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게더 시리즈 - 핵가족과 대가족
우리나라가 가난하고 모두가 작은방에서 한 가족이 잠을 자고 그런 시절에는 우울증이라는 병명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대문은 모두 걸지 않고 열려 있고 서로의 집안이 들여다 보이는 농촌 풍경이 아름다움 풍경으로 추억이 됩니다.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풍경에는 커다란 둥그런 밥상에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먹으면서 서로의 모든 대화를 나누고 하는 모습은 지금은 보기 힘든 장면입니다. 경제가 발전하고 개인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핵가족이 생기고 부터는 쏟아지는 우울증, 조울증 등등 듣도 보도 못한 병들이 쏟아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시작하면서 홀로 조용히 있다보니 컴퓨터는 모든 사람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둔갑하고 아무하고도 방해받지 않고 지내다보니 사람이 온전히 기계에 조정을 받고 감정은 우울증 약으로만 다스려지는 이상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홀로 방콕을 할수 있는 아이들은 별로 있을 수 없는 것이 서로의 집안이 들여다보이고 언제든지 이웃과 더불어 또 대가족과 더불어 살기 때문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하는것이 무엇인지가 익숙한 성격이 되어 대인기피증이나 우울증을 앓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고전을 읽으면 “이리 오너라”라고 지나가던 행객이 불러도 사랑채에서 재워주고 밥상을 차려오던 우리나라의 구수한 인정이 많던 그 시절이 참 좋았구나 생각됩니다.
우리 가정은 처음 결혼하여 아이들을 키우던 집이 일반 주택이고 담도 낮으면서 서로 들여다 보이는 집이고 특히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자녀가 있어서 그곳에서 살 때 서로가 그날의 저녁 메뉴도 알정도로 친숙했고 비밀을 가지기도 힘들 정도 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집 마당은 동네아이들의 놀이터였던 것이 우리 집에는 그네가 있었기에 늘 아이들이 들락거렸습니다. 그때 꼬마 친구들의 엄마는 지금도 서로 연락을 하는 친숙한 사이입니다. 그러나 아파트 앞집에는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도 그 집안을 들여다보고 서로 주고받고 하는 분위기는 전혀 아닙니다.
홍콩에서 살던 시절에는 우리 집에 묵으면서 먹고 자는 손님이 끊임없이 있기에 공동체 아닌 공동체 생활이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집에 도우미가 없이 늘 손님과 더불어 살기에 아이들은 손님이 오면 초등학생이었지만 음료수를 갔다 드리고 하던 일을 당연히 하는 일로 생각하곤 했습니다.
자녀들을 결혼 시키고 몇 년은 우리 부부만 있다가 이제 다시 딸과 사위와 함께 살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작년 해산을 앞두고 같이 지내는 시간과 다시 홍콩에서 한국으로 귀국해 위 아래층을 올라 다니며 함께 살게 되니 대 가족이 우리의 정신 건강에 참 좋다는 것을 다시 느낍니다. 특별히 자신의 성품을 다듬는 데는 대가족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혼자 있어 버릇한 아이는 장성해서도 한 가정을 이루어도 서로 함께 한다는 것이 잘 익숙하지 않습니다.
요새처럼 각자 너무 바쁘고 특히 아이들의 사교육 팽배로 한상에 둘러 먹고 마시는 일이라고는 생각하기도 힘들고 책상에 앉아서 혼자 먹는 우리나라의 실정에 우리 집처럼 한상에 둘러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감사할 뿐입니다. 여럿이 같이 먹기 때문에 간단한 음식도 더 맛이 납니다. 혼자 식사를 하다보면 대충 때울 것도 딸네 식구들을 챙겨줄려고 하다보면 덕분에 더 맛있게 먹게 됩니다.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 있고 기쁨과 설움도 같이 하니 한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원래 사도행전에 성령이 임하면 사람들에게는 서로 자기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사라졌습니다. 공유하고 더불어 사는 것이 성령의 역사의 결과였습니다.
행4: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서로 공유하고 서로 돕고 사는 대가족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믿는 자 모두가 하나의 가족이고 서로 나누고 서로 돕는 것이 우리의 믿음의 인격을 다스려 가고 사랑을 배워가는 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