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자녀를 사랑하기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에게 대한 어떤 가르침을 주셨는지를 먼저 아는 것이 우리 자녀를 바르게 사랑할 수가 있다. 예수님 당시에는 남자 아이들을 선호 하였고 여자 아이들을 그냥 버려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을 귀히 여기지 않았다. 그런 고대의 사고방식에서 어떤 종교에서도 아이들을 귀히 여기라는 가르침을 준 종교지도자는 없다. 예수님이 사셨던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남자아이라도 허약하거나 원치 않는 어린이들은 상례적으로 죽였다. 스파르타 라는 영화에서 보면 남자아이가 태어 낳을때 물속에 넣어서 살아남는 아이는 강인하다고 키우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물속에서 그냥 허우적거리다 죽게 두는것을 본 기억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제자들의 당시의 태도는 종교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는데는 어린아이들은 성가신 일로 생각하였다. 그러한 태도에 예수님은 단호하게 본노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막10: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막10: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막10: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막10: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예수님은 그의 팔로 어린이들을 감싸며 손을 그들 위에 얹고 어린이들을 축복하셨다. 예수님은 또한 제자들이 누가 가장 위대한가에 대한 그들의 논쟁에서 동일한 가르침을 전달했다.
막9: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더 나아가서 강력하게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중요시 여긴 가르침을 묵상해 보자.
막9: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예수님은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인간의 성격의 모든 기초가 어릴 때부터 가장 필요한 시간이고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제일먼저 가르쳐 주신 것이다.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깨닫는데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렸고 지금도 잘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한 생명을 바르게 키우는데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어떤 중요한 일을 한다고 해서 어린 아이를 실족시키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는 이렇게 강력한 가르침은 예수님 외에 아무도 없다.
가정의 제 1 가치는 어린이를 양육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가정은 헤아릴수 없는 가치를 지닌 곳이다. 가정은 잘 보호되어야 하고 가정이 깨어지는 것은 가장 큰 죄악의 모든 요인을 불러오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사별했을 경우보다 이혼을 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자라서 부정적이고 사람을 두려워 하는 대인기피증과 자신감이 전혀 없고 의욕 상실한 성격으로 자라나는 것을 보게 된다. 어리더라도 사별했을 경우는 사람이 생명을 어떻게 할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운명적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혼인 경우에는 세상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인데 바로 그 사람들에게 대한 부정적인 가치관과 생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기 때문에 현대인들처럼 함부로 이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뿐더러 모든 재앙을 불러 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은 어린 아이를 실족시키는 일을 고대인들과 다른 방법으로 잘 저지르고 있다. 부모의 사랑과 배려와 격려로 커야 할 아이들을 요즈음은 “돈”이라는 맘몬신 앞에 고개를 숙이고 모두 돈을 벌기 위하여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기 보다는 실족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깨닫지 못하고 행하고 있다. 어린 아이에게 잘하는 것이 곧 예수님께 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깊히 묵상해 보자.
예수님은 어린이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며 자녀를 노엽게 하지 할라고 한 말씀을 깊히 묵상해 보면 사랑받지 못하고 어린 시절에 상처는 훗날 엄청난 범죄와 재앙을 일으키는것을 아시기 때문이었다. 정상적인 성격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성장과정을 보면 다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한 가운데 자랐고 나쁜 환경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학대를 받았으며 동물 취급을 받았다. 사람은 단순히 먹여 주기만 하면 되는 존재가 아니다. 사랑받지 못한 어린이가 받은 상처로 잠재 되어 있는 분노가 성인이 되었을 때 폭발한다. 가장 끔찍한 분노를 폭발한 사람은 바로 히틀러이다. 그는 어렸을 때 유태인의 남자와 자신의 엄마의 불륜을 보고 그 분노가 유태인을 600 만이나 죽였고 세계 제 2 차 대전을 일으킨 악의 씨앗이 바로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라지 못한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킨 죄의 결과였다.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릴 때 부모에게서 본대로 행동을 한다.
스킨쉽의 효과:
부드럽고 다정한 스킨쉽은 말로 하는 것보다 더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해 준다. 그것은 서로에게 자기 자신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나의 부모는 나를 안아 주지 않았는가? 접촉을 할 때는 오직 때릴때 뿐이었다.” 라고 회상을 하는 어른들의 고백을 들어본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실 때도 보통 그 병자를 만지고 손을 그들 위에 올려놓았다. 이러한 접촉은 치유하는 능력이 있으며 우리 자신과 자신 이상의 것을 주는 신성한 그 무엇이 있다. 예수님의 방법은 모두가 상대방을 사랑하고 배려해주고 높여주는 행동을 바라본다. 아이들이 어릴 때 자신을 안아주고 포용해 주면 세상은 그렇게 보안다.
다섯 살난 아이의 시각으로 촬영한 영화가 있었다. 어린이의 관점에서 세상은 매우 다르게 보였다. 어른은 매우 크게 즉 거인으로 보였다. 우리도 거인이 쳐들어 와서 우리를 마구 밝고 무너뜨리는 영화를 볼때 우리는 아주 왜소하게 느껴진다. 어린 아이들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모든 것을 쥔 거인의 손에서 거인들과 살고 있다. 이 거인들이 화내고 닥치는대로 휘들를때 어린이는 무서운 공포감게서 떨며 성격이 형성된다. 보통 아이들을 체벌할 때 자신의 감정이 잘 조절되지 못하고 체벌을 했을때 아무 효과도 못내고 아이들은 자존감만 무너져 내리는 결과라는것을 알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