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와 주님 제자 삼기(3)
우리는 특별한 시간에 전도를 나가기도 하지만 우리 삶 전체가 전도와 주님의 제자를 키우는 현장입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길에서 스치는 사람이나 쇼핑을 할때나 아니면 주거 지역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를 보여 주어야 할 대상자들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딸 가족과 위 아래층 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면 사위나 그 가족 모두 우리가 진정한 주님의 제자를 삼기 위하아ㅕ 주님이 바로 곁에 살게 했다고 생각을 하며 삶 전체가 주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생각으로 차 있습니다. 가까운 거리에 자주 가는 가게나 마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삶을 살다보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고후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한번은 말레이시아에서 살 때 미국 사람이 대부분인 있는 교회를 다니고 있을때 교회로 향하여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서양 여인이 운전을 뒤에서 하고 오다가 저희 남편이 운전을 하고 가는데 그 사람이 보기에 좀 속도가 느리게 생각을 했는지 정확한 영문을 모르는데 앞질러 가더니 무시하는 펴정으로 그런 말을 하면서 가는것이었습니다. 저희는 참 어처구니가 없다라고 생각하며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 여인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서로 인사합시다 라고 하니 전혀 다른 얼굴로 웃으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이기 때문에 언제나 마음속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편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도 훈련을 받고 제자 양육에 관한 것을 다른 선교회에서 많이 들었습니다. 저의 경험에 의하면 어떤 성경공부 교제를 십단계라던지 초신자 양육이라던지 책을 가지고 그 코스를 다 띠면 공부를 한 것으로 생각하면 참 오산이라는 것입니다.
초신자는 교회에 다니고 성경공부를 수학 공식 가르치듯이 하여서 그것이 전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랜 세월 동안 해 본결과 배운 것입니다. 처음 교회에 발을 디디게 하기도 힘들지만 성굥공부 모든 내용이 전하는 자에게서 사랑이 전달되지 않는 한 어떤 내용도 상대방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한 영혼은 사랑이 느껴지기 시작할 때 귀를 열고 듣기 시작하고 마음으로 내려가기 까지 한참 걸립니다. 그것을 진단을 할줄 모르는 사람은 마치 입을 열면 부어 넣듯이 내용을 집어 넣지만 전혀 속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반복하지만 사도바울은 자신을 일만 스승이 있지만 아비는 하나라고 하며 복음으로 낳았다고 하며 또 다른 표현으로 유순한 유모와 같이 키운다는 표현을 하였습니다.
아기는 편안한 품에서 잘 자라지 평안을 느끼지 못하고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는 전달이 되지 않는 것이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사랑이 부음을 성령이 깨닫게 될 때 비로서 우리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롬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이 부음바 된 사랑이 요한 웨슬리에게 영국을 변화 시킨 원동력과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 정말 저렇게 사악한 사람이 변할 수 있을까 생각되는 사람도 사랑이 부음 바를 느낄 때 그의 귀와 마음에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진실한 신앙을 가지고 싶다고 고백하는 것을 듣고는 오히려 놀라곤 하였습니다. 만약 목회자나 선교사가 되어 한 사람을 세우고 싶다면 먼저 사도바울과 같이 아비의 심정 유모의 심정으로 하는지를 한번 점검 해 보았으면 합니다. 사랑은 신비합니다. 돌 같은 마음 얼음 같은 마음 상처 투성이의 마음을 녹이는 놀라운 원동력을 제공합니다. 이 사랑은 국적을 초월한 언어입니다. 우리 외국인 선교회에서 영어를 알고 통할수 있는 사람은 10% 도 안됩니다. 그러나 사랑의 언어는 세계 공통어입니다.
이 사랑은 위로부터 받을 때만 가능합니다. 서둘러서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 내용을 꾸역 꾸역 집어놓고는 잘 전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먼저 사랑의 관계를 만드는데는 짧은 시간에 쇼커트로 가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또 참고 격려해주고 인정해 주고 할때 그 다음부터는 스폰지로 빨라 들이듯이 귀와 마음문이 열립니다.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거나 사도바울의 맨토링을 보면 항상 먼저 솔선 수법하는것을 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가르치고 싶으실 때 “섬김이란 무엇이냐? 정의는 무엇이냐?” 이렇게 시작을 하신것이 아니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하인처럼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섬기는 자로 있다”는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눅22: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