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사랑
기독교의 사랑은 우리 자신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원천으로 하여금 우리 마음를 꿰뚤고 활동하게 하는데 있는 것이다. 사랑의 능력을 중대시키기 위해서는 오직 한 출발점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경험을 얻든지, 그 경험을 통찰하든지 이 둘중의 하나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선을 행하고 기쁨을 얻는 그 이상의 이유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수 있기 때문” 이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진정한 사랑에 관하여 가르치시기 위하여 선한 사라리아인의 비유를 통하여 지극히 작은 자에게 갖는 관심을 심도 깊게 가르쳐 주셨다. 유태인은 사마리아인이라면 멸시하고 같이 자리도 같이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멸시하는 사마리아인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관심을 보였다. 지난주에 무관심한것에 대한 죄를 살펴 보았다. 우리 주위에 강도맞은 이웃은 누구인가? 우리는 슬쩍 피해가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모습은 아닌가?
눅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10: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눅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눅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눅10: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눅10: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눅10: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눅10: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눅10: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눅10: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눅10: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눅10: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눅10: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자기 자신에게 쏟아지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그것을 나누어 줄수 없는 것이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사랑하시는 그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의 자신의 소개:
오신목적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요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적용: 우리도 주님이 하신것 같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심
요13: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요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요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요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적용: 우리의 본성은 섬기고 사랑하기 보다는 사랑받고 칭찬받고 존경받고자 하는 욕구를 십자가에 못박고 섬기는 주님의 모본을 적용하며 사는것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겠다. 만약 한 조직의 대표가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가운데 있다”라고 고백을 한다면 그를 통하여 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날것이다.
중동지역 에서는 발이란 신체에 있어서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의 하나로 여겨졌다. 지금도 “실례합니다” 란 말없이 발에 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실례가 된다. 예수살렘의 거리를 걸어 다닌
사람들의 발은 오물과 찌꺼기로 더러워져 있다. 가장 비천한 하인이라든가 노예만이 집안 사람 혹은 손님의 발을 씻는 일을 했다. 처음에 제자들은 너무나 놀라서 말도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두려움과 당황함으로 그냥 복종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섬김을 받으러 온것이 아니고 섬기러 왔다고 여러 번 이야기 했으나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기에 그들은 누가 크냐는 논쟁을 벌리는 미련한 모습을 보였다. 예수님은 이럴 때 행함을 통해 섬김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셨다.
성품을 소개
예수님은 자신의 성품을 소개할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우리의 모델이 예수님을 따라가는것이라면 우리의 성품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