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 겸손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온누리 교회 하용조목사님이 천국으로 가시고 나니까 이 찬송 구절이 생각납니다. 약 이십년전에 홍콩에서 살 때 다달이 빛과 소금 책을 받아 보았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보통 목사님들이 창간을 한 책에는 책 앞쪽에 사진과 함께 목사님의 글이 제일 앞쪽으로 자리를 차지하는데 하목사님의 글은 책의 거의 뒷면에 있었습니다. 항상 그 내용이 너무나 잔잔하면서도 겸손하셔서 목사님이 어떻게 생기셨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 사진은 실려 있지 않아서 뵐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쓰신 글에는 한번도 자신의 업적이나 무엇을 자랑하는 내용은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홍콩으로 보내 주어서 그 설교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수 많은 설교들을 일생동안 교회를 다니다 보면 듣게 되는데 진짜 목음의 설교는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습니다. 당시에 들었던 설교 내용을 기억해도 첫째, 목사님은 너무나 솔직하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 내용 중에 기억이 나는 설교는 “나르지 못하는 교인들”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온누리 교회가 점점 더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고 교회에 프로그램은 다양한데 “나르지 못하는 교인들”이라는 것을 목회자 자신은 심각하게 느꼈다는 것입니다. 당연이 주를 바라보는 자는 독수리 처럼 날러야 하는데 프로그램은 많은데 왜 나르지를 못할까가 고민이었다고 하십니다. 당신이 맡은 교회를 그렇게 솔직하게 평가할 수 있고 사실대로 고백한다는 것은 그분이 진실하시고 겸손하시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리고 안식년으로 해외에 나가서 저가 기억하기로는 하와이 예수전도단에서 기도하시던중에 “다시 성령으로 돌아가라”는 음성에 순종하고 귀국하셨습니다. 이 장소는 저가 오래전 들은것이라 다른 장소였을수도 있습니다. 한가지 분명한것은 성령으로 돌아가신 사실입니다. 장로교 목회자로써 갑자기 바꾼 태도였습니다. 처음 그러한 목사님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목회자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누리 교회는 세계를 향하여 그때부터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의 그러한 겸손함은 온누리 출신의 평신도들이 마음껏 사역을 할수 있는 장을 열어 놓으시기도 했습니다. 저는 온누리 교인이 아니기에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곳 출신 평신도들이 쓴 책을 많이 나온것을 읽어보았습니다. 우리 선교회 봉사자들도 온누리 교회에서 왔기에 다른 이름 있는 대형교회보다 훨씬더 친근감이 느끼어 졌고 그렇게 평신도를 인정해 주는 목사님의 목회 철학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자신의 명예와 업적보다는 주님의 이름을 높혔고 세계에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시고 그 아픈 뭄을 끌고 오랫동안 전혀 아프지 않은 분처럼 돌아가시지 전주에도 설교를 하시고 떠나가신 목사님을 잠시 회상해 보았습니다.
성령님을 모시기에 프로그램을 뛰어넘어 나르는 수많은 성도들을 배출하신 목사님이 귀하시다고 느낍니다. 다른 성령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자신의 은사를 과시하며 자랑하는데 진정한 성령운동을 하는 온누리교회 하목사님은 그렇게 겸손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런 목사님의 겸손함을 하나님은 사용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천국에서 편히 쉬시며 주님이 예비하신 면류관을 받으시고 계실 것을 믿습니다.
“나르지 못하는 교인들”은 지금도 한국교회 곳곳에 있습니다. 지금은 자다가 깨어나야 할때라고 보입니다. 이렇게 안일하게 어느 교회 소속이라고 자신은 잘 나르고 있다고 착각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셰계는 모두 평안하지가 않습니다. 영국의 거리 곳곳에 폭력은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미국의 뉴욕주의 동성연애자를 인정하여 그들이 판을 치는 이 어두움의 세대에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두려운 시간들입니다.
마치 노아의 홍수시대에 모두 죄악에 물든 때와 같이 전 세계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죄에서 벗어나서 해를 향하여 독수리 처럼 날러야 하는 이 시간에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