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와 주님의 제자삼기:
주님의 증인이 되어달라고 주님은 우리에게 간곡히 부탁하셨습니다. 이 일은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선교를 25 년동안 현장에서 한것을 도움이 되기 위해 간추려 보았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자
고전2: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사도 바울은 전도자의 자격을 “그리스도의 마음”를 가진 자 만이 주님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줄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알고 그 마음을 가진 자만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는 “전도” 라는 것을 단순히 교회 몇 번 데리고 오는 것 정도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전도는 글자 그대로 복음의 도를 전하는 것으로 죽어있던 생명이 살아나고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낳을 수 있는 것이 전도의 정확한 의미가 되겠습니다. 세상 적으로 보면 한 생명이 태어나서 성인이 되기까지 자라는 시간과 성인이 되어 또 다른 생명을 낳는 것 같이 생명은 반드시 다른 생명을 낳게 됩니다.
교회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식의 이동 인구는 사실 전도가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고 자라나는 대상자들에게 그의 사랑을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사모한다고 말했습니다.
빌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둘째: 스승이 아니고 부모의 마음을 가진자
사실 우리는 짜인 성경공부의 코스를 가르치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어느 분의 간증에서 십년동안 성경 공부했고 제자 양육을 받았는데 진정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십 년 후라는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 자신도 어릴 때부터 주일성수 십일조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를 했지만 성령세례를 받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주님의 보혈의 의미를 알게 되자 영혼을 바라볼 때 소중하고 귀한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학부나 청년부 그리고 장년들을 말씀을 전할 때 한명 한명을 귀한 아기를 대하듯이 하다가 보니 장성하여 열방으로 나아가는 주님의 제자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고전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대학부 학생들 중에 위의 성경구절을 이 말씀을 보면 저를 생각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목사님도 되었고 해외에 간 목사님이 된 분도 있고 사업을 해도 다른 사람과 달리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지체들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단지 일 년 동안만 같이 교제를 했는데도 그 교제가 이십년이 넘게 이어지니 이것은 바로 목음으로 낳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이 그런 마음을 줄때만 가능합니다.
우리의 전도 대상자나 양육을 하는 대상자에게 사도바울이 목숨까지라고 줄 수 있다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때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자들이 나오게 됩니다.
살전2: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이러한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기 전까지는 스승으로 가르친다고 해도 지적으로만 남지 결코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주님의 제자로 키울 수가 없습니다.
셋째: 포기 하지 않아야 합니다.
1986 년 성령세례 이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주님의 제자로 키우려고 했을때 성경을 읽으면서 주님의 제자사랑에 너무나 놀랐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우리하고 전혀 다른 흠도 티도 없으신 스승이신데 일주일에 한두 번 배운 것도 아니고 삼년 동안 같이 숙식을 하면서 모든 기적을 보여 주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은 흩어졌습니다. 우리가 제자 양육을 그렇게 시켰다고 하면 허탈감이 들을수도 있었을 터인데 주님은 부활하자마자 그 오합지졸로 보이는 제자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성령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요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다섯째: 전하는 메세지;
그리스도를 확실히 아는 사람은 어떠한 환경, 어려움, 문제가 있어도 비록 주님 때문에 결박을 당한 상태에서도 담대히 바울은 너무나 행복하기에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 그의 메시지였습니다.
행26: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이렇게 주님을 기뻐j하고 주님 때문에 행복해 한다면 사람들은 그 행복이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해서 절로 주님을 알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기에 전도는 설득력 있는 말이 아니고 성령의 감동으로만 열매를 맺을수가 있습니다.
고전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기존의 선교회에서 하는 전도 세미나나 전도 특강을 들어보면 숫자 자랑하며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대답하라 저렇게 물을 땐 이렇게 대답하라 라는 식의 전도하는 것을 들어봅니다. 한데 전도를 몇 명 했느냐는 것은 교회 마당 뜰만 밟은 사람이 아니고 예수님이 12 명을 키워서 세상을 뒤집은 것 같은 제자가 되기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전도나 성경공부 제자양육은 말장난이 아닙니다.
우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지극히 작은 영혼이던 그 어떤 영혼도 귀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없이는 그렇게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영혼으로 키울 수가 없습니다.
