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은 하나님의 선물이예요
밝은 성격으로 18년간 시를 써오고 있는 이은주시인(41)은 꿈에서 깨어나는 아침, 팔과 다리는 사라지고 왼쪽 발가락 하나가 ‘이은주씨’가 된다.
‘차라리 이러한 아침마저 꿈이었으면’ 소망하던 세월이 40년 가까이 되풀이 되는 동안 견딜 수 없었던 눈물은 시인을 만들어 냈다.
‘한번만이라도 나의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면, 한번만이라도 내 손으로 옷을 입고 목욕을 할 수 있다면’ 하는 아침의 기도는 ‘발가락 하나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지며 지금의 ‘이은주씨’가 됐다.
홀로 서지 못하고 한마디 말을 위해 온 몸을 비틀며 땀을 흘려야 하지만 내면에는 행복으로 가득 차 함께 지내는 장애인들의 눈빛하나에 그들의 도움이 되고 희망이 된다.
더 낮아질 곳이 없는 곳에서 넓은 행복의 텃밭을 일궈가는 이은주시인은 발가락으로 시를 쓰고 휴대폰 문자를 하며 인터넷을 통해 세상 먼 곳까지 간다.
팔과 다리를 비롯한 신체중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여주는 유일한 왼쪽 발가락 ‘하나’는 이렇게 세상을 향한 문이자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전부’가 되어 98년 그녀를 시인으로 이끌었다. 98년 오뚝이 축제, 2003년 동아리협회에서 받은 장려상은 신체적 고통을 눈물로 딛고 피어낸 아름다운 감동이었다.
시를 쓰기 시작한 지 11년. 2009년 크리스천리더를 통해 ‘팔과 다리를 모두 갖추고 맑은 정신을 가진’ 108편의 시들을 ‘하나님의 공주’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보냈다.
온 몸을 쥐어짜 발가락으로 시를 쓰는 이은주시인은 자신의 발가락을 하나님의 선물이라 했다.
98년 시인으로 등단
지난 4월21일 제31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김포시 양촌면에 소재한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향유의 집(관장 유경호)이 마련한 ‘함께 어울리는 한마당’ 행사에서 이은주시인은 거주하는 장애인을 대표해 직접 쓴 시를 온 몸으로 낭송했다. 한자 한자 낭송할 때마다 온 몸은 비틀렸지만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시어(詩語)들은 감동으로 전달됐다.
이은주씨는 실내에서는 방바닥에 앉아서 지내지만 무척 사교적이며 활동적이다. 주변사람들의 불편을 먼저 알고 돕기도 하고 식사도 왼쪽 발가락으로 어려움이 없다. 세면에 이어 늘 화장도 곱게 한다. 전동휠체어에 오르면 왼쪽 발가락 하나로 가지 못하는 곳도 없다. 양곡시내 화장품 가게도 가고 특히 수요일과 일요일 교회가는 일은 가장 즐거운 나들이다.
쌍둥이 자매로 1970년 태어난 이은주시인은 유아 때 쇠 물통이 머리에 떨어진 후 뇌성마비 1급 장애진단을 받고 아홉 살 때부터 발을 사용하여 식사 등 간단한 자립생활을 하게 됐다. 12살 되던 해 어머니는 가출하고 18살 되던 해 당뇨병을 앓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임종직전 맏오빠의 손을 잡으며 “우리 은주 밥 잘 챙겨 먹여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나 오빠는 돈을 벌기위해 서울로 상경하고 쌍둥이 여동생마저 늦게 귀가하는 날은 차가운 방바닥에서 종일 외로움과 배고픔을 참아야 했다. 견디지 못하는 날은 기어서 수돗물과 함께 눈물을 삼켜야 했다. 자신 때문에 가정환경이 이렇게 변했다는 자책과 혼자서는 무엇도 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은 자살충동을 불러왔으나 성치 못한 몸은 그 조차도 어렵게 했다. 22살 되면서 오빠를 통해 어머니를 만났지만 함께 한 행복한 시간은 4개월 뿐. 오빠의 결혼으로 그해 결국 지금의 석암요양원(前향유의 집) 식구가 되어 20여년의 세월을 지냈다.
꿈으로 장애를 딛다.
이은주시인이 향유의 집에서 지낸지 6년이 되던 어느 날 그곳 아는 분의 권유로 포천 한국중앙기도원을 함께 방문하고 몇 일을 기도하던 중 마지막 날 하나님의 강렬한 힘을 느끼고 기독교인이 되면서 그녀의 삶은 암울한 현실에서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향유의 집을 한번 찾은 자원봉사자는 이은주시인 때문에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 방문자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다가가 향유의 집을 설명하고 다시 오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그만큼 장애는 이은주시인에게 있어 더 이상 경계가 아니다.
이은주시인은 학교를 전혀 다녀본 적 없지만 시와 산문 등 글쓰기를 좋아하고 영화감상과 나들이를 즐긴다. 같은 방을 쓰는 동료 장애인의 눈빛을 보고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복지사에게 전해줄 만큼 동료애도 깊다. 발가락으로 작은 핸드폰의 문자를 치고 컴퓨터 자판을 이용, 시를 쓴다. 그에게 뇌성마비 1급은 이제 불편함도 장애도 아니다. 함께 짊어지고 가는 인생의 동반자일 뿐이다.

