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눅13: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눅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눅13: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눅13: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눅13:27 저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눅13: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이 말씀을 잘 묵상해 보면 가슴이 철컹 내려 않습니다. 자신들은 주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예수님께 배웠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행악을 행하는 자들아 도대체 누구인지 너희를 모른다고 말씀하시며 쫓겨난 무리들은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는 말씀이 두렵고 떨리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그렇게 구원을 받은 자가 적다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말씀그대로 진리 안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너희를 도무지 모르겠노라고 하는 사람들은 실지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롬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전도하며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라고 할때 주로 입으로 시인하는것을 많이 시킵니다. 그러나 먼저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며 그의 부활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을 잘 모르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는 것은 구원 전에 거쳐야 하는 단계이며 마음으로 믿는 것이 입술로 단순한 지적인 동의 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주”로 시인해야 하는 단계에서 주님이 우리를 죄의 종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셨기에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계속 하면 안됩니다. 자유인은 더 이상 “죄의 종”으로 사는 삶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중한 죄짐을 벗고나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라는 의미의 찬송이 실지로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아직도 구원을 얻은 자유인이 아닙니다.
“죄의 종”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계속 세상의 모든 것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주”로 섬기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가장 자유한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루마니아의 범브란드 목사님은 김옥에서 주님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며 신앙을 고수했습니다. 잠시 풀려 나왔을 때 목사님의 아내인 사모님은 독일 나치가 유럽을 휩쓸었을 때 사모님의 가족을 모두 죽인 독일인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가족을 죽은 독일인을 만나게 되었고 그 원수 같은 독일인에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독일인에게 자신의 집에 같이 가자고 권했습니다. 그 독일인에게 목사님의 아내는 그때 밤이 깊어서 잠이 들어 있었는데 목사님이 그 독일인에게 당신이 에수님을 구주로 모셨을 때 나의 아내는 당신을 형제로 받아들이고 전혀 과거의 죄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독일인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으나 거실에서 범브란드 목사님이 하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서 그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밖으로 나와서 그 독일인을 끌어안고 “형제여”라고 했습니다. 그날 그 독일인은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하는 구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요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구원 받은 사람은 자유의 기쁨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의 것을 바라보기에 세상의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으로 인하여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기를 원합니다.
히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죄의 종”은 절대로 자유하지 못합니다. 구원을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로 모시는 삶에는 불평이 없어집니다. 오직 자랑은 십자가만 자랑합니다.
구원 얻은 자유인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훨훨 날아갑니다. 오직 주님의 이름만 높아지기를 소원합니다. 이제는 “네 탓에서 내 탓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회복이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