말에 있지 않고 성령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은 것 같이 복음을 전하게 된 두 케이스를 소개합니다. 두분아 전혀 교회를 다녀 본적이 없습니다. 그중에 한분은 우리 고모인데 고모는 불교회 신도 회장이었고 교회 다니는 사람을 아주 싫어해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조차 꺼낼 수도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싫어해도 보통 싫어하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 말을 꺼낼 수도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처음 아파트 바로 옆 동에 이사왔을 때 하나님 앞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마지막 기회일수도 있고 저가 한 번 더 “예수쟁이 꼬라지도 보기 싫다” 늘 하던 고모에게 한 번도 미운 사람으로 낙인이 찍힐 수도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같이 식사를 하는 때마다 저가 먼저 양해를 구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해야 식사하는데 기도해도 되느냐구요. “기도 하고 싶으면 기도해라”고 허락을 듣고 큰소리로 기도를 통하여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씁니다. 나중에는 “니 기도 안하냐?” 하고 만나면 식사 전에 먼저 할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오년이 지난 후에 고모부하고 나란히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셨습니다. 금년이 6 년째가 되는것 같습니다. 전적으로 성령이 능력이 그 가정에 머문 케이스 였습니다.
또 다른 한분도 저가 복음을 전하기 좀 곤란한 사이였습니다. 그러기에 기도만 했씁니다. 그러자 어느 날 저쪽에서 먼저 전화를 해서 함께 성경공부 하고 싶다고 의사를 전해 왔습니다. 참 놀라웠습니다. 그분도 교회에 전혀 가본적이 없으며 교회에 아주 비판적이었던 분이었습니다.
여섯째: 전하는 메시지와 삶이 같어야 받아들입니다.
성경말씀을 가르치고 암송을 시키고 시험도 보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전하는 사람이 그 메시지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면 듣는 사람은 속으로 성경말씀 대로 살면 안되는 것인가 보다 세상에서 손해를 보는가 보다 라고 생각하고 전혀 삶에 변화를 못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복음의 핵심인 로마서 8 장을 외우게 시켰습니다. 그 내용 중에 일부만 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롬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분명히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없다고 가르치고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며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하는데 가르치는 자가 육신의 자랑 정욕의 자랑 이생의 자랑을 하고 있다면 어찌 영을 따라 사는 삶을 선택할 수가 있을까요?
만약 믿음의 주제를 가지고 가르치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할 때 하나님은 빌4:19 말씀을 그대로 지키십니다(빌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라고 저가 전한 후에 사람을 의지하는 것을 본다면 우리 학생들은 그대로 따라 할 것입니다. 우리 선교회는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모금을 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었는데 때때로 저가 다른 교회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 거의다가 봉투를 줍니다. 받아본적이 없습니다. 저는 한국교회에 이 나쁜 풍습을 없애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왜 돈을 받는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전에 케냐 사람을 아시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공부를 다른 교회에서 시킨 적이 있는데 그 학생들 분위기는 여러 교회들을 다녀서 간증을 하면 돈을 주니까 용돈 벌기 위하여 공부보다 교회들을 순방하며 간증하러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특히 우리 신학생들에게 바른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그들 앞에서 돈을 받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보통 학생들이 본대로 하는데 우리 학생들은 자국으로 돌아가서 이곳에서 보내주는 사역비에서 또 다른곳에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우리의 전도대상자나 양육대상자를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려고 작정을 하셨을때 그 여인에 대해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낯을 피하여 아무도 오지 않는 그 시간에 우물가에 가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예수님은 그 여인이 나타나는 시간과 장소에 나타났습니다.
요4: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요4: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요4: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요4: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요4: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하시니
아무도 상대하지 않는 이 여인에게 말을 걸고 물을 달라고 하는것은 그 여인을 아주 친근하게 유대인이 상대하지 않는 그녀를 존중하게 대하시는 것입니다. 그 여인은 놀라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요4: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전도를 잘하고 싶은 사람은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전하고 그가 바로 전도자가 되는 요한복음 4 장을 여러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사실 전혀 문화도 다르고 환경도 다른 한 영혼을 전도하는데 는 상당한 인내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어떤 한 사람이 변하는 과정은 저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분을 이해하는데 그분의 언어가 너무 낯설어서 3 년은 걸렸습니다. 한국 엄마들이 자식에게 “차라리죽어라” 라고 하는 언어를 더 쌍소리로 하는 언어는 “뒈져라”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정말 소름끼치는 언어였습니다. “나가 버려” 이런 언어는 얼마나 상처를 주는 언어인데 그것이 보통 언어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영혼이 다시 회복하고 살아나는 것을 보는 과정은 정말 놀라운 축제입니다.
사랑만이 기적을 만듭니다. 사람은 사랑이 들어갈 때 살아납니다. 조건 없는 사랑이 바로 목숨까지도 주기를 기뻐하는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일만 스승 중에 하나가 되지 말고 복음으로 낳은 귀한 주님의 제자들을 키워 열방으로 나가 또 다른 생명을 낳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