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게더 시리즈 - 유대감은 지속적이어야 한다
자녀가 그대 그때 느끼고 생각하고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두렵기도 하고 어떤때는 칭찬받고 싶기도 하고 때로는 격려가 필요하고 그리고 잘못된 것은 고쳐주고 하려면 모든 것은 자녀와 지속적인 유대감과 그 마음을 읽을 수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초등학교 저 학년 때는 그때 나름대로 학년이 올라가면 또 다른 문제를 당면하게 되고 인생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펼쳐집니다. 요즈음과 같이 어린아이들이 전혀 인성교육을 시키지 않음으로 인하여 왕따라던 지 학원 내 폭력이라던 지 이런 일들을 부모가 모르고 있을 때 나중에 심각한 문제를 맞게 됩니다.
전에는 아이들이 어떤 일이 있어도 학교는 가야 되는 줄로 알던 시간과는 달리 대 낮에 그냥 학교를 가지 않고 방황하는 수많은 아이들을 보게 됩니다. 아무 문제 없는 줄 알고 열심히 맞벌이 하던 부모들은 어느 날 생각지도 않는 왕따를 당하여 전혀 학교가 가기 싫다고 하며 학교를 안가 버리고 문을 잠구고 대화를 거부하는 자녀들의 문제도 종종 상담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소아 정신과에서 십대 정신병동에도 만원을 이루고 있는 심각한 현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이런 놀라는 일을 당하고 당황스러워 하지 않으려면 매일 자녀가 어떻게 생활을 하는지를 사랑의 유대감 안에서 다정한 대화를 나눈다면 사전에 예방을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청년은 아주 심각한 우울증이라 한 직장에 들어가서 2 개월 내지 3 개월이면 더 이상을 견디지를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어릴 때 그런 일을 당했을 때 그것을 들어주고 풀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고질병이 된 것입니다.
유대감을 구축하는데 가장 나쁜 밥법은 언제나 훈계조의 말투입니다. 그리고 비교하거나 깍아 내리거나 자녀의 마음을 전혀 읽지 않고 일방적인 훈시나 더 나쁜 것은 자녀에게 상처를 주는 말투입니다. 그 결과는 바로 부모가 일생을 머리 골치를 섞는 자신이 심은 열매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두 자녀가 한번 국제 학교로 외국에서 계속 다닌 것이 아니고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삼 년 후에 다시 또 나가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가운데서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할 뿐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자신이 그 구릅과 다른 것에 아주 민감하고 두렵고 그리고 새로 환경이 바뀔때 늘 편안하게 지냈던 친구도 없고 공부는 영어로 했다가 한국어로 했다가 다시 영어로 해야 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 늘 자녀와 함께 나누는 대화는 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한국내에서도 아이들이 전학을 하고 새로 바뀌면 그것도 힘든 상황인데 전혀 다른 문화와 충분히 통하지 않는 언어의 문제 같은 현실 속에서 아이와 함께 모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을 주었습니다.
처음 영어를 넘어야할 산으로 보던 초등학교 삼학년 올라가는 나이에 우리 아들은 저의 격려를 들으면서 이런 각오를 이야기 했습니다.
“앞으로 미래에는 영어가 공통어가 아닌 한국어가 공통어로 쓸수 있는 그날이 오게 할꺼야.” 저는 웃으면서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는데 현재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몰려와서 모두 한국어를 배우고 오는 것을 보면서 아들에게 전에 말하던 것이 이루어 진 것을 이야기 해 주었더니 같이 웃었습니다. 우리 아들보다 감성이 더 예민한 우리 딸에게 한국으로 오면서 처음 학교에 가면 아무 친구도 없을지라도 먼저 친구를 만들면 친구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첫날 학교 갔다 오면서 같은 반 한 아이를 집에 데리고 왔습니다. 딸이 먼저 우리 집에 놀러가겠냐고 하면서 데리고 왔다고 하며 웃으면서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친구를 먼저 만들면 된다고 해서 우리 집에 놀러가자고 했어.”
그런 식으로 하여 바다 건너 여기 저기 옮겨 다니는 상황에서도 자녀들은 친구들과 잘 교제를 했고 왕따를 당한다던지 어려운 일들은 모두 함께 대화를 통하여 잘 이김으로 늘 친구들과 잘 지내었습니다.
우리 아들은 얼마 전에 미국에 출장가면서 대학 내내 기숙사 룸메이트를 만나고 왔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반가워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릴 때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사춘기에는 전혀 자녀의 이야기를 알수도 없고 해결하기도 힘들뿐더러 성인이 되어서는 남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이 서먹서먹해서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기쁨과 설음도 같이 하는 가족이 한 집안에서도 대화가 없어지고 하숙생같이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자녀가 성장하여 집을 떠나 생활할 때도 우리는 하루에 한번이상 꼭 교제를 했습니다. 메일을 통해서 또한 전화를 함으로써 멀리 있어도 언제나 함께 있는 것과 같이 유대감을 가졌고 그 유대감은 외로움 힘든 일, 어려운 모든 일을 이길수 있는 자신감과 삶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늘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한 통로가 엄마인데 그 사랑을 보지 못하게 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