움을 아직 맛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생수만이 우리를 다시 목마르지 않게 합니다.
이 즐거움은 소유하기 보다는 나누기를 즐거워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주님이 주는것이 받는 것보다 더 좋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나누다 보면 더 영광의 풍성함을 맛볼 수가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주님과의 하나 됨 바로 그 맛은 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기를 소원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주님이 “죄”를 너무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즐거이 사랑하는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내 뜻을 고집하는것보다 더 중요하게 우선 순위를 갖게 됩니다.
어제도 박찬국집사님이 인도하는 찬양은 교회 전체에 뜨거운 기쁨을 전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더 기쁘게 찬양하는 집사님의 모습이 이미 예배를 기쁘게 드릴 수 있도록 준비합니다. 이 기쁨이 없는 사람이 예배 전에 찬양을 인도하면 예배 시작하기도 전에 자장가를 불러주는것 같습니다. 어떤 음악적인 기교가 넘친다고 해도 그 영이 기쁘게 찬양을 드리는 것은 우리 회중 모두에게 전달이 됩니다. 첫날보다 어제는 더 많은 분들이 모여서 그 긴시간을 아무도 졸지 않고 경청을 하는 분위기 였습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값없이 받고 무조건적인 사랑이 한국교회를 새롭게 할 수만 있다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직 기도하며 새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