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게더 시리즈 -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하려면
서양의 선교사님들은 몇 대째 헌신된 하나님의 헌신된 군사로써 모델로 보여 줄 수 있는 선교사들을 생각해 봅니다. 인도의 닥터 아이다 도 삼 대째 이어가면서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삶을 살았고, 허드슨 테일러도 4 대째 내려오고 토레이 가문도 삼사 대에 걸쳐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인도에 폴브랜드로 부모의 신앙을 전수 받아서 수많은 한센 환자에게 주님의 향기를 보여주며 그들에게 생명과 소망과 사랑을 전수하였습니다. 그들은 오지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우리나라 대형교회에 세습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자녀에게 전수 하였습니다.
사실 자녀에게 성경에 관한 것, 기도에 관한 것 이렇게 보여주며 교회에 가는 것까지는 할수 있어도 참된 기도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자녀가 직접 기쁨으로 주님을 따르게 하는일은 그런 이론을 가르쳐 가지고는 전혀 전수하기가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허드슨 테일러의 아들이 아버지의 생애를 쓰면서 마지막 끝마치는 글에 이런 글을 썼던 것을 기억합니다. “기도에 관한 어떤 책보다 아버지의 기도하는 모습에서 기도를 배웠다. 아버지는 여러 명이 합숙하는 그러한 방에서도 새벽 2 시엔 일어나서 한 쪽에서 기도를 하셨다. 그러기에 아버지가 중국인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언제나 치유가 일어나고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곤 하였다.”
허드슨 테일러는 “기도에 관한 것”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기도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준것입니다. 자녀들은 우리의 일 거수 일 수족을 모두 보고 있고 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분을 경외하고 따르는 삶이 세상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는가? 라고 주시하고 있습니다.
욥21:15 전능자가 누구이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는구나
우리의 기도가 자녀에게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는 수준이라면 자녀들은 우리의 기도하는 모습이 결코 기도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도시 중심에 있을 때 그는 내지 까지 당시 교통도 불편한데 스스로 찾아갔고 중국인과 같아 보이기 위해 염색약이라는 것이 그때 있지도 않는 시절에 암모니아로 몇시간에 걸쳐 염색을 하고 머리를 길러 중국인처럼 땋았다는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이었기에 그가 남경에 무덤 앞에 “하나님의 사람(Man of God" 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부모에게서 가장 가까이 살면서 세상과 구별되며 크리스천이라는 명칭이 “그리스도와 같다”라는 말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이 땅에서 사셨는가를 깊히 묵상할 때 부모 된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를 아는 가장 고상한 지식”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할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한 지식”을 우리 자신이 안다면 그렇게 사교육에 모든 것을 투자하며 거기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드리고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는가를 항상 이야기 해줍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우리 자녀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더 기도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하는 열정이 생기도록 상량이 역사하는 것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이론이 아니고 현실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분은 살아계시고 우리와 친밀한 교제를 원하십니다.
지난 주 목요일에 우리 기도모임에서 우리는 베트남 어린 아기의 난청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중에 토요일과 주일에 만나는 우리 지체들은 이미 알고 있지만 화요일 목요일에만 오는 기도의 동역 자들은 그 기도 후에 어떤 응답을 구체적으로 하셨는지를 모르고 있는 상태라 바로 우리가 기도한 다음날 금요일에 하나님이 즉각 응답하신 이야기를 나눌때 모두 더 믿음으로 기도 하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가장 고상한 지식”을 더 간절히 알기를 소원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서 이런 내용이 공감이 되어 함께 나눕니다. “우리 안에 부르는 분과 같은 속성이 있을 때 그 부름이 들립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우리의 속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이 표현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그분의 환전하신 섭리 가운데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우리만 인식할 수 있는 음성이 있습니다. 아주 특별한 사건 속에서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과 그 음성에 관해 자문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유지할 때 우리에게만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이 자신의 음성만을 들을 귀가 있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영역 속에 들어가려면 우리에게 근본적인 깊은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