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움에 이르는 병
암환자를 비롯하여 수많은 불치병과 희귀병의 환자들을 선교회에 외국인환자들을 통하여 보았습니다. 에이즈 환자도 여러 명 보았습니다. 출국하는데 공항까지 동행하기도 하였고 국적이 다른 에이즈 환자들을 내 차에 태워서 떠나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그들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생 불가능한 병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국적을 막론하고 희귀병에 걸려도 한명도 그런 병에 걸려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살고 싶었고 치료 받고 싶었고 병석에서 일어나고 싶어 했습니다.
한 사람의 암환자를 치료하려면 돈도 엄청 들지만 그들을 실어서 병원에 입원 퇴원을 반복하는 일도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는 일이고 살고 싶어 하는 그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돈을 지불하지 않는 한국인의 경우도 그들을 찾아가서 용기를 주고 격려 하는 일은 끊임없는 관심과 시간과 사랑을 요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살기를 원하는 그들에게 당연한 나눔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질병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극한 고통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살고 싶어 했습니다. 가장 극한 상황의 영화나 드라마 중에서 일제 식민지때 정신대로 강제로 끌려갔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든 드라마에서 사람으로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지만 그들은 살고 싶어했고 내일의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바라는 모습이었습니다.
몸이 부자유한 장애를 입은 장애 우들도 힘들고 어려워는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장애 우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 하고 소망을 갖습니다. 오늘부터 일주일동안 해 마다 열리는 장애인집회를 사모하며 기다리며 다른 어디서 볼수 없는 강력한 성령이 그곳에서도 임하는 것을 봅니다. 재대로 말을 못해도 기뻐하며 찬양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살펴본 바로는 사람이 자신을 무가치하고 자존감이“ 0 ”로 내려올 때는 모든 다른 것을 소유하고 있어도 스스로 생명을 끊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너무나 극심한 경쟁 사회 속에서 모든 것을 보이는 것에 기준하고 판단하고 비교하는 “악”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살다보니 모두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기쁨이나 감사나 평안이라는 것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어둠의 세계에서는 미워하고 증오하고 용서할 줄 모르고 화목할 줄 모르는 세계 속에서 살기에 오직 자신의 감정대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할줄도 모르고 헌신짝 버리는 것보다 더 쉽게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강력한 치유책을 주셨습니다.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지만 현대인들은 반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항상 짜증내고 항상 불평하고 기도는 자신의 편리만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러기에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자신이 아주 열등하다고 평가합니다. 열등의식처럼 무서운 질병도 없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쉬지 않고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열등하다는 생각에서 자유 합니다. 그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듣고 또 듣고 귀에 못이 박해도록 사랑한다는 말씀을 들을때 우리는 존귀하게 하나님의 보배로운 자녀로써 이 죽음의 병에서 이겨 날수가 있습니다.
화요일마다 우리 아파트에는 골목시장이 열립니다. 그중에서 트럭을 몰 고와서 직접 순두부와 부침 두부를 만들어서 파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오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 아저씨는 두부를 살 때마다 사러오는 분들에게 밝고 기쁜 얼굴을 보입니다. 두부도 맛이 있어서 화요일마다 그 두부를 꼭 사게 됩니다. 그 아저씨는 자신이 순복음교회 성도라고 소개하고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가득합니다. 한번은 지호하고 같이 시장을 보면서 그곳에 들렸는데 지호를 보고는 마음에 기쁨이 있어야 산다고 하면서 밝게 웃음을 웃으며 “나는 왜 이렇게 아즘마들이 못생겨도 사랑해 주나?” 하면서 신나게 두부를 만들어 파는것입니다. 근사한 자가용을 탄 사람보다 더 즐거워 하며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니다.
아주 좋은 아파트에서 사는 분이 하루는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왜 예수를 믿는데 자신은 기쁨이 없을까요? 라는 질문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맛본 사람은 “물밀듯 내맘에 기쁨이 넘침은 주예수 내 맘에 오심”이라고 찬양하는데 한국에서 이름 난 교회를 다니면서 그 기쁨이 왜 없느냐고 질문을 하는 것을 보면 “아직 예수님을 그 마음에 모시지 못했나 보다 ”라고 생각됩니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구주를 생각만 해도 좋습니까? 주 얼굴을 뵈오면 얼마나 좋으랴 라는 고백을 우리도 할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 얼굴을 뵈올려면 성경은